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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14. 2024

그 남자 죽자 그 여자 살자 - 1

 





ㆍㆍㆍ 그 남자 ㆍㆍㆍ

 나는 지금 무너진 다리 위에 서 있다. 이제 그 무의미한 발버둥을 끝내려 한다.

 하루 종일 잠들지도, 그렇다고 깨어 있지도 않은 상태로 어둑한 방에 누워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 지금 뭐 해? 별일 없지? 밥은 먹었니? 불고기가 맛있게 됐어. 일요일에 겉절이랑 반찬 들고 내려갈게. 오랜만에 우리 아들 얼굴 좀 보자.

 문득 현관문을 열자마자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시신을 볼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덜컥 목이 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압둘이라고 불리던 때가 있었다. 아랍 사람 같은 내 외모를 보고 놈들이 붙인 별명이다. 놈들은 나를 보면 때리고 비웃었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놈들을 하나하나 죽였다.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지금보다 그때가 나았다. 그들에게 비웃음이라도 주었으니까. 내 마음속엔 증오라도 있었으니까. 지금 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마음은 텅 비었다.

 고시텔 공용 주방에서 우울증 약을 먹다가 문득 옆에 있는 가스레인지를 발견했다. 둥근 모양의 점화 손잡이를 잡아 돌리자 탁 소리와 함께 파란 불길이 치솟았다. 그 위로 내 손을 서서히 가져갔다. 글쎄, 그저 느끼고 싶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존재한다는, 그런 감각. 불꽃에 가까워질수록 손끝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저기요.

 누군가 뒤에서 나를 깨웠다. 돌아보니 104호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라면을 끓여 먹어야 한다며 나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했다. 주방을 나오면서 그녀가 아까부터 앉아서 보던 두꺼운 책을 힐끗 보았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뇌를 해부한 그림과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한 수식들이 빼곡했다. 그제야 생각났다. 언젠가 그녀가 카이스트라고 적힌 잠바를 입은 걸 본 적이 있다. 명문대 다니는 잘난 여자. 축 처진 내 뒷모습을 보고 비웃었겠지. 아무 쓸모없는 놈이라고.

 사실이 그렇다. 하는 일이 없다. 한동안 시도 쓰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힘도, 딱히 떠오르는 시상도 없었다. 어차피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다. 내가 봐도 한심한 그 시를 다른 이들이라고 좋아할 리 없다.

 그동안은 방바닥에 누워있는 내 얼굴 위로 바퀴벌레가 기어가도 쫓을 힘이 없었다. 며칠 기를 쓰고 약을 먹었더니 이제야 조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됐다. 비로소 이 세상을 떠날 힘이 생겼다.

 목을 맬까? 가스를 마실까? 손목을 그을까? 높은 곳에서 떨어질까?

 아무 의미 없는 이 삶을 어떻게 끝낼까?

ㆍㆍㆍ 그 여자 ㆍㆍㆍ

 전두엽과 변연계를 잇는 신경망이 얇아진 107호 남자가 자신의 유전자를 하찮게 여기고 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만나 생긴 열돔의 영향으로 폭염 경보가 발령된 어젯밤, 나는 내 방보다 섭씨 4도가량 낮은 고시텔 공용 주방에서 전공 서적을 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107호 남자가 주방 안으로 들어왔다.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정수기에서 물을 받은 그가 가져온 약 봉투에서 알약을 꺼내 힘겹게 삼켰다. 탁자에 놓아둔 하얀 봉투에 그가 처방받은 약의 이름들이 적혀있었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중추신경 흥분제, 베타 수용체 차단제….

 전부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을 증가시켜 우울감을 개선하는 약들이다. 담당의가 복합 처방을 내린 것으로 보아 107호 남자의 전두-변연계 신경망이 꽤나 많이 얇아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탁!

 약을 먹던 남자가 갑자기 정수기 옆에 있는 가스레인지를 켰다. 남자는 타오르는 파란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서서히 자신의 손을 불길 위로 가져갔다. 신체적 고통으로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려는 자해 시도로 보인다. 우울증이 심할 때 보이는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다.

 저기요!

 위급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그의 행동을 막고 라면 핑계를 댔다. 내 말에 대꾸 없이 그대로 주방을 빠져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107호 남자와는 지금껏 말 한 번 섞어 본 적 없다. 딱 한 번, 그가 쓴 시를 읽어 본 적은 있다. 언젠가 그가 들고 나온 쓰레기봉투에서 빠져나온 종이 위에 그 시가 쓰여 있었다. 그 종이에 적힌 언어는 분명 한글이었지만,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가득해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비록 친분은 없지만 나는 그를 돕고 싶다. 적어도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만큼은 막고 싶다. 모르면 몰랐지, 107호 남자의 심각한 상태를 뻔히 목격하고도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는 건 아니다. 도파민이 분비되어 조금이라도 흥분감을 느끼거나 아드레날린이 분출해 심장이 떨리는 등의 신체적 반응은 일절 없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이타적인 사람이라서도 아니다. 내가 그를 돕는 행동은 인간 개체 수준에서 보면 이타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유전자를 가진 집단의 수준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다. 결국 내가 그를 돕고 싶은 건 그런 유전자의 본능이지 않을까?

 방으로 돌아온 나는 화이트보드에 107호 남자를 살릴 계획을 세웠다. 섣부른 위로는 역효과만 부를 수 있기에 나는 철저하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를 도우려고 한다.

 어떻게 해야 그의 우울증을 완화할 수 있을까? 가난, 스트레스, 고독 등 여러 사회적 요인이 우울증을 유발하지만 이런 요인들을 바로 잡아 그의 상태를 개선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 우선 생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울과 무기력은 결국 생물학적 문제다.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수치를 올리면 그의 우울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 107호 남자는 현재 그 수치들을 올릴 수 있는 항우울증 약을 먹고 있지만 보통 이런 약들의 특징은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는 점이다.

 더 즉각적이고 더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문득, 며칠 전 집으로 오는 길에 강제로 받은 광고지가 생각났다. 집에서 버릴 생각으로 가져왔던 그 광고지를 찾아낸 나는 화이트보드의 한구석에 그것을 붙였다. 광고지 첫 줄에 커다랗게 박힌 헤드라인이 내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내 몸은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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