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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18. 2024

2상한 2야기 - 1





 김주연김주연.

 아침에 도착한 택배 상자의 송장에는 내 이름이 두 번 찍혀 있었습니다.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담당자의 실수거나 기계 오류거나.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택배 상자에는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이름이 두 번 찍힌 사소한 사건 따위는 더 신경 쓸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게 시작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상자를 허겁지겁 뜯자 그 안에는 빛바랜 하얀색 운동화가 들어있었습니다. 곳곳이 닳고 해진 낡은 운동화였습니다. 나는 운동화 밑창을 커터 칼로 자르고 그 안에 숨긴 작고 투명한 지퍼백을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곱게 갈린 새하얀 가루가 들어있었습니다. 필로폰입니다.

 미리 말하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당신에게 분명 이상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부터 내가 할 이 이야기는 분명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결코 내가 마약 중독자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 나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미친놈 소리를 들을까 봐 누구에게도 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니까 하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바로 당신 말입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던 나는 아침부터 줄곧 초조했기 때문에 필로폰을 정맥에 주사하며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아니, 진정시킨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겠지요. 나는 극한의 쾌락을 느꼈습니다. 손가락을 붓 삼아 벽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따뜻한 공기와 산뜻한 바람을, 달콤한 향내와 아련한 기억을.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르는 천국을 그렸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약기운이 점차 사라지며 거뭇한 곰팡이가 핀 천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시 지옥에 떨어진 나는 문득 어쩌다 내 삶이 이렇게 되었는지 기억을 되짚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이곳, 산골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산과 저수지밖에 없는 심심한 마을이지만 괜찮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산을 누비며 탐험 놀이를 했고, 저수지에서 낚시도 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특히 풍경화를 즐겨 그렸습니다. 저수지에 앉아 누런 갈대와 푸른 하늘을 그리고 있노라면 마음이 고요해졌는데 나는 그 느낌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내가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그때까지 줄곧 집에서 살림만 하시던 엄마는 식당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육 년 동안 홀로 제 뒷바라지를 하셨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 평소 제 그림을 좋게 보던 담임 선생님이 제게 장학금을 받으며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엄마 역시 내가 그 대학에 가길 바랐지만 정작 나는 주저했습니다. 더 이상 모든 짐을 엄마에게 떠맡긴 채 학생이라는 핑계를 대고 학교만 다니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장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림만 그려서는 밀린 월세를 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대학에 가는 대신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당시 우리 엄마에게 치근덕대던 대령 아저씨의 연줄로 한 군수 공장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말입니다. 그때 만약 내가 그림을 그리기로 선택했더라도 나는 지금 이런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불현듯 목구멍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낀 나는 거실로 나가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물병이 두 개 있었습니다.

 네. 두 개가 있었죠. 원래 냉장고 안에는 물병이 두 개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나란히 선 물병 두 개가 유독 눈에 밟혔습니다. 그때, 문득 뒤에서 누가 쳐다보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홱 돌렸습니다.

 식탁 위에는 기이할 만큼 똑같이 생긴 호두 두 알이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거실 어항 안에는 금붕어 두 마리가,

 베란다에는 선인장 두 그루가,

 화장실에는 하얀 수건 두 개가,

 안방 책상 위에는 검은 펜 두 자루가 있었습니다.

 하나였던 게 둘이 된 게 아닙니다. 그것들은 원래 두 개씩 있었습니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아까도 말했듯이 오늘 나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다소 이상한 현상에 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나는 안방에 있던 장롱 문을 열어 가장 아래 깔린 솜이불을 꺼냈습니다. 이불을 바닥에 넓게 펴자 그 안에 숨겨두었던 권총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내가 직접 만든 수제 총입니다.

 나는 군수 공장에서 총기류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만들고 또 조립하는 일을 했습니다. 총이 완성되기까지 거치는 모든 과정을 십여 년 넘게 지켜보다 보니 그 작동 원리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종종 취미 삼아 수제 총을 만들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만들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수십 자루의 불량품을 만들었습니다. 격발 불량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하나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나는 제대로 된 총을 만들어 냈습니다. 겉보기에는 조악해 보여도 사람의 심장에 구멍을 내기엔 충분합니다. 네. 오늘 나는 누굴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도 믿기지 않습니다. 어쩌다 내가 살인을 저지를 생각까지 하게 됐을까요? 글쎄요. 만약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 사람을 만나서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만 같습니다.

 군수 공장에 취업한 뒤 얼마 가지 않아 엄마가 폐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담배라고는 입에 대 본 적도 없는 분이신데요. 이후로 나는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결근 한 번 하지 않고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성실하게 일만 했습니다. 나는 매달 받은 월급을 현금으로 빼 집에 있는 커다란 은색 철제 금고 안에 넣어두었는데, 그때는 점점 금고 안을 채우는 돈다발을 보는 게 유일한 삶의 재미였습니다.

