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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Oct 14. 2021

누가 브리트니의 미소를 뺏았았나

[리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브리트니 VS 스피어스>



2000년대 중반의 예능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매번 반복되었던 연예인들의 '댄스 신고식' 역시 기억할 것이다. 과장을 조금 섞자면, 이 댄스 신고식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 'Toxic'이나 'Do Somethin'이 울려 퍼지는 시간과 다름없었다. 음악 채널에서 이따금씩 틀어 주던 'Toxic'의 뮤직비디오 역시 잊을 수 없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2000년대를 상징하는 슈퍼스타다. 그는 친근한 이미지로 등장한 하이틴 팝스타였으며, 얼마 후에는 전 세계를 매혹하는 섹스 심볼이 되었다. 7300만 장의 앨범을 팔았으며, '아메리칸 스윗하트(미국의 연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19년 빌보드가 발표한 '125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아티스트' 17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 브리트니 VS 스피어스 >가 공개되었다. 이 작품은 영화감독 에린 리 카와 기자 제니 엘리스쿠가 함께 구성한 다큐멘터리다. 수만 관중 앞에서 환하게 웃는 브리트니의 모습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 브리트니 VS 스피어스 >는 브리트니의 화려한 성공 신화를 그린 이야기가 아니다. 환한 웃음으로 채워진 인트로는, 오히려 그 웃음이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조심스럽게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둘러싼 일들을 추적하며 저널리즘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내 친구에 의하면 증오는 유명인이 내는 세금 같은 거라고"라는 한 래퍼의 가사를 기억한다. 그 가사대로라면,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치러야 했던 세금은 유독 막대했다. 그는 댄서 출신의 남편 케빈 페더라인과의 이혼 소송을 거치면서 많은 상처를 입었다. 이혼과 양육권을 사이에 둔 분쟁은 물론, 미디어와 파파라치의 공세 역시 극심해져 갔다. 미디어는 슈퍼스타의 불행을 공공재로 삼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돌연 삭발을 하고, 파파라치의 차를 우산으로 가격했던 것 역시 당시의 일이다. 그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때, 친아버지인 제이미 스피어스가 등장했다. 제이미 스피어스는 정신 건강과 약물 문제를 이유로 2008년 2월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성년후견인(conservatorship)을 맡았다. 낯선 개념이지만, 한국에도 성년후견제도가 존재한다. 장애나 질병, 노령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가정법원이나 후견 계약의 결정으로 선임된 후견인이 재산관리와 일상생활을 돕는 제도다. 그러나 브리트니는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원하지 않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자신의 친구에게 "내 인생이 싫어요"라고 말했다. 후견인을 빙자한 아버지의 유린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대로 누군가와 연락을 할수 없었고, 자신이 원하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없었다. 그의 모든 생활이 검열과 감시의 대상이었다. 공식 소셜 네트워크 활동 역시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뿐 아니라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마저 잃어버렸다. 피임 도구를 제거할 수 없었으며, 수백억의 재산에 대한 권리도 없었다. 햄버거를 사는 것도, 아이들을 위해 책을 사는 일도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라스베이거스 정기 공연과 월드 투어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지만, 정작 자신은 매달 8000달러의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 제이미 스피어스는 변호사와 매니저, 정신과의사 등과 공모해 딸을 억압했다. 이 억압은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그렇게 세기의 팝스타는 철저히 아버지의 사익을 위해 동원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아버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스피어스'라는 성을 주었으나, 그 외에는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에린 리 카 감독은 이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이건 가부장제예요!"


이 다큐멘터리의 시청자들은 작품을 보는 동안 브리트니가 느꼈을 무력감을 체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브리트니는 숨을 쉴 통로를 찾기 위해 분투했다. 자신을 감시하는 경호원으로부터 달아나기도 했고, 자신이 신뢰하는 <롤링스톤>지의 기자와 몰래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2019년, 브리트니의 라스베가스 정기 공연이 무기한 연장되면서 '프리 브리트니(브리트니를 해방하라) 운동에 힘이 붙었다. 팬덤은 제이미 스피어스가 브리트니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을 것이라 의심했고, 의심은 사실로 드러났다. 팬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스타를 돕고자 했다. 팝의 전설 마돈나는 "우리가 브리트니를 감옥에서 꺼내줄 것이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프리 브리트니' 운동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마침내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자신을 괴롭혀온 13년의 가스라이팅 앞에 섰다.


"제 아버지와 성년후견에 관련된 모두가 감옥에 가야 합니다."

"저도 남들과 같은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으며,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 브리트니 스피어스(법정 심리 중)


다큐멘터리에는 최종 결과가 채 담기지 않았으나, 지난 9월 29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고등법원은 제이미 스피어스의 성년후견인 지위를 박탈했다. '프리 브리트니'라는 구호가 13년 만에 현실이 된 것이다. <브리트니 VS 스피어스>는 모든 것을 가졌으나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가부장제 아래 목소리를 잃어버렸던 여성이 자신의 것을 되찾는 지난한 과정이기도 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메리칸 스윗하트'는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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