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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22. 2024

도청 - 3





 세상에! 나는 그의 군복에 박힌 오석호라는 이름과 작대기 세 개가 나란히 놓인 계급장을 뒤늦게 확인했다. 그가 그 대단한 오석호였다.

 “왜?”

 “이분 교환대에서 오셨는데, 빌려 간 제초기 가져간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거 창고에 있을걸.”

 “보급 창고 말입니까?”

 “어.”

 “죄송한데 지금 행정반에 저밖에 없어서 말입니다. 오석호 상병님이 이분이랑 같이 창고 가서 제초기 좀 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되겠는데.”

 “안 되지 말입니다.”

 오석호의 거절에 행정 계원은 곧바로 몸을 돌려 내무반을 빠져나왔다. 마치 경찰을 만난 범인처럼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 역시 얼른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내무반을 나와 복도를 몇 걸음 걷는데, 뒤에서 오석호가 우리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야!”

 우리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자 내무반 앞에 서 있던 그가 우리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 짧은 순간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성큼 다가와 내 바로 앞에 선 오석호가 내 눈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행정 계원에게 말했다.

 “알았어. 키 줘. 내가 갔다 올게.”

 행정 계원으로부터 창고 키를 수령한 오석호는 나와 함께 막사를 빠져나와 창고로 향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만남에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여유를 되찾았다. 겁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놈을 알지만 놈은 나를 알 리가 없다.

 창고를 향해 오석호와 나란히 걸어가면서 나는 그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그는 과연 미남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날렵한 턱선. 떡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몸.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어 보일 정도로 키도 무척이나 컸다. 매서운 눈매와 힘찬 걸음걸이는 특공대답기도 했다.

 그가 내 가슴팍에 달린 계급장과 이름을 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 우리는 같은 군단 소속이긴 하지만 속한 부대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위계를 따지지는 않았다.

 “…유재현 병장님. 전역 얼마나 남으셨어요?”

 “이제 한 달 정도?”

 “와, 거의 민간인이시네.”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던 우리는 어느새 창고 앞에 도착했다. 창고 문을 시원하게 열어젖힌 오석호는 바로 앞에 쌓여있던 박스를 뜯어 맛스타를 두 개 꺼내더니 그중 하나를 내게 무심하게 건넸다. 내가 머뭇하며 보급품인데 함부로 마셔도 되냐고 묻기도 전에 그는 이미 뚜껑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단숨에 음료를 비운 그가 군홧발로 캔을 찌그러트리며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창고 안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한번 찾아보세요. 내가 찾아 드려야 해?”

 내가 창고 구석에 박혀 있던 제초기를 찾아 밖으로 나왔을 때, 오석호는 한 손에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를 들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 내무반에서도 본 그 얼굴이었다. 나는 그때 오석호가 대체 누가 자신이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그녀들에게 알려주었는지 추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미처 몰랐다. 오석호는 이미 나름의 논리로 범인을 특정했고, 복수까지 계획하고 있다는 걸.

 그의 그 계획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어느 날 외부에서 통신 센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통신보안. 군단 교환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특공대 동문 초소 연결 부탁드립니다.

 -동문 초소. 통신보안.

 동문 초소라…. 나는 전화를 연결한 후 곧바로 둘의 통화를 뚫었다.

 -선! 봉! 이병! 박진구! 오석호 상병님이십니까?

 -진구쓰! 어때? 백일만에 밖에 나가니까. 공기도 달지?

 -네! 그렇습니다!

 -그래. 내가 부탁한 건? 받아왔냐?

 -네! 상병님 댁에 가서 어머님께 건네받았습니다!

 -그래. 그 안에 금색 CD 있지?

 -네!

 -그래. 그럼 언제 할 거야?

 -… 오석호 상병님….

 -왜?

 -…근데 이거 꼭 해야 합니까?

 -박진구.

 -이병! 박진구!

 -너랑 나랑 앞으로 군 생활 얼마나 같이하는지 알지?

 상병의 협박에 이등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내가 어떻게 하라고 했지? 브리핑해 봐.

 박진구는 어렵게 다시 말을 시작했고, 곧 그의 입에서 나도 알고 있던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우선 금색 CD에 걸린 비밀번호를 풀고 그 안에 윤영주라는 이름의 폴더를 찾습니다.

 윤영주!

 -그 폴더 안에 있는 사진 중에서 여자가 벌거벗은 사진을 찾아서 성인 사이트에 업로드합니다.

 -그래. 내 얼굴은 안 나오게 편집하는 거 잊지 말고. 언제, 어디서 할 거냐?

 -내일 밤 10시에 강동구에 있는 싸이버리아 피시방에서 하겠습니다!

 -왜 집에서 안 하고 피시방까지 가서 그 시간에 하는데?

 -혹시라도 누가 나중에 아이피라도 추적하면 집은 위험합니다. 사람 많은 피시방을 가야 누가 했는지 잡기 어려울 겁니다. 싸이버리아 피시방은 제가 군대 오기 직전까지 아르바이트하던 피시방이라 사정을 잘 압니다. 밤 열 시쯤 되면 알바들이 교대하면서 인수인계하는 시간인데, 그때 CCTV가 못 잡는 구석 컴퓨터에서 업로드하면 아무도 모를 겁니다.

 -진구쓰. 역시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라 다른데?

 -… 오석호 상병님.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뭐.

 -이 여자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알고 싶냐?

 -네.

 -너 엄지 공주 알지?

 -아, 그 미용실에서 근무하시는 오석호 상병님 여자 친구분 말입니까?

