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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Jan 27. 2019

1월에 마신 13개의 카페

공릉 - 회기 - 종로 - 성북 - 후암 - 성수 - 판교 - 별내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매달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공릉 오누이


새해 첫날 첫 카페는 역시 나의 비밀정원, 나의 안식처. 1월 1일에 처음 듣는 노래 가사 따라 한 해를 산다는 속설이 있는데, 처음 간 카페 같은 한 해를 보내게 된다면 나의 1년도 이렇게 푸릇푸릇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겨울 숲 요거트'라는 신메뉴를 주문했는데, 한 땀 한 땀 직접 무늬를 내신 정성에 감동했다. 숲 속 요정들이 먹을 법한 비주얼에 맛도 싱그럽고 건강한, 딱 오누이다운 메뉴.


2. 공릉 썬릿

 

새해 첫 샌드위치를 영접하러 이어서 '썬릿'으로. 지난번 프렛첼에 사과가 든 '썬릿 샌드위치'를 매우 맛있게 먹었는데, 이번에 도전한 '머쉬룸 크림 그릴드 파니니'도 성공적. 이 세상 풍미가 아니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에스까르고 버터가 들어갔다고..! 너무 간편하기에 '한 끼를 때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샌드위치라는 메뉴를 찬찬히 '음미'해보는 경험이 가능한 곳.


3. 공릉 아고라커피


어느덧 세 번째 방문. 올 때마다 인테리어나 공간 배치가 조금씩 달라졌다 싶더니, 이번에는 외관부터 180도 달라진 모습. 분명 흰색 카페였는데. 특히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 'Love your fate'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주어진 공간과 환경 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는 곳이라 좋다.


공휴일이긴 했지만 빈자리가 거의 없고 편한 복장 차림으로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손님도 많았다. 직접 로스팅을 하는 곳이라 커피가 맛있는 건 당연하고, 원두와 더치도 판매한다니. 동네 주민들에게 '믿고 마시는 커피'로 자리 잡은 듯하다.


4. 이문 둡커피 


가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신상 카페. 로고부터 가구, 커피머신, 각종 기구까지 모든 게 시크한 블랙&화이트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점심 겸 디저트로 주문한 과일 샌드위치도 맛있고 다른 곳에 비해 가격도 착한 편이지만, 어쩐지 이 시크한 곳에 안 어울리는 메뉴 같달까. 이상한 괴리감이 느껴져 빨리 먹어 치우고, 커피를 천천히 즐겼다. 공간이 협소하여 벽에 일렬로 붙어 앉아야 하는 구조라, 여럿이 갈 땐 애매할 듯 하니 참고하시길.


5. 이문 컴플리트커피


제주에서 꽤 유명한 카페지만, 서울에서는 경희대 후문 골목에 비교적 소박한 규모로 자리 잡고 있다. 위치나 스케일에 상관없이 이곳을 굳이 찾게 되는 이유는 오로지 '맛'. 자신 있게 입간판에 'good coffee here'라고 세워 놓을 만하다. 1년 전 이곳의 '민트 모카' 맛을 보고 깜짝 놀라 다음 주에 또 가서 '피콜로 비앙코'를 먹었는데 심지어 그게 더 맛있어서 '여기 대체 뭐냐'라고 충격을 받았었지. 개인적으로 모카는 너무 달고 특유의 텁텁함 때문에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여기 모카는 비교적 깔끔하고, 내가 어떻게 저어 마시느냐에 따라 당도도 어느 정도 자체 조절할 수 있다.


6. 회기 언차일드


따로 주소 없이 '회기역 1번 출구 앞'이라고 되어 있길래, 잘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1번 출구 코앞이라 놀란 역대급 역세권 카페. 아쉬웠던 점은 도통 무슨 컨셉인지 모르겠다는 것. 인형, 피규어, 캐릭터 종이컵 등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소품이 많은 반면, 요즘 소위 '감성 카페'에서 유행할 법한 액자들도 여럿 걸려있다. 혼란하다 혼란해.


7. 종로 리드아트


트렌디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미술관 안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이런 느낌일까. 지극히 평범한 공간을 몽환적이고 힙한 분위기로 탈바꿈시켜버리는 조명의 중요성을 몸소 실감할 수 있는 곳. 현실과 단절된 듯한 다른 세상 느낌에 취한다.

인공조명만큼 자연 조명도 중요한 법인데, 마침 햇살이 잘 들어오는 타이밍이었나 보다. 테이블이 있는 쪽은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 자연광에 형형색색 조명이 은은하게 어우러 퍼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음료가 HAY 레인보우 트레이에 나오고,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빛의 3원색 RGB) 의자가 놓여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 이런 뚜렷한 의도와 일관된 컨셉의 디테일이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


8. 성북 락페이퍼시저 (락페씨, 락페시, rrrpppccc)


간만에 엄청 멋있는 곳을 찾아버렸다. 참 멋있는데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그냥 멋있다고 생각한 포인트들을 쭉 나열해보겠다.


