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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20. 2024

도청 - 1





사상 최초로 아시아에서 열린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2002년 7월, 나는 군에 입대했다. 눈앞에서 월드컵을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미루고 미뤄 두었던 입대였다.

 포천에서 6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친 나는 전방의 한 기계화 군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소문이 자자한 직속 특공대가 유명한 곳이었다. 그 특공대는 부대원을 뽑는 기준도 까다로웠는데, 신체적인 조건은 둘째치고 자체 테스트를 통해 지능이 높은 사람만 골라 뽑았다.

 나는 행여 그곳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될까 봐 잔뜩 겁이 났지만 다행히도 나는 특공대가 아닌 통신대로 차출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세상에 힘들지 않은 군 생활이 없다고 특공대가 고된 훈련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다면, 내가 복무한 통신대는 병사들끼리의 가혹 행위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폭력과 차별은 물론 성희롱도 빈번했다. 견디다 못해 간부에게 몰래 고충을 털어놓기라도 하면, 어찌 된 일인지 그날 밤이면 내가 밀고했다는 사실이 부대 전체에 퍼져 겁쟁이 취급이나 받고 전보다 더 버티기 힘들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뻔한 말처럼, 힘겨웠던 졸병 생활도 결국에는 끝이 났다. 가까운 기수의 선임이 없어 이른바 풀린 군번이었던 나는 상병 계급장을 달자마자 사실상 소대의 실세가 되었다.

 운용 중대 소속인 나는 군단 교환수였다. 교환수는 영내의 통신 센터에서 근무했는데, 그곳은 한마디로 군대 내의 114 같은 곳이다. 장교든 병사든 누군가가 영내의 어디론가 전화하고 싶으면 내가 근무하는 통신 센터로 전화해 원하는 곳을 말하고 연결을 요청한다. 무려 천오백 개가 넘는 전화번호를 달달 외운 교환수들은 상대가 원하는 곳으로 즉시 전화를 연결한다.

 교환수들은 돌아가며 새벽 근무를 섰는데 보통은 그 길고 긴 밤을 지루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딴짓을 했다. 영어 단어를 외운다거나 종이학을 접는 것 따위는 양반이었다. 보통은 사무용 컴퓨터로 게임을 하거나, 외부에서 몰래 반입한 야한 잡지를 봤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딴짓이 바로 도청이다.

 영내의 전화기에는 각각 등급이 부여되어 있는데, 통신 센터에서 교환수가 운용하는 전화기인 교환기는 그중 가장 높은 등급이다. 등급이 높은 만큼 여러 가지 부가 기능이 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기능이 바로 ‘다자 통화’ 다. 원래는 통화 중인 회선에 참여해 여럿이 함께 통화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인데 군 생활 내내 그런 용도로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교환기의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통화 중인 회선에 끼어들면 통화를 하던 사람들은 누가 중간에 끼어들었는지, 몰래 엿듣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영관급 장교들이 이용하는 비화기를 제외하고 다른 일반 전화기로 하는 통화 내용은 모두 엿들을 수 있었다. 우리끼리는 그걸 ‘뚫는다’라고 표현했다.

 교환수들은 그 기능을 사용하여 종종 얼굴도 모르는 하급 장교나 병사가 하는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 주로 외부에 근무지 전화번호를 알려주고는 자신의 근무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게 하는 군인들의 통화가 우리의 주 타깃이었다. 피엑스병과 밤마다 통화하는 여자는 마흔이 넘는 유부녀라거나. 군단 군종 장교는 새벽 한 시에 애인과 폰섹스를 한다거나, 선임병들은 자주 뚫는 전화번호의 정보 등을 서로 나누고 그들이 전날 밤 무슨 이야기를 훔쳐 들었는지 공유하며 낄낄거렸다. 특히 내 바로 맞고참이었던 김 병장은 도청 중독자였다. 그는 새벽 근무마다 줄기차게 남의 통화를 엿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나는 어떤 통화도 뚫지 않았다. 그런 짓을 했다가 간부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바로 영창행인 데다가 무엇보다 남의 통화를 엿듣는 그 행위 자체가 부도덕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김 병장이 전날 들은 통화 내용을 옆에서 신나게 이야기할 때도 나는 늘 한 귀로 흘렸다.

 제대를 세 달여 앞둔 어느 날이었다. 센터에서 홀로 새벽 근무를 서던 나는 컴퓨터 게임도 재미없었고 몇 번이나 돌려본 만화책도 지겨웠다. 나는 하다못해 청소나 할까 싶어 책상 서랍들을 전부 빼보다가 서랍 아래 숨겨진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얼마 전 전역한 김 병장의 것이었다. 온갖 낙서들이 가득한 수첩의 한 페이지에는 특정 전화번호들이 줄줄이 적혀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떤 공통점도 발견할 수 없었을 테지만 나는 보자마자 그게 어떤 번호들인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밤새 뚫었던 번호들이리라. 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워야 했던 나는 그날따라 그 숫자들이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평소 뚫는 행위를 부도덕하다 여기고 하지 않았지만 지독한 무료함 앞에 나는 너무나 쉽게 무릎을 꿇었다. 결국 내가 고집한 신념은 고작 그 정도 무게였을 뿐이었다.

