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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19. 2024

2상한 2야기 - 2





 내 계획은 이렇습니다. 담장 밖 별장 부지 뒤편에는 밖으로 흉하게 드러난 직경 2미터의 커다란 하수관이 하나 있습니다. 그 하수관 안으로 들어가면 별장의 정문을 거치지 않고도 본채 건물 옆의 배수로로 바로 나올 수 있습니다. 배수로 덮개를 열고 밖으로 나오면 본채 건물 외벽에 설치된 가스 배관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갑니다. 본채 2층에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작은 창문이 하나 있는데, 나는 그 창문이 밖에서 쉽게 열리도록 미리 손을 써두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나는 2층에 있는 B의 침실로 몰래 들어갑니다. B는 일주일에 한 번씩 별장에 들러 자신의 사업을 관리하고 본채에서 자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잠든 B의 심장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길 겁니다. 총소리를 들은 B의 부하들이 본채로 들이닥치기 전에 나는 들어왔던 경로를 통해 별장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놈들은 아마 누가, 어떻게 본채로 들어왔는지도 모를 겁니다.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놈들은 신고하지 못합니다. 그 수상한 별장과 마찬가지로 놈들 역시 뒤가 구리니까요. 아마 보스의 시체를 옆에 두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저들끼리 아수라에 빠질 겁니다.

 별장을 내려보며 계획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내 뒤에서 나를 나지막이 불렀습니다.

 주연. 다른 세계가 열렸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거기엔 동소가 서 있었습니다. 동소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가끔씩 함께 놀던 아이입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소는 태어날 때부터 뇌에 작은 문제가 있어 늘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곤 했습니다.

 나는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동소를 보고 반가워할 수도, 그가 한 아리송한 말을 곱씹을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오직 눈앞에 펼쳐진 그 기묘한 광경에 정신이 사로잡혔습니다.

 내 앞에는 두 명의 동소가 있었습니다.

 주연. 다른 세계가 열렸어.

 나란히 선 두 동소가 같은 말을 번갈아 했습니다. 내가 당황한 모습을 보이자 둘은 눈을 두 번 껌뻑거리더니 활짝 웃고는 동시에 말했습니다.

 주연. 평행 우주의 문이 열렸다고.

 미친 새끼! 뭐라고 하는 거야! 당황한 나는 대뜸 소리치려 했지만, 그때 막 별장으로 향하는 하얀색 고급 세단 한 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B가 왔습니다. 나는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차의 뒤꽁무니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니 두 명의 동소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내 눈앞에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나타난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둘이 쌍둥이였나 싶기도 했습니다.

 나는 별장을 내려보며 B가 잠들기를 기다렸습니다. 열두 시가 되자 본채 2층에 켜진 불이 꺼졌습니다. 때가 됐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곳을 떠나기 전에 눈앞의 저수지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늘과 물에 떠 있는 두 개의 보름달은 정말이지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별장 부지 뒤편에 있는 하수관 앞으로 갔습니다.

 그곳엔 둥그렇게 뚫린 하수관이 두 개 있었습니다.

 내가 며칠 안 나오는 사이에 새 하수관을 뚫은 걸까요? 나는 둘 중 어느 하수관이 본채 건물 옆으로 향하는 하수관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그저 오른쪽에 있는 하수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썩은 어둠 속을 한동안 걷자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배수로 덮개가 보였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 내가 나온 곳은 본채가 아닌 별채 건물 옆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가 다른 하수관을 통해 본채 건물 옆으로 빠져나올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 수고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계획대로 된 건 아니었지만 거기까지 온 이상 다른 방법도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보안 카메라들의 위치를 떠올리며 별채 건물을 조심스럽게 돌았습니다. 별채를 반 바퀴쯤 돌자 멀리 외따로 떨어진 본채 건물이 보였습니다. 이제 내가 서 있는 곳부터 본채 건물까지는 뛰어가야 했습니다만, 항시 그 구간을 찍고 있는 카메라가 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그 카메라가 찍는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스위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카메라는 어떤 동작을 감지하면 때때로 그것을 따라 자동으로 방향을 돌리기도 하므로 놈들은 카메라가 갑자기 다른 쪽을 비추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본채와 별채 사이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스위치가 달린 벽 앞에 섰습니다.