1. 지극히 한국적인 동네에 지극히 한국적인 본체. '정말 이런 곳에 있다고?' 의심했을 정도로 요즘 보기 힘든 시장 골목 끝자락에 있다. 이전에 있던 곳의 흔적인지 '삼선유통'이라는 간판이 떡 하니 붙어있다. 건물 외관의 벽돌벽에도, 내부에 보이는 나무 문에도, 어쩐지 어렸을 적 할머니댁에서 본 듯한 클래식함이 묻어난다.


2. 하지만 그 안에는 베를린의 힙한 감성을 표방하는 듯하다. 'tee, kaffee & alkoholika'라는 소개와 널브러져 있는 베를린 관련 도서들에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사장님께서 "베를린 같은", "베를린에서 마시는"이라고 뭔가를 설명하시는 걸 우연히 엿들었는데, 내가 평생 앓다 죽을 도시라 나는 그냥 여기가 서울 속 베를린이라고 믿기로 했다.  

3. 사실 가장 놀랐던 건 태어나서 처음 본 대형 투명 스피커. 빵빵한 서라운드로 흘러나오는 재즈가 너무 황홀해서 계속 멍 때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냥 장비빨이 아님을 입증하는 LP판과 CD 더미, 그 틈에서 느껴지는 내공. 음악이 이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4. 마침 창가로 햇살이 쏟아져 내 아이스커피잔에 담긴 얼음이 반짝였는데,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지 커피가 무슨 위스키 같아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분위기에 취하면 별 게 다 아름다워 보이는구나. 다음에는 여기서 꼭 술을 마시고 제대로 한번 취해보기로 다짐.


5. 마지막으로 이 곳은 카페/바이자 디자인 스튜디오를 겸하는 곳으로 군데군데서 예술가의 발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임팩트 갑은 뜻밖에도 화장실에 있었다. What is Contemporary art? 그 안에 답이 있다.


9. 성북 카페 위코브 (구. 카페 플러터)


요즘 유행하는 '햇살 맛집'이라는 말을 너무 싫어한다. 햇살에 맛집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도 이상하고, 오로지 인생샷을 찍기 위해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대와 명당 자리를 공유하는 인스타 카페투어 문화도 별로고.


그런데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오늘 같은 날 여기 가면 참 따뜻할 텐데'라며 카페 위코브를 찾은 건 부정할 수 없다. 한쪽 벽면이 전면 유리창이라 그대로 햇살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한 겨울에도 금세 등이 뜨거워질 정도라 포근하고 훈훈하다. 내가 아는 카페 중 채광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 그럼에도 나는 쓸데없는 자존심에 이곳을 햇살 맛집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여긴 까눌레 맛집이라고..


10. 후암 후디구디


인스타그램에서 일명 '후디구디 한 상'으로 예쁜 디저트 메뉴와 음료의 조합이 유명한 곳. 사실 비주얼보다는 맛이 좀 더 중요한 나에게는 아쉬움을 안겼다. 크루아상 타마고 많이 기대했는데, 가격을 생각하니 좀 허무하네. 공간 자체도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고. 아, 빨대에 달려 나온 저 스티커는 좀 귀엽다고 생각했다. 저런 작은 디테일이 알게 모르게 브랜딩이 되는 듯.


11. 성수 카페포제


이미지가 공간에 미치는 영향. 이런 류의 포스터를 장식으로 놓는 카페는 최근 흔해진 건 사실이지만 성수동이라는 동네도, 이 카페가 있는 건물도 이런 포스터들과 참 잘 어울리는 분위기라 멋있었다. 미술관만큼이나 군데군데 작품 보는 재미가 있는 카페.

또 하나 인상 깊은 점은 가구와 조명에 따라 1-2-3층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1층은 화이트&우드 톤의 아늑한 카페인데 계단 구석 쪽은 신비한 오렌지빛으로 비밀 창고 느낌이 난다. 2층은 화이트&메탈 톤으로 심플하고 시크한 작업실 같고. 대망의 3층은 블랙&블루&오렌지의 조합으로, 음악도 예사롭지 않아 약간 클럽 느낌도 났다.


간 목적이나 시간대에 따라 어울리는 곳에 자리 잡으면 좋을 듯하다. 나는 저녁에 한 시간 정도 시간 때우러 간 터라 3층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브런치를 썼다. 퇴근 후 이런 시간 좋네.


12. 판교 알레그리아 커피바


아마도 판교 테크노벨리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모처럼 달달한 게 당겨 아이스크림이 퐁당 들어간 '카페 콘 엘라도'를 주문했다. 어디 아이스크림을 쓰는지 참 진하고 맛있다. 점심시간에 방문할 경우 판교의 직장인들이 몰려 자리는 당연히 없고, 주문도 밀려 한참 기다려야 하므로 주의할 것. 나올 때 보이는 '당신의 창의력에 불을 붙인다'는 입간판 멘트가 참 센스 있다.


13. 별내 스웰즈 베이커리


주말마다 치아바타와 식빵을 사러 갔던 '믿고 먹는' 집 앞 단골 빵집. 갈 때마다 커피를 같이 팔면 참 좋을 텐데, 생각만 했는데 드디어 카페로 확장 오픈을 했다. 펠트 커피도 훌륭하고, 케이크·쿠키·스콘 등 보강된 디저트류 베이커리도 역시 맛있고. 무엇보다 드디어 이 동네에도 촌스럽지 않은, 자주 가고 싶은 카페가 생겼음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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