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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Oct 04. 2018

나에게도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

짝사랑꾼에서 사랑꾼이 된 이재명의 이야기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 18화│나에게도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안다연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여자친구 말입니다. 가족들에게도 공장친구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내 답답한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상대가 몇몇 있었습니다. 여러 명이 있었다는 것은 결국 여러 번 실패했다는 뜻이지요.

    

소심한 성격 탓에 자신 있게 말 한 마디 걸지 못하고 마음만 태웠습니다. 쓸데없이 자존심은 또 왜이리 강한지 조금이라도 거절의 기미가 보이면 마음을 접어버리곤 했습니다.




소년공의 마음에 사랑의 감정을 처음 싹틔웠던 그녀는 바로 오리엔트 공장 검사실의 그녀였습니다. 검정고시 합격 후 죽어도 들어가기 싫었던 오리엔트 공장에 재입사했던 시절의 일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큰 소리 치고 나간 공장에 되돌아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했던 때, 그녀가 내 마음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1980-07-19│이재명의 일기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해볼까 했지만 결국 주머니 속에서 꺼낼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공장 동료들 눈에 띄면 창피할 것 같아 ‘운명 교향곡’ 카세트 테이프에 편지를 끼워 넣는 작전까지 짰는데 말입니다. 며칠을 망설인 끝에 어렵사리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만 두어 마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습니다.


다른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그녀를 보곤 자존심이 상했고, 나는 끝내 그녀를 잊기로 결심했습니다. 연애편지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만큼 진지했던 나의 풋사랑은... 이처럼 촌스럽고 어설프게 끝을 맺었습니다.




두 번째 짝사랑은 독서실 그녀입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인연인데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애써 마음을 접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막연한 그리움을 따라 그녀를 찾아 거리를 헤매곤 했지요. 우연히 마주치진 않을까, 때늦은 기대를 품고서 말입니다.


드디어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전에 없던 용기를 내 말도 걸어보았습니다. 하지만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인데다가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었기에 커피 한잔 마시자고 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당황하고 긴장한 마음에 횡설수설만 하다가 그녀의 이름도, 학교도, 주소도 물어보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지요.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마음에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갔으나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집에 와서도 그녀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옷 갈아입고 나가니 있을 리가 만무. 한참이나 왔다 갔다 하며 찾았지만 있을 리가 없지. 이번에 또 만나면 커피라도 사려고 했지만 헛일. 지금도 자꾸 그 아이 생각만 난다. 이름도, 성도, 학교도, 집도 모르니 이걸 어떻게 할까.
1982-03-14


1982-03-14│이재명의 일기




이런 쑥맥같은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일명 여사친, 여자 사람 친구가 딱 한 명 있었습니다. 삼계국민학교 동창 경숙입니다. 워낙 어릴 적에 만난 친구이기 때문에 다른 여학생들과는 달리 쑥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친구였습니다.


고향 떠난 지 4년만에 안동에 다녀온 이후로 경숙이와 나는 종종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아픈 팔을 고치기 위해 오리엔트에 재입사했던 시절이나, 대학공부에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경숙이의 편지는 나에게 위로가 돼주었습니다.

      


어제 경숙이에게서 편지가 왔다. 정말로 그애의 편지는 내게 큰 도움이 된다. 하고 싶은 말들을 그냥 쓱쓱 적어 보내면 조금은 시원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1982-03-17


편지만 주고 받던 경숙이를 다시 만난 것은 1985년 가을이었습니다. 사법고시 2차 시험에 낙방하여 방황하다 고향에 내려갔을 적이지요. 그때 나는 경숙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경숙이에게는 사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세 번째 짝사랑도 시시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1982-04-06│이재명의 일기



짝사랑 전문이었던 나는 연애가 공부에 도움되지 않는다며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공장 시절에는 대학에 갈 때까지 참겠다고, 대학에 가서는 사법고시 합격까지 참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음이 나의 자존심 내지는 자격지심 탓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장 작업복이, 굽은 왼팔이, 검정고시 딱지가, 빈 주머니가 나를 주눅 들게 할 때마다 더 고집스레 결심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사법고시 합격도, 사법연수원 수료도 아닌 변호사 사무실 개업 후에야 비로소 인생의 반려자를 만납니다. 첫눈에 그녀에게 반했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임에도 살아온 이야기와 집안 형편까지 나는 줄줄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여전히 너무 진지했고 촌스럽고 어설펐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귀 기울여 가며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습니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 피아노를 전공해 왠지 더 고상하게만 느껴졌던 스물넷의 여성이 말입니다.


한여름의 첫 만남 이후 우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났습니다. 나는 반지 대신 가장 어려운 시절에 쓴 이 일기장 꾸러미를 건네며 아내에게 프러포즈했습니다. 곧 양가 어르신들의 결혼 승낙을 받았고, 이듬해 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짝사랑뿐이었던 나에게 마침내 평생 좋아해도 되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이재명-김혜경 부부│신혼여행



아내는 연년생의 두 아들을 안겨 주었고, 또 잘 길러주었습니다. 내가 시민운동 중 수배를 당하고 구속이 됐을 때에도 아내는 험난한 세월을 잘 견뎌주었습니다. 정치라는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아내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아침저녁으로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는 것이 내겐 최고의 행복입니다. 첫 만남부터 폭풍처럼 쏟아버린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던 아내... 이제 내가 아내에게 더 많이 귀 기울일 겁니다. 정치하는 남편을 만난 탓에 상처 받고 마음 졸이며 살아가는 아내에게 자그맣게나마 위로와 안식이 될 수만 있다면요.






지난 2월부터 브런치 목요 매거진에 연재한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 에피소드를 엮어 책으로 펴내게 됐습니다. 그동안 독자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출간에 즈음하여 미공개 에피소드를 모아 연재를 재개합니다. 19화 <나의 소년공 시절 친구들>에서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희망을 키웠던 어릴 적 벗에 대한 일기장 속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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