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와 시계에 얽힌 이재명의 일기장 속 이야기
나는 시계를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 브랜드였던 오리엔트 시계 공장에 다녔기도 하고, 공장생활을 통해 일찍이 ‘시간은 돈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공장에서는 잔업을 얼마나 했는지에 따라 월급이 추가로 지급됐습니다. 하여 시간 계산이나 돈 계산을 잘못하면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공돌이에게는 말 그대로 ‘시간은 돈’이 맞습니다.
용돈을 모아서 마련한 나의 첫 손목시계는 얼마나 더 소중했을까요. 하루라도 차고 나가지 않으면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고, 어디에 잠깐 두고 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회사에서 보너스로 받은 새 시계도 있었지만 원래 내 시계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습니다. 고장이 나도 거금을 들여 헌 시계를 몇 번이고 고쳐 썼습니다.
시계를 떨어뜨려가지고 고장이 나서 시계방에서 2500원 주고 고쳤는데 또 고장이 나서 시계방에 가서 따졌더니 고쳐준다고 했다. 내 500원씩 용돈을 모아서 산 시계라 내겐 의미가 크다. 결코 버리고 싶지 않았다.
1981-03-02
'시간=돈'이라던 나의 시간관념은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잔업을 더 하면 돈은 더 받겠지만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보다 큰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당장의 이익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꼼꼼하게 시간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본래 게으른 면이 있는 내가 공장 일과 학원 공부를 병행하려다 보니 손목시계 없이는 규칙적인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대학에 진학해 성남에서 흑석동까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는 통학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습니다. 특히 매일 첫교시 수업이 다른 시간에 있어 규칙적인 습관을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시계를 붙들고 끙끙댔습니다. 시계가 보기에도 내 모습이 참 딱했을 겁니다.
오늘은 교련이 들어서 7시에 일어났는데 난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고 느릿느릿 행동했더니 재선이 형이 늦다고 서둘러댔다. 가만히 시계를 보고 시간을 계산해보니 첫날부터 지각하게 생겼지 뭐냐 글쎄. 시간이 급해서 헐떡헐떡 뛰어갔더니 시간이 다 돼 버려서 신발도 제대로 못 신었다.
1982-03-08
영화 모던 타임스의 한 장면 같은 공장에서도 시계를 좋아했고, 지금도 시계를 좋아합니다. 좋은 시계가 아닐지라도 늘 시계를 찹니다. 시계라는 글자를 발견하면 눈이 저절로 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잃어버린 시계를 보관하고 있다'는 누군가의 트윗에 마음이 쓰여서 행여 주인이 보지 않을까 싶어 "시계 보관중이랍니다^^"라고 리트윗을 한 적도 있습니다. 시계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마음,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요.
나는 낚시를 좋아합니다. 고향 안동에 살며 깨끗한 물에서 물고기도 잡고 풍덩풍덩 목욕하던 시절을 잊지 못합니다. 성남으로 이사 와서도 깨끗한 물에서 낚시 한번 해보고 싶어 구석구석 안 가 본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내 고향처럼 깨끗한 물도 없을뿐더러, 낚시대 하나 장만할 형편이 못 돼 낚시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전거 산책길에 우연히 방울낚시를 하나 주웠습니다. 이게 왠 횡재냐 싶어 개울과 저수지를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버려진 낚싯대라 장비도 시원찮고 제대로 된 미끼도 없으니 고기가 낚일 리 없었습니다.
대학에 합격하면서부터 이미 나의 마음에는 여름방학이 되면 깨끗한 물가에서 낚시질을 하겠다는 계획이 섰습니다. 1학기 중간고사를 코앞에 둔 시점에도 오직 낚시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름방학 강원도 여행을 앞두고 처음 돈 주고 제대로 된 낚싯대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낚싯대를 처음 써본 것은 강원도 여행 사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인제로 가는 광치고개를 밤을 새워 넘는 힘겨운 과정을 겪고서야 비로소 강원도 맑은 물에 낚시대를 드리울 수 있었습니다. 메뚜기를 미끼삼아 순식간에 세 마리를 낚아 올렸습니다. 나는 꽤나 솜씨 좋은 낚시꾼입니다.
냇가에 가서 낚시질을 좀 했다. 메뚜기 한 마리 잡아 꿰어서 했더니 꽤 큰 녀석이 물었다. 기분 좋게 끌어 올렸다.
1982-07-01
제주도 신혼여행 때도 아내랑 낚시하러 갔고, 두 아들 자랄 적에도 함께 탄천 변에서 낚시를 즐겼습니다. 시장이 되고서는 막상 시간적 여유가 나질 않아 직접 낚시할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해마다 가을이면 율동공원에서 외래어종인 배쓰를 퇴치하는 낚시대회를 열기도 했지요. 지금도 나는 낚시가 좋습니다. 바쁜 일상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시간이 주어진다면 꼭 낚시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습니다.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많았습니다. 대학교 때는 술도 퍽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술과 담배를 입에 대본 적도 없던 소년공 시절, 대학에 들어가면 사교적인 문제와 기분상의 문제로 술은 좀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일기도 남아 있지요
영어공부도 참 좋아했습니다. 기본기 없이 뒤늦게 시작한 만큼 성취감도 컸던 까닭입니다. 고입 검정고시 때만 해도 까막눈에 가까워 영어 답안지에 줄을 세워 겨우 과락을 면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때까지 제대로 영어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탓입니다.
그때 이후 영어공부에 나름 신경을 썼습니다. 웬만하면 일기에도 아는 영어 단어들을 집어 넣으려 노력했지요. 1년쯤 공부하고 나니 자신감이 조금 붙었습니다. 하루는 남산에 올라 우연히 마주친 미국들의 질문에 영어로 대답을 했는데 어찌나 으쓱했던지요.
남산에 올라가니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것이 매우 시원했다. 중계탑 또한 높았다. 거기서 총 3명의 미국 여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 영어실력을 테스트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에 그 여자들이 내게 북쪽이 어디냐고 묻고 다른 것도 물어봤으니 대략 잘 대답한 것 같아서 어깨가 으쓱 해짐을 느꼈다.
1980-07-02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시계와 낚시는 사뭇 상반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시계는 일상이고, 낚시는 그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하니까요. 최근에는 두 가지가 균형 잡힌 삶을 워라밸이라고 부르지요?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지만 사실 지금은 완전한 균형을 바라고 있진 않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지금은 낚시하러 다니는 것보다 깨끗한 물에서 안전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마음껏 낚시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찾아오겠지요?
지난 2월부터 브런치 목요 매거진에 연재한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 에피소드를 엮어 책으로 펴내게 됐습니다. 출간에 즈음하여 미공개 에피소드 세 편을 브런치에 추가 연재했습니다. 아쉽지만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의 브런치 연재는 이번 20화가 마지막이며, 조금 더 상세한 이야기는 책에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독자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스무 편의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께 위로와 행복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