 -그래. 걔한테 나랑 헤어지라고 쪽지 보낸 년이 그년이야.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찌 된 일인지 오석호는 박소연에게 쪽지를 보낸 사람이 윤영주라고 짐작하고 끔찍한 보복을 하려는 것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애써 부인해 보려고도 했지만 그건 명백히 내 탓이었다. 윤영주에게 쪽지를 보내고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신이 된 듯한 기분에 취한 내가 박소연과의 관계까지 끝내버렸고, 졸지에 두 여자와 모두 헤어지게 된 오석호는 분노에 휩싸여 애먼 여자의 인생을 끝장내려 하는 것이다.

 둘의 통화를 들은 날 밤, 나는 새벽 내내 죄책감에 시달리며 일을 바로잡을 방법들을 떠올렸다.

 첫 번째, 상사에게 오석호가 벌이려 하는 일을 고하고 그의 범죄를 막는다. 이 경우 내가 어떻게 오석호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결국 그간 내가 도청했다고 자백할 수밖에 없다. 그 벌로 영창에 가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쩌면 육군 교도소로 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군에서 보내게 될 시간이 더 늘어나는 건 물론이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전과도 생긴다.

 두 번째, 오석호를 찾아가서 내가 범인이라고 고백하고 사과를 구한다. 오석호 역시 근무 중에 상습적으로 통화를 했기 때문에 나만큼이나 뒤가 구려 상부에 나를 고발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그가 나를 직접 처벌할지 모른다. 그때 본 그의 매서운 눈매와 커다란 체격이 떠오르자 나는 이 방법도 선뜻 선택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날이 밝았고, 결국 가장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 딱 하나만 남게 되었다. 내가 그간 한 일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새벽 근무를 마치고 막사로 복귀한 나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핑계로 급히 외박계를 냈다. 기일이 지나서 낸 외박계였지만 나는 이른바 말년인 데다가 비교적 얌전하게 군 생활을 했던 터라 다행히도 중대장이 흔쾌히 허락했다.

 부대를 빠져나온 나는 터미널로 달려가 서울행 버스를 탔다. 위수 지역에서 벗어나는 행동이었지만 그런 명령을 어기는 것쯤은 그날 밤 내가 할 일에 비하면 사소하게 느껴졌다. 서울에 도착한 직후, 나는 근처의 옷 가게에서 저렴한 티와 반바지를 사 옷을 갈아입고 바로 강동구에 있는 사이버리아 피시방으로 향했다.

 번화가에 있는 사이버리아 피시방은 컴퓨터가 족히 100대는 될 정도로 규모가 큰 피시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나는 구석 자리를 잡고 앉아 게임을 하는 척하며 주변을 살폈다. 박진구부터 찾아야 했다. 입대 전에 이곳에서 일을 했다고 하니 직원이나 사장과 재회하는 사람을 찾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아홉 시쯤 되자 한 남자가 피시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직원이 반가운 얼굴로 그를 아는 체했다. 들어온 남자는 머리가 짧았다. 결정적으로 한 손에 시디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분명했다. 놈이 박진구였다.

 나는 사전에 여러 상황을 머릿속에 그렸다. 놈이 자리를 잡고 앉으면 피시방의 전원 차단기를 내리고 어수선해진 틈을 노려 CD를 훔친다거나, 건물 앞에 있는 공중전화로 피시방 카운터에 전화를 걸어 박진구를 호출한 뒤 놈이 카운터로 이동하면 그 사이에 CD를 훔쳐 도망간다거나, 이렇게도 저렇게도 틈이 나지 않으면 완력으로 그가 가진 CD를 빼앗고 도망가려 했다.

 하나 곧 내가 머릿속에서 그렸던 모든 복잡한 방법을 쓰기도 전에 절로 더 좋은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직원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박진구는 구석 자리에 있던 손님이 나가자 그 자리에 소지품을 둬 자리를 맡아두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박진구의 자리로 이동해 컴퓨터 앞에 놓여 있는 시디 케이스를 들고 피시방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와 금색 CD 안에 들어있는 데이터를 확인해 보려고 했지만, 비밀번호가 걸려있어 그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음날, 부대로 복귀한 나는 쉬지도 않고 새벽 근무를 들어갔다. 박진구가 오석호에게 보고하기로 한 날이 바로 그날 새벽이었기 때문이다. 놈이 주로 근무하는 시간인 새벽 1시가 되자 교환대로 동문 초소를 찾는 박진구의 전화가 걸려 왔고, 나는 전화를 돌리자마자 둘의 통화를 급히 뚫었다.

 -어떻게 됐어?

 -….

 -왜 말이 없어?

 -…죄송합니다. 오석호 상병님. CD…. 잃어버렸습니다.

 -뭐?

 -잠깐 화장실 갔다 오는 새에 누가….

 -박진구.

 -이병! 박진구!

 -너 이 새끼 솔직히 말해. 잃어버린 거야 아니면 도저히 못 할 거 같아서 나한테 구라 치는 거야?

 -진짭니다.

 -박진구.

 -이병! 박진구!

 -넌 군 생활 꼬였다. 알아?

 잠시간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박진구가 다시 말을 꺼냈다.

 -오석호 상병님.

 -왜?

 -그럼 이제 복수는 안 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직 안 끝났지.

 안 끝났다고?

 -그럼 어쩌시려고 말입니까?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한동안 말이 없던 오석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죽여야지.

 죽인다고!? 누굴? 박진구가 내 심정을 대신하듯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죽인다고요? 누굴요?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누구긴. 지금 우리 통화 듣고 있는 쥐새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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