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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23. 2024

도청 - 4





 나는 깜짝 놀라 그만 들고 있던 수화기를 떨어트렸다.

 뭐야? 대체 어떻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겨우 수화기를 다시 귀에 가져다 대자 내 이름을 반복하는 오석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재현! 유재현! 듣고 있는 거 다 아니까 말해 봐. 유재현 병장!

 오석호는 마치 내가 엿듣는 걸 다 안다는 듯 나를 연신 불렀다. 한참 주저하던 나는 눌려있던 무음 버튼을 풀고 둘의 통화에 끼어들었다.

 -...어떻게 알았어?

 -하, 씨발.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자 박진구가 마치 예정된 수순이라는 듯 물었다.

 -오석호 상병님. 그럼 저는 이제 전화 끊어도 되겠습니까?

 -박진구.

 -이병! 박진구!

 -너 연극 영화과 출신이라 그런가? 연기 기가 막히네?

 -괜찮았습니까?

 -진구쓰. 이제 너 군 생활 폈다.

 -감사합니다! 그럼 복귀해서 뵙겠습니다! 선! 봉!

 그제야 알았다. 둘의 통화는 그 시작부터 나를 노리고 한 쇼였다. 나는 그들의 함정에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대체 오석호가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어떤 실수를 했지? 박진구가 전화를 끊자 나는 서둘러 그것부터 물었다.

 -나인줄 어떻게 알았어?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오석호가 작게 욕설을 내뱉더니 이어 말했다.

 -영주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하면서 소연이 이름을 꺼냈을 때, 나는 그때만 해도 누가 내 통화를 듣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그런데 며칠 지나고 이번엔 소연이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하데? 영주 이름을 말하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지. 휴가 나가서 미용실에 찾아갔지만 소연이는 나를 보려고도 안 했어. 대신 나는 친분이 있던 다른 디자이너한테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어. 미용실에 웬 남자가 들어오더니 박소연 씨한테 전해달라며 쪽지 하나를 줬다는 거야. 소연이는 그 쪽지를 보고 내가 바람피우는 줄 알게 된 거고. 그런데 그때 네가 결정적인 실수를 했어.

 오석호가 한 말로 미루어 보아, 그는 내가 직접 미용실에 쪽지를 전해준 줄로만 알고 있는 거 같았다. 일이 전부 들통난 상황에 굳이 김 병장을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고 이어 물었다.

 -무슨 실수?

 -디자이너들은 보통 따로 쓰는 가명이 있지. 소연이는 미용실에서 에일리라는 이름을 썼어. 넌 카운터를 보던 직원에게 쪽지를 주면서 박소연 씨에게 전해달라고 했어. 그런데 당시 카운터를 보던 직원은 미용실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이라 에일리가 누구인지는 알아도 박소연이 누구인지는 몰랐거든. 그래서 그 직원이 ‘박소연이요?’ 하고 되물어보니까 네가 당황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였지. 그게 결정적 실수였어. 안 해도 될 말을 했거든.

 -기억이 안 나. 내가 뭐라고 했는데?

 -키 작고 아담한 여성분 있지 않냐고.

 그녀의 별명은 엄지 공주다. 그게 대체 무슨 결정적 실수일까? 내가 잠자코 있자 그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웃긴 거지. 소연이는 키가 크거든. 174야. 보통 그 정도 키를 가진 여자한테 아담하다고 하지는 않잖아?

 키가 크다고? 엄지 공주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지. 왜 놈은 소연이를 아담한 여자라고 했을까? 그러다 내가 소연이를 부르던 별명이 생각났어. 아, 엄지 공주! 일반적으로 그 별명을 들으면 여자 키가 작다고 생각하겠구나! 그런데 나는 소연이가 키가 작아서 엄지 공주라고 부른 게 아니었거든. 소연이는 큰 키가 늘 콤플렉스였어. 늘 자신이 귀여운 스타일이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어. 그래서 나는 걔 기분 맞춰주려고 엄지 공주라고 부른 거야. 나보다야 많이 작으니까 딱히 어색하지도 않았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범인은 딱 그런 놈이었던 거지. 소연이를 본 적은 없지만, 내가 그녀를 부르는 별명은 아는 사람.

 아차 싶었다. 비록 내가 한 실수는 아니었지만 엄지 공주라는 별명만 알고 있던 나 역시 지금껏 그녀의 키가 작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내가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영주의 이름도 알고, 소연이의 별명은 알지만 그 얼굴은 본 적이 없는 사람? 누구지? 하루 종일 그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때 네가 내 앞에 딱 나타난 거야. 교환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제야 나는 내가 밤마다 그녀들과 했던 통화들이 생각났어. 그렇지. 교환수야말로 내가 생각하던 범인의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놈들이었던 거야. 그때 처음 의심이 들었어. 혹시 교환수들이 그동안 내 통화를 엿듣고 있었나?