 거기엔 네모난 스위치가 두 개 있었습니다.

 분명 원래 두 개는 아니었습니다. 그새 또 새로운 스위치를 달았을까요? 당황한 나는 한참을 망설였지만 계속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고민 끝에 나란히 붙은 두 개의 스위치 중에서 그저 아래에 있던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아아, 서서히 방향을 돌린 카메라가 나를 찍었습니다. 이제 나를 발견한 놈의 부하들이 별채에서 우르르 달려 나올 겁니다. 나는 그대로 본체를 향해 내달렸습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입니다.

 서둘러 본체 벽에 있는 배관을 타고 오른 나는 미리 작업해 둔 창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짧은 복도를 내달린 나는 놈의 침실 문을 번쩍 열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놈은 그 방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나는 급히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가방 안에는 똑같이 생긴 총이 두 자루 있었습니다.

 이전에 만들었던 불량품이 들어가 있던 것일까요? 둘 중에 어떤 총이 완성품이지? 내가 도무지 구별할 수 없는 두 총을 보고 망설이고 있을 때 밖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간이 없었습니다. 나는 둘 중 하나의 총을 번쩍 집어 들어 B의 심장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딸깍. 펑!

 총은 제 손에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손을 부여잡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놈의 부하들이 방 안에 들이닥쳤습니다. 급히 가방에서 다른 총을 꺼내려고 했지만 그들이 먼저 나의 배를 걷어찼습니다.

 소란에 B가 깨어났습니다. 잠시간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놈이 이내 상황을 파악했는지 부하가 쥐고 있던 칼을 빼앗아 그대로 나의 배를 찔렀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진 나와 눈높이를 맞춘 B가 나를 보며 히죽거렸습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그를 밀어내고 배에 꽂힌 칼을 뽑았습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칼을 마치 광인처럼 휘두르며 살길을 찾았습니다. 놈들이 내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칼을 휘두르며 앞길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배를 부여잡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겨우 별장을 빠져나온 나는 한참을 걷다 어디인지도 모를 이곳에 쓰러졌습니다.

 간신히 벽에 등을 기댄 나는 점점 몸이 식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어쩌다 내가 지금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건지 돌이켜보았습니다.

 그때 내가 다른 총을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위에 달린 스위치를 눌렀다면? 왼쪽 하수관으로 들어갔다면?

 나의 선택은 모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두 하수관은 똑같이 둥그렜습니다. 두 스위치는 똑같이 네모났습니다. 두 총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것 중 하나를 고른 나의 결정에 내 능력이나 자질이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습니다.

 아! 아아! 과연 그것만 그랬을까요? 나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지금껏 나는 내 삶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마치 나에게 있는 줄 알았지만 그 선택을 하는 데에 있어 나의 자유 의지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유 의지는 허상입니다.

 B가 놓아준 그 주사를 뿌리치기에는 내가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나를 좋아해 주던 그 사람과 결혼하기에는 도망간 그 사람이 더 좋았습니다. 그림을 계속 그리기에는 돈이 너무 없었습니다. 나는 늘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립니까? 하나 묻겠습니다. 현재 당신의 삶을 결정한 모든 선택을 할 때, 당신은 어떤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자유로웠습니까? 당신을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처한 그 조건과 환경은 오롯이 당신이 선택했나요? 당신은 당신이 태어나기를 선택했습니까? 자유 의지는 허상입니다. 당신도 늘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냐고요? 지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은 나와 똑같이 생겼으니까요. 급기야 이제 내가 둘이 됐으니까요.

 나는 당신을 보고서야 동소의 말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 앞에 두 번째 우주의 문이 열렸습니다. 나는 내내 두 번째 우주의 것들을 함께 보다가 급기야 두 번째 나와 만났습니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신은 어떤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내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립니까?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그 생각들을 멈추고 그저 가만히 앉아 느껴보세요.

 당신이 사는 세계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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