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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

by 이지 Dec 15. 2024

 "저기, 살랑살랑."



 모르는 꼬마 애 하나가 저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곳엔 워낙 우리 둘뿐이라 대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응? 그러네. 살랑살랑."



 나는 그저 적당한 웃음, 적당한 친절, 적당한 시선으로 대꾸했다. 꼬마가 가리킨 곳에는 '살랑살랑'이라고 말할만한 건 딱히 없었다. 그새 사라진 건지, 그저 꼬마의 옹알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 나도 그랬다. 한 단어에 꽂히면 벗어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꼬마도 그런 과정을 겪는 거겠지. 나는 '살랑살랑'이라는 표현의 이유는 딱히 찾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감이 조금 귀엽다는 생각뿐이었다.



 "우아, 살랑살랑이야."



 꼬마는 이번에도 똑같은 말을 하며 방향을 돌렸다. 이번엔 나비를 쫓던 치즈색 길고양이를 가리켰다.



 '고양이를 살랑살랑이라고 하나보다.'



 "응, 살랑살랑이네. 귀엽다 그치."



 고양이를 '살랑살랑'이라고 부르는 건 꽤 귀여울 만큼 순수한 발상이었다. 이럴 때 보면 어린아이의 순수함은 참 귀엽고 몽글몽글하다.



 "꼬마야 엄마는 어디 계셔?"



 나름대로 가던 길이 있던 나는 꼬마에게 물었다.



 "곧 온다구 했어. 형아, 그동안 놀아주면 안 돼?"



 아무리 나라도 그런 부탁을 무시할 순 없었다.



 "좋아. 우리 뭐 하고 놀까?"



 내키진 않았지만 딱히 바쁜 일정은 아니었기에, 조금 어울려 보기로 했다.



 "살랑살랑 찾기 놀이!"



 "살랑살랑 찾기 놀이?"



 "응. 살랑살랑을 많이 찾으면 이기는 거야."



 "응, 알겠어. 대신 엄마가 오시기로 했으니까 이 공원 안에서 하자."



 "응! 좋아."



 꼬마는 당찬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좁은 범위를 뽈뽈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도 어슬렁 걸어 다니며 고양이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는 고양이가 정말 많아서 '살랑살랑'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살랑살랑'이 많을만한 좁고 그늘진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스스슥'



 역시나 고양이 소굴이었다.



 "살랑살랑 찾았어!"



 나는 '살랑살랑'이 도망가지 않게, 천천히 꼬마 쪽으로 걸어가 속삭이듯 말했다. 꼬마는 신난 표정으로 나를 따라왔다.



 "자, 살랑살랑. 완전 많지?"



 "살랑살랑 아니야!"



 "에, 아니야?"



 꼬마는 연신 '아니야!'를 반복하며 멋대로 뛰어갔다.



 그저 고집인 건지, '살랑살랑'이 고양이가 아닌 다른 무언가인지, 조금 혼란스러울 차에 꼬마의 당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아, 살랑살랑!"



 '사아아아아아아아'



 바람과 함께 꼬마가 가리킨 곳에는 한 커플이, 손을 잡고 뛰고 있었다. 교복을 보아하니 고등학생 같았다.



 그 아이들의 머리 위로 벚꽃비가 내렸다. 바람에 벚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더해져 정말이지 '벚꽃비'가 내리는 듯했다.



 그 모습은 한 편의 그림 같았다.



 "형아, 살랑살랑 맞지?"



 나는 그제야 '살랑살랑'의 의미를 깨닫고, 아이의 순수함에 사랑과 존경을 담아 웃어 보였다.



 "응, 살랑살랑이네!"



 그때 멀리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아!"



 "엄마!"



 아이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단번에 안겼다. 그러고는 내 쪽을 가리켰다.



 "엄마, 이 형아가 살랑살랑 놀이해줬어!"



 "으응 그랬어?"


 "아이구, 죄송해요. 바쁘실 텐데.."



 "아니에요, 아이가 너무 귀엽고 착해서요."



 아이는 어머니가 내 말에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고, 품 속에 안긴 채 속삭이듯 말했다.



 "엄마, 이 형아도 살랑살랑이야."



 오늘 지은 미소는, 이토록 지은 적 없는 흐뭇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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