 나는 오석호를 처음 만났을 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휴가 나가는 이등병이랑 말을 맞추고 일부러 교환대를 통해서 동문 초소에 전화를 걸게 만들었어. 이번에야말로 교환대 놈들이 꼭 엿들어야 하는 통화니까.

 -그럼 노출 사진은….

 -노출 사진? 영주는 나와 자는 걸 꺼려했어. 아이라도 생기면 지금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 모텔 같은 데는 간 적도 없어. 그건 그냥 너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지.

 -내가 안 나타났으면? 내가 갈 거라고 어떻게 확신했지?

 -네가 안 나왔어도 내 계획은 이미 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었어. 내가 할 일을 알게 돼버린 너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테니까. 그리고 난 네가 나올 거라고 어느 정도는 확신했어. 넌 윤영주를 특별하게 여겼으니까.

 … 오석호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소연이가 쪽지를 받았다고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영주도 같은 쪽지를 받아서 나와 헤어지자고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일부러 둘의 집 앞에까지 찾아가 귀찮게 굴었고 결국 네가 둘한테 쓴 쪽지를 모두 두 눈으로 확인했지. 범인을 잡아야 하니까. 아무튼 나는 두 쪽지를 다 보고 알게 됐어. 넌 윤영주를 특별하게 여겼다고. 소연이한테 보낸 쪽지와 다르게 영주한테 보낸 쪽지 내용에는 어떤 감정이 보였거든.

 그러니까 결국 경솔했던 건 김 병장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나도 외박을 나가서 피시방에 잠복하고 있었어. 교환수 중에 어떤 놈이 내 통화를 듣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하니까. 곧 낯익은 얼굴이 나타나더라? 제초기를 가지러 왔던 말년 병장. 그건 너였어.

 긴 설명을 마친 오석호는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장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네 얼굴에 한 방 먹이고 싶지만, 괜히 시끄럽게 일을 벌여서 안 그래도 빡센 군 생활 더 빡세게 하고 싶지는 않아. 너도 그렇잖아? 평화롭게 하자고. 대화로. 잘 들어.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그가 협박하듯 고압적으로 말했다.

 -더 이상 내 통화 엿듣지 마. 이번 휴가 때 혼자 외롭게 보내다가 복귀 전날에 클럽 가서 겨우 한 명 꼬셨거든?

 와, 대단한 새끼.

 -앞으로 이 전화기로 가끔씩 통화할 텐데, 곱게 전역하고 싶으면 앞으로 절대 훔쳐 듣지 말라고. 후임병들한테도 인수인계해. 특공대 동문 초소 전화기는 절대 엿듣지 말라고. 혹시라도 앞으로 누군가가 내 통화를 또 엿듣는다 싶으면 휴가 나가서 널 찾아갈 거야. 나는 쪽지 같은 건 안 보내. 그냥 몸으로 말하지. 무슨 말인지 알지?

 나는 오석호와의 통화를 끝낸 직후 김 병장의 수첩을 꺼내 특공대 동문 초소 번호가 적힌 페이지를 갈가리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두 달 뒤, 나는 전역하면서 후임들이 아닌 간부들에게 당부했다. 교환기에 도청 기능이 있고 교환수들이 악용할 우려가 있으니 시스템상으로 그 기능 자체를 아예 못 쓰게 해 달라고.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흘렀다. 현재 나는 국내 최고의 통신 회사에서 약 15년째 근무하고 있다. 나는 사내에서 꽤 힘이 세다고 말할 수 있는 부서의 팀장을 맡고 있다. 나중에 인사 관계자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학벌도 그다지 좋지 않았던 내가 이곳에 입사한 데에는 통신대에서 교환수로 근무하며 기계 교환기 시스템을 익혀두었던 점이 큰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군대에서의 주특기가 도움이 되었던 셈이다.

 요즘도 가끔 남의 통화를 뚫는다. 아, 무선 전화기는 뚫리지 않을 것 같은가? 특별한 프로그램이 따로 깔리지 않고서는 도청이 불가능할 것 같은가? 글쎄. 과연 그럴까?

 아무튼 뭐, 안심해도 좋다. 나는 그때의 일을 교훈 삼아 이제는 그 어떤 일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호기심에 그녀의 얼굴을 보러 간다거나, 쪽지를 써서 무언가를 바꾸려는 쓸데없는 행동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컴컴한 사무실에 홀로 남아 몰래 듣기만 할 뿐이다.

 당신이 하는 그 은밀한 통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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