 나는 가장 위에 있는 전화번호부터 차례대로 뚫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통화 중이었던 회선 하나가 뚫리면서 내 귓가에 두 남녀의 목소리가 터지듯 들렸다. 특공대 동문 초소 전화기였다.

 -아참, 영주야. 나 이번 휴가 첫날에 제주도 갔다 와야 돼. 제주도에 사는 친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 할 때 못 가서 이번에 가기로 했거든.

 -친구? 누구?

 -정환이라고 초등학교 동창이야.

 -그래? 그럼 우리 며칠 못 보네?

 -미안해.

 -어쩔 수 없지. 자기도 오랜만에 휴가 나오는데 나만 볼 수 없잖아.

 -역시 우리 영주는 천사야! 대신 내가 자기 좋아할 만한 연극 하나 봐 뒀어. 같이 보러 가자.

 -진짜? 훈련받는 것도 힘들 텐데.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자기야.

 -아니야. 나야말로 늘 자기한테 고마워. 사랑하고. 이번에 만나면 끌어안고 안 놔줘야지.

 -나두 나두. 우리 석호 꼭 안아줄게.

 애인은커녕 편지 한 통 주고받던 이성 친구 하나 없었던 나에게는 낯선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이벤트였다. 나는 왜 선임병들이 종종 남의 통화를 엿들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도청의 맛을 알게 된 나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번호를 뚫어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석호야.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

 -우리 영주. 내가 옆에 있어 줘야 하는데. 고깃집에서 일하면 진상 아저씨들 많이 오지?

 -다행히 대학가라 젊은 애들이 많아.

 -그럼 젊고 잘생긴 애들도 많이 오나?

 -왜? 내가 고무신 거꾸로 신을까 봐 겁나?

 -겁나긴. 나보다 괜찮은 남자는 보기 힘들지.

 -글쎄.

 -글쎄?

 -석호야. 내가 만약에 너 못 기다리고 바람피우면 어쩔 거야?

 -그럼 군대고 뭐고 당장 서울 가야지.

 -그래? 그럼 바람피워야겠다. 우리 석호 지금 보고 싶으니까.

 이후로도 나는 둘의 통화를 엿들으며 자연스레 여러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자의 이름은 오석호, 특공대 소속 상병이다. 여자의 이름은 윤영주, 대학생이다. 동갑인 둘은 남자가 입대하기 직전부터 사귀었고, 약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윤영주가 군에 있는 오석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는 오석호가 부러웠다. 둘의 통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윤영주라는 여자에게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윤영주는 남자 친구에게 늘 상냥했다. 마음씨도 예뻤고 당연히 얼굴도 예쁠 거 같았다. 게다가 씩씩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등록금을 마련했다. 오석호는 자신의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을까 봐 전전긍긍했지만, 내가 보았을 때 윤영주는 결코 의리를 저버릴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오석호가 여복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한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였다. 주말 근무에 들어간 나는 요 며칠 동안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특공대 동문 초소의 전화기를 뚫었다. 이번에도 두 남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남자는 오석호였지만 여자는 윤영주가 아니었다.

 -소연아. 방금 팅커벨 왔다 갔다.

 -팅커벨?

 -보초 서고 있으면 날개가 삼십 센티되는 나방들이 날아오거든. 그게 팅커벨이야.

 -깔깔. 오빠 웃겨. 무슨 날개가 삼십 센티야.

 참 나. 윤영주에게 고무신 거꾸로 신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하던 오석호가 정작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참, 이번에 오빠 휴가가 이틀이라고 그랬지? 제주도 1박 2일은 아쉬운데, 휴가가 왜 이렇게 짧아?

 -곧 우리 부대가 대규모 훈련을 하는데 내가 또 에이스라 빠지면 안 된다고 해서.

 -깔깔. 에이스? 오빠가 뭘 그렇게 잘하는데?

 -뽀뽀?

 -깔깔. 이 오빠 웃겨.

 -웃어? 이번에 만나면 내가 보여줄게. 얼마나 뽀뽀를 잘하는지. 우리 엄지 공주 너무 보고 싶다.

 오석호의 두 번째 애인의 이름은 박소연. 애칭은 엄지 공주. 나이는 오석호보다 두 살 어리다. 휴가를 나간 오석호가 자신의 친구가 근무하는 단골 미용실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 새로 오게 된 헤어 디자이너인 그녀를 만나고 사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오석호가 또 부러웠다. 물론 오석호가 나쁜 놈이라는 생각도 들고, 두 여자가 다소 불쌍하다고도 생각했지만 그 점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다들 얼굴도 모르는 남이었으니까. 오석호의 통화를 엿듣는 일은 그저 내 무료한 군 생활을 달래는 하나의 작은 놀이일 뿐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군대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여름을 조금이라도 피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말년까지 아껴두었던 포상 휴가를 나갔다. 나는 이미 전역한 친구들과 대학로에서 만났다. 오후 내내 피시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즐기던 우리는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저녁을 먹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다. 외진 골목에서 담배 한 개비씩 물고 둥글게 모여 저녁 메뉴를 정하던 중 누군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불현듯 윤영주가 일한다는 대학로의 고깃집이 생각났다. 마침 근처였다. 이렇게 된 이상 이번 기회에 그녀의 얼굴을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괜찮은 곳을 알고 있다며 친구들을 데리고 윤영주가 일하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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