 그러다 삼십 대 중반에 처음으로 연애를 했습니다. 공장 동료가 소개해 준 그 사람은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처음부터 제게 적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내 이상형이 아니라 망설였지만 결국 그 정성에 넘어갔습니다. 그 투박한 외모만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에 신입이 들어왔습니다. 그 신입은 칙칙한 기계 장치 앞에 서 있는 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늘 작약꽃처럼 화려한 것이 좋았습니다. 나는 날이 갈수록 그 신입에게 빠져들었고, 상대적으로 당시 내 곁에 있던 그 사람이 갈수록 초라해 보였습니다. 결국 그 사람이 내게 결혼 이야기를 꺼낸 그날, 나는 그 사람에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후 나는 신입에게 본격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저돌적인 나의 태도에 신입은 처음에는 미적지근하게 반응했지만 어느 순간 내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 우리는 곧 나의 작은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실은 나는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 나는 어울리지 않다는 걸요. 앞서 말했듯 그는 온실 속에서 화려하게 핀 꽃 같은 사람이었고, 나는 길바닥에 널린 돌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공장에서 돌아와 보니 집이 휑했습니다. 몸이 아프다며 먼저 퇴근한 그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은색 철제 금고의 문은 텅 빈 채로 열려 있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의 화려함에 눈이 먼 것처럼, 그 사람 역시 내 돈다발만 탐했던 겁니다.

 그때, 내가 나를 좋아하던 그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랬더라도, 나는 지금 이렇게 누구를 죽이려 하고 있을까요?

 검은 백팩 안에 총을 집어넣은 나는 곧바로 집을 나섰습니다. 집 근처 구멍가게 앞에서 시의 변두리로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당신은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있습니까?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입술이 바싹 타들고 심장이 벌렁벌렁했습니다. 나는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거리에는,

 똑같이 생긴 컨테이너 주택 두 채가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검은 세단 두 대가 앞뒤로 정차해 있었습니다.

 붉은빛을 발하는 신호등 두 개가 위아래로 달려있었습니다.

 저것들은 원래 두 개일까? 아니면 내 눈에만 두 개로 보이는 걸까? 그것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어쩐지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 문득 허기가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마트에서 빵과 우유를 산 나는 그 앞 나무 의자에 앉아 그것들을 허겁지겁 입안에 밀어 넣었습니다. 순식간에 빵과 우유를 다 먹어 치우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약기운이 남아있었는지 이번엔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고개를 떨구며 그 자리에서 껌뻑 졸던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며 하늘을 올려 보았습니다.

 하늘에는 똑같이 생긴 하얀 조각구름 두 개가 나란히 떠 있었습니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일이 이쯤 되니 나는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장을 그만둔 이후 나는 한동안 정신과를 다녔는데, 그녀는 당시 나를 담당했던 의사였습니다.

 아, 다시 말하겠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이상한 이야기는 내가 정신과를 다니는 그런 사람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부 오늘 내게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선생님께 전화를 건 나는 대뜸 물었습니다.

 선생님. 하늘에 똑같이 생긴 조각구름 두 개가 나란히 떠 있어요. 어항 안에는 금붕어가 두 마리 있고, 냉장고 안에는 물병이 두 개 있고, 택배 상자에는 내 이름이 두 번 찍혀있었어요. 내 말에 길게 신음을 흘리던 선생님은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 환각 현상을 일으키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글쎄요. 그런 걸까요. 저도 그때는 정말 그런가 싶었습니다만, 내가 헛것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똑똑한 분이시지만 이번엔 틀렸습니다.

 통화를 마친 나는 저수지 상류를 향해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목적 지점에서 나는 B의 별장을 내려보았습니다.

 네. 오늘 내가 죽이려는 인간이 바로 B입니다. B는 악마입니다. 나는 B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오늘 B의 심장에 총알을 박아 내 삶을 바로잡기로 결심했습니다.

 화려했던 그이가 떠난 이후 나는 십 년 넘게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이전 집에서 뺀 전세금으로 산자락 밑에 위치한 작은 농가를 산 나는 그곳으로 이사해 살았습니다. 돈 버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하루가 바빴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을을 산책하며 풋내 가득한 공기를 마셨고, 텃밭에 기른 채소를 따서 점심을 해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내내 산과 강을 그렸습니다. 저녁에는 윙윙 우는 곤충 소리를 들으며 집 근처 소류지에서 밤낚시를 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내 삶을 자책하며 초조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문제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다 억지로 끌려간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B를 만났습니다. 서울에서 작은 사업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의 별장에 초대되었고, 새벽까지 이어져 둘만 남게 된 술자리에서 그에게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날 위로하던 그가 내게 주사를 권했습니다. 그 역시 가끔 맞는 안정제라고 했습니다. 그가 날 침대에 눕히고 주사를 준비할 때 나는 분명 꺼림칙했습니다.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그 주사가 나를 위로해 주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이후 나는 B의 충실한 고객이 되었습니다. 내게 남은 돈 전부를 그가 안정제라고 부르는 마약을 구입하는 데에 썼습니다. 내가 더 이상 돈을 지불하지 못하자 B는 나에게 마약을 제공하는 대가로 자신의 밑에서 일하기를 권유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B의 별장에 출근했습니다. 별장 별채의 지하에서 마약을 종류별로 분류한 후, 중고 거래를 빙자해 서울에 있는 공급책에게 보냈습니다. 나는 제정신이 들 때마다 약을 끊고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었지만 B는 약을 빌미로 나를 구슬리고 협박했습니다. 도망가면 쫓아왔고, 숨으면 찾아냈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가 죽거나 내가 죽어야 합니다. 이제 내 삶은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구린 일을 하는 만큼 놈들은 별장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별장은 본채와 별채로 나누어져 있는데, 두 건물의 현관문은 지문과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열립니다. 별채에 있는 관리실에서는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로 별장 전체를 온종일 감시합니다.

 내 계획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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