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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Nov 28. 2021

11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운동하러 가야지

2021년 11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11월에 읽은 책

•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 유선애 인터뷰집

-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각자의 미감과 세계관, 도덕적 기준과 윤리를 양보하지 않으며 오늘을 사는" 90년 대생들의 이야기. 이 땅 어딘가에 이렇게 멋진 여성들이 자기 일을 주도적으로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위안이 된다.

"변화가 빨리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변화를 가장 크게 가로막는 것 같아요. 변화는 다양한 형태의 물결로, 모양으로, 크기로 올 거예요." (예지)
"어떤 관계 속에서 내가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나 혼자 강해지려 하기보다 곁의 사람들과 함께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이 진짜 강함." (이주영)
"내가 모른다고 느끼지 못한다고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잖아요. 차라리 알고 계속 싸우고 화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저에게 맞아요." (박서희)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상처로 만들지 않을 힘이 나에게 있다고 말이에요. 회복의 힘이 내게 있으니까. 일단 잘 살아보고 싶어요." (이슬아)


• <아직 끝이 아니다> - 김연경

- 전 세계가 인정하는 실력과 그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있었던 숱한 노력은 물론이고. 구조의 불합리함을 인지하고,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나서서 행동한다는 점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다. 미디어를 통해 봤을 땐 그럴 수 있는 카리스마와 스타성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난 영웅적인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오랜 고민과 큰 용기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심지어 더 멋있잖아.

"감각은 한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중략) 매일의 훈련과 반복되는 경기 속에서 쌓여나가는 게 '감각'이다." "기본을 견디면 실력이 된다."
"처음 용기를 내서 다가가고 친해지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관계가 이어졌을 때 서로가 각자의 역할을 현명하게 해내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오래도록 함께하는 관계를 유지해가는 진정한 친화력인 것 같다. 처음의 용기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노력인 것이다."


• <전국축제자랑> - 김혼비, 박태하

- 과연 김혼비는 에세이의 신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관심 가져 본 적 없는 한국의 지역 축제 이야기에 이렇게나 푹 빠져들게 하다니. 심지어 너무 재미있어서 낄낄 웃으면서 읽었다. 전반적으로 유쾌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여성 혐오나 동물권 같은 문제 지점들을 정확히 지적해준 점이 좋았다. 시대에 뒤쳐진 부분들을 개선한, 불편하지 않고 재미있는 K-축제에 놀러 갈 날을 기대해본다.

"우리가 아는 세계, 아니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 생각보다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다만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누구도 너무 멀리는 뒤떨어지지 않기를, 아무도 너무 갑자기는 외로워지지 않기를."


•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 정세랑

- 픽션을 못 읽는 병이 있어서 그 유명한 정세랑 작가의 소설 작품을 아직 한 번도 읽어본 적 없지만, 이 여행 에세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인지가 느껴졌다. 그런 세심한 시각으로 바라본 다른 나라의 도시들은 꽤나 아름다웠고, 이제 그런 이가 상상한 가상의 세계는 어떨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여행한 공간이 늘어나고 또 늘어나면 정보를 건질 그물망이 촘촘해져서 책이 훨씬 재밌어지는 게 아닐지, 그렇다면 지금껏 놓친 정보는 또 얼마나 많을지, 종종 허술하게 흘려보냈을 반짝임들을 안타까워한다."


•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 김민철

- 한동안 잠잠했던 여행 욕구가 다시 샘솟으면서 해외여행 콘텐츠를 매일같이 찾아보고 대리 만족하고 있다. 저자의 지난 십수 년간의 여행 역사를 편지 형식으로 담은 에세이. "과장법은 여행자의 특권인걸요"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낯선 곳으로 떠나 멋진 경치, 맛있는 음식, 친절한 사람들을 보며 나도 열심히 과장 섞인 말들을 늘어놓고 싶어졌다.


