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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Mar 29. 2019

3월에 마신 11개의 카페

성수 - 공릉 - 강남 - 성북 - 판교  - 별내 - 연남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매달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성수 삼옥


카페 컨셉이 공방이나 작업실인 게 아니고 실제로 작업하고 수업도 하시는 목공방 한구석이 카페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목재나 공구 등 작업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는데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진짜 나무 냄새, 톱밥 냄새가 풍기는 곳에서 차분하게 릴랙스 할 수 있는 곳.


이 분위기는 딱 술인데 최근에 옥상 공간을 오픈하면서 주류 메뉴가 거의 안 된다고 하셔 괜히 아쉬웠다. 와인이라 생각하며 오미자 에이드를 마셨다는 슬픈 후기. 다음엔 덜 슬프게 햇빛 들어오는 시간에 가서 커피를 마시든지, 따뜻할 때 옥상에 올라가든지 해야지.


2. 공릉 플랫커피


예전에 머랭과 계란 노른자를 얹은 '플랫 토스트'가 너무 맛있어서 자주 가던 곳. 음료 신메뉴가 나왔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찾았다. 봄에 딱 어울리는 '후르츠 젤리 소다'를 주문했다. 여기에만 있는 메뉴는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메뉴이기에.


음료 나오자마자 너무나 아름답고 영롱해서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는 덤. 사실 맛은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예쁜 사이다 맛이지만 비주얼이 다했다. 색깔별로 젤리도 아쉽지 않을 만큼 꽤 넉넉하게 들어가 있고, 맛은 씁쓸했지만 향이 좋았던 식용꽃도 신기했다. 꽃피는 봄에 이 정도는 마셔줘야 인싸 아닌가요?


3. 강남 겟썸커피 Downstairs


여기 자리 있는 걸 처음 봤다. 안 그래도 사람 많은 강남역에 늘 계단까지 웨이팅 줄 서있는 것만 봤는데, 운 좋게 한두 테이블 정도 여유가 있었다. 짙은 갈색의 나무로 가득한 이곳은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놓고 편한 마음으로 커피와 책을 즐기기 좋은 곳. 사람이 너무 많고 지하라 소리가 좀 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강남역에서 이 정도 분위기 찾기 쉽지 않다. 나는 약속 전에 더티해지기 싫어서 그냥 라떼를 시켰지만 더티 카푸치노와 더티 페퍼가 겟썸만의 시그니처 메뉴이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4. 제기 키라쿠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걸까. 키라쿠의 카야잼 스콘 말이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스콘 사이에 더 맛있는 카야잼과 두께감 있는 버터 조각, 짭짤함을 더해줄 치즈가 층층이 쌓여있다. 소나기가 내리던 날, 따뜻한 아메리카노와도 찰떡궁합. 너무 소중해서 조금씩 아껴 먹었다. 근처 갈 일 있으면 주문하면 직접 만들어주시는 스콘류 (잼, 앙버터, 스모어) 하나씩 다 도장깨기 해봐야지.


5. 종암 정이정


성북구 옛날 동네에 있는 개인주택에 살고 싶다 얘기한 적 있는데, 진짜 종암동 골목의 대저택을 개조한 카페가 있다니. 좁디좁은 옛날 골목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처음 와보는 데도 익숙한 집이 보인다.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우리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어렸을 적 우리 할머니 집'의 모습.


실내는 천장과 계단, 나무 문 같은 집의 뼈대를 제외하고는 모든 디테일이 세련됐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우드톤이 지배하는 분위기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조용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딱 좋은 배려심 넘치는 무드다.

한적한 시간에 가서 운 좋게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크게 나있는 창문을 통해 내다본 창밖은 푸르름 그 자체였다. 집 앞마당에 자라는 나무가 너무나 무성해서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달달한 아이스 블랙 라떼를 마시며 세월과 자연의 정취를 느끼던 시간. 옛것이 오늘날의 감각을 만났을 때 내는 분위기가 참 좋다.