• <예진문의 취미기록> - 문예진

- 요즘 인기 있는 유튜버/인플루언서 중 감각적인 면에서는 단연 원탑이라고 생각하는 예진문님. 이 사람이 하는 건 다 멋져 보이고 이 사람이 좋아하는 건 다 나도 갖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무언가를 대차게 추진하는 게 두려워서 그저 소소하게 기록해왔을 뿐인데 그 기록들이 결국 나를 움직이게 했다. 계속 쌓여가는 기록들이 또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무척이나 설렌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꾸준히 흔적을 남긴다면 분명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


11월에 즐겨들은 음악

- 나 트와이스 되게 좋아했네.. 신보 정규 3집 닳도록 들었고 최애 곡은 'Moonlight', 'Candy'

- 근데 이제 그냥 신곡 찾아 듣는 게 귀찮은 듯. 옛날 노래 많이 들었고, 그나마 새로 추가된 노래는 2AM '잘 가라니', NCT127 'Favorite', NiziU 'Chopsticks'


11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일본 NTV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2016)

- 튀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직업을 주인공으로 조명하고, 오래 품어온 꿈을 이루는 게 반드시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뭔가 특별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에츠코처럼 당차고 사람 잘 챙기고 정의와 열정에 불타는 인물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해도 잘할 것 같긴 하지만. 꼭 그런 타고난 성격이 아니어도, 교열부 직원들처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내가 최선을 다해 만족할 때까지 한다면 그게 바로 '수수하지만 굉장한' 일인 거겠지 싶고.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들. 빛이 안 드는 데서 일하지만 빛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좋아하기에 가능한 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꿈이 곧 천직은 아니잖아."


•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2021)

- 여자 셋이 절친 삼총사로 똘똘 뭉친 드라마는 무조건 재미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달려가 털어놓고 들어주고 짠 할 수 있는 이런 친구, 나에게도 딱 두 명만 있으면 좋겠네. 시즌2에서는 음침한 남자들 얘기는 다 빼고 셋이서 다 해 먹는 서사 더 많이 보여주길.

"술에 취하면 별것도 아닌 일이 다 별게 된다. 그리고 진짜 별거였던 일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다."


• 캐나다 영화 <빌어먹을 사춘기> (2018)

- 이유 없이 세상이 싫고 사람들이 밉고 훌쩍 도망가버리는 사춘기 감성은 이제 나에게 와닿지 않는 듯. 그냥 잔잔하게 흘려보내는 마음으로 본 영화. 주인공 레오니가 너무 예쁘고, 포스터는 더 예쁘다. 그거면 됐어..


•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 (2006)

- 영화 속 인물들에게 각자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저마다의 힘듦이 있었겠지만, 함부로 캐물어보거나 참견하거나 조언하지 않아서 좋았다.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도움과 연대를 보낸 점이 좋았다.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더불어 혼자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좋아보여요.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거."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에요." 


• 한국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2017)

- 문소리 청룡 여우주연상 수상 기념 시청. 짧은 러닝타임에 '여배우'라는 키워드 하나로 이렇게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낸 감독 및 주연배우 문소리에게 샤라웃. 딸들이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며, 앞으로 더 멋진 여자들 영화로 찾아뵙겠다는 수상소감을 기억하며.


11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 (2021)

- 평생 남의 연애 얘기 안물안궁하는 사람인데 솔직히 환승연애는 너무 재미있었다. 너무 잘 만들었잖아. 이미 이별한 커플들이 모여 다음 사랑을 찾는다는 게 여태 다른 곳에선 보지 못한 색다른 긴장감을 준다.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커플들을 어쩜 그리 골고루 섭외했는지 대단하다 싶고. X 소개, X 문자, X와의 채팅 같은 장치들도 잘 설계되어있다는 느낌을 주고. 그냥 즐기지 못하고 이런 생각하면서 본 나 너무 업계 사람 마인드인지?


• 미국 FOX 리얼리티 <헬's 키친 시즌 20> (2021)

- 매 시즌 거의 같은 형식의 반복인데 시즌20는 딱 지금 미국의 Z세대, 20대 초반의 셰프들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 특별했다. 무조건 내 실력이 최고라는 자존감은 기본이고, 미국 치고는(?) 위계질서가 있는 주방에서조차 자기 생각을 말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매 미션마다 고기가 나오고, 심지어 우승자는 고든 램지 스테이크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가 되는데 참가자 중 비건이 두 명이라는 점도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었다.


• 드럼 커버 유튜브

- 드럼 선생님이 이제 연주해보고 싶은 곡을 직접 골라오라고 해서 커버 영상을 많이 찾아보고 도전해 볼만한 곡을 찾는 거에 재미를 붙였다. 주로 악보와 연주를 같이 볼 수 있는 곰탱뮤직, At the Drum, 람쥐드럼, 알려드럼 같은 채널 위주로 보는 편.


11월에 즐긴 문화생활

• 콘서트 <스트릿우먼파이터 ON THE STAGE>

- 올 하반기 내내 계속되는 스우파 과몰입의 정점을 찍은 서울콘 관람. TV로만 보던 춤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신기했고, 특히 다인원 퍼포먼스는 화면으로는 다 못 담는 무대 직관으로만 느껴지는 경이로움이 있었다. 근데 춤도 춤인데 다들 왜 이렇게 멘트도 잘하고 콩트도 잘하고 스타성까지 갖춘 건데.. 대한민국의 댄서들은 이미 준비돼있었다는 걸 입증한 공연이었다. 정말이지 무대 위 50여 명의 여성 댄서들 모두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환호성을 지를 수는 없었지만 그 열렬한 마음이 박수를 통해나마 잘 전해졌길.


• 매거진B 10주년 전시 <10 Years of Archive Documented by Magazine B>

• 서울생활사박물관 기획 전시 <서울 멋쟁이>


11월에 잘한 소비

• 그룹 PT

- 충동 소비로 PT 30회 등록한 사람이 있다? 나다.. 어느 날 운동 관련해서 뭐 찾아보다가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HIIT)하는 PT샵을 발견해 그날 바로 등록까지 해버렸다. 그동안 홈트를 꾸준히 했지만 내 한계를 넘어서려고는 안 했는데, 확실히 트레이너랑 페이스 메이커들이 있으니까 더 끝까지 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 허먼밀러 에어론

- 사무용 의자의 끝판왕이라는 갓먼밀러, 주문한 지 거의 네 달 만에 바다 건너 드디어 도착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이게 뭐가 좋다는 건지 잘 몰랐는데, 요즘 계속 재택근무를 하면서 자세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어 과감히 투자했다.


11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요즘 거의 중독 수준으로 계속 생각나 미치겠는 '포케올데이' 현미밥 연어 포케, 트러플 소금이 킥이었던 '오제제'의 안심카츠와 자루우동, 그리고 거의 2~3년 만에 먹어본 곱창에 소주


11월에 마신 카페


11월에 잘한 일

- 위에도 썼지만 요즘 운동에 제대로 재미 붙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부쩍 키워온 근력을 발휘할 때마다 뿌듯하고, 남들은 중간에 포기해도 나는 끝까지 다 해낼 때의 쾌감이 짜릿하다. 요즘 주 3회 HIIT, 주 1회 풋살, 주 1~2회 홈트로 거의 매일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체력을 더 키워서 내년에는 풋살 외 새로운 구기 종목에 도전해보는 게 목표다.


- 내가 좋아하던 '가을의 절정'이 10월에서 11월 초중순으로 점점 옮겨가고 있다는 걸 올해 들어 실감했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어서 서울 곳곳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명륜당, 노들섬, 올림픽공원, 석촌호수, 남산에서 만끽한 올가을도 잊지 못해.


11월에 아쉬웠던 일

- 생각해봤는데 딱히 없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운동 열심히 하고, 책 많이 읽고, 문화생활도 올해 들어 가장 많이 하고, 안 본 지 꽤 됐던 친구들도 오랜만에 만나고, 나 혼자만의 시간도 충분히 가졌고. 이렇게 쭉 살아도 만족스러울 것 같은데?  


11월에 행복했던 순간

1. 노들섬에서 한강 물결과 억새밭 위로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2. 스우파 콘서트에서 터져 나오는 팬심을 주체할 수 없었을 때

3. 운동하면서 '나 지금 건강하게 잘 살아있구나'를 느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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