6. 판교 올덴브라운


날씨가 비현실적으로 좋았던 어느 날, 일부러 조금 멀리까지 나가 찾아간 곳. 백현동 카페거리에 있는 '올덴브라운'은 보자마자 경기도라서 가능한 카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사하게 밝은 베이지색 외관이 눈에 띄고, 내부에는 커피 바 뒤로 나 있는 큰 창이 마치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일탈감도 준다. 비좁은 서울 카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널찍한 공간감이다.


각종 표지판, 공중전화기에, 주유소 기계까지. 대체 어디서 구해온 거지 싶은 빈티지 소품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미국 서부 국도에서 우연히 만난 휴게소 느낌이랄까. 솔직히 커피 맛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쯤은 공간의 매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 다음에 온다면 맥주를 마실 생각이다.


7. 한남 003

 

한 2039년쯤의 미래의 카페는 이런 모습일까. 무슨 공상과학만화 속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공간 자체가 하나의 모던아트였다. 다른 손님들이 있어 사진은 못 찍었지만 초록색 스탠드가 있는데 너무 예뻐서 자꾸 생각난다. 여기 스탠드 가구 어디 거 쓰시는지 궁금. 눈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지만 취향 저격당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하겠습니다.


8. 송파 퍼햅스


요즘 인기라는 송리단길 카페가 대부분 석촌호수 동호 쪽에 몰려 있는데 특이하게 서호 쪽 골목에 있는 퍼햅스. 딱 두 가지 포인트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이 가게의 간판이자 대문. 나무로 만든 문에 'perhaps'라고 썼을 뿐인데 저게 뭐라고 예쁜지. 최고의 포토스팟. 두 번째는 메뉴판과 벽 곳곳에 붙어있던 메뉴 스티커. 저 스티커를 굿즈로도 팔던데 탐났지만.. 2개에 1000원 정도 가격으로 골라 살 수 있었다면 질렀을 거다.


9. 별내 BIRCH


'birch'라는 이름처럼 공간 중앙에 있는 기둥에서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조형물이 나뭇가지를 연상시킨다. 천장이 높고 채광이 좋아서 답답하지 않고, 여유롭고,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욱 천천히 흐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브런치 카페지만 식사를 한 후에 가서 커피와 간단한 디저트를 주문했다. 휘낭시에 두 피스에 4000원이면 다른 곳에 비해 아주 괜찮은 가격인데 맛도 훌륭했다. 별내에서 카페를 찾는다면 무난하게 추천, 후회는 없을 곳.


10. 연남 모멘트커피 2호점


인스타그램 카페투어 성지. 모든 테이블이 '야끼빵세트'를 주문해놓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더라. 식빵을 개인 화로에 직접 구워서 버터, 잼, 반숙 계란 등을 발라먹는 세트. 예쁘지만 혼자 먹기에는 무리라 계란말이빵을 먹었는데 비주얼에 비해 맛은 살짝 아쉬웠다. 타마고산도는 달달한 계란말이가 핵심 아닌가요?


인테리어가 예쁘긴 하다. 진짜 교토에 있는 카페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소품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서울에서 일본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가볼 만한 곳. 개인적으로는 굳이 메뉴판에 '코히'라고 표기하는 등 조금 과한 면도 있다고 생각됐지만.


11. 연남 대충유원지


벽돌 건물에 통유리 외관, 원목 인테리어와 특이한 모양의 나무 의자, 주문한 한 잔의 카페라떼까지. 모든 걸 관통하는 일관적인 컨셉과 테마가 있어 보였다. 이름은 '대충'이지만 대충과는 거리가 먼 세심함과 무게감이 동시에 느껴졌던 곳.


저녁 7시가 되니 실내조명이 탁 꺼지고 촛불을 갖다 주셨는데, 한 순간에 전환된 분위기에 '그렇지, 이거지' 싶었다. 저녁에 와서 밤 커피 한 잔 하며 혼자 조용히 책 읽으면 딱이겠다 생각했다. (이 동네에 산다면..) 곧 서촌 쪽에 인왕산점이 생긴다니 꼭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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