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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16. 2024

그 남자 죽자 그 여자 살자 - 3





ㆍㆍㆍ 그 남자 ㆍㆍㆍ

 그놈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내게 압둘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던, 늘 앞장서 나를 비웃었던 그놈.

 복싱을 배우겠다고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온 그놈이 구석에 있던 날 한눈에 알아보고 알은체했다.

 와, 진짜 오랜만이다. 한 십 년 만인가? 어떻게 여기서 보냐. 잘 지내지?

 나는 놈의 인사에 병신같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반갑다. 하나도 반갑지 않으면서, 한쪽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으면서.

 며칠 후, 샌드백을 때리던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놈이 비식비식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스파링 한번 할래? 지금 관장님 없잖아. 재미로 하자. 오 분만. 재미로. 응?

 실은 체육관에서 처음 마주친 날 이래로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나는 놈의 제안을 못 이기는 척 받고 무심하게 링 위로 올랐다. 흥. 글러브를 껴보기는커녕 아직 줄넘기만 하는 놈이. 나를 샌드백 삼아 때렸던 옛 기억만 믿고 자신만만한 그놈이, 자신이 맹수라도 되는 줄 알고 오만하게 달려드는 그놈이 실은 가소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 내가 놈을 두들겨 패 줄 차례였다.

 나는 그간 갈고닦았던 실력을 발휘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스텝을 밟으며 가드가 부실한 놈의 빈틈을 향해 잽을 날렸다. 내 주먹에 맞은 놈의 얼굴이 연신 뒤로 잦혀졌다.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해 애가 닳은 놈은 동작만 쓸데없이 커졌다. 에이, 그러면 안 되지. 이내 나는 무방비가 된 놈의 얼굴에 체중이 제대로 실린 스트레이트를 꽃아 넣었다.

 쾅!

 놈이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링 밖에서 우리의 스파링을 구경하던 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링 위에 대자로 뻗은 놈의 꼴사나운 모습을 내려보았다. 이상하게 통쾌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도리어 불편했다.

 충격을 받았는지 놈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체육관 천장만 멍하니 보았다. 꿈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겠지. 나 같은 병신에게 맞아 쓰러졌다는 게.

 애써 웃어 보이며 겨우 몸을 일으킨 놈이 전보다 더 거칠게 내게 달려들었다. 머리를 들이밀고 팔꿈치도 휘둘렀다. 흥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맞을 곳만 더 많아질 뿐이지. 나는 동요하지 않고 더 분주히 발을 움직이며 놈의 빈틈에 주먹을 날렸다.

 아아아악!!

 얻어터지다 못해 분을 이기지 못한 놈이 소리를 마구 내지르더니 갑자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십 년 전 그 말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압둘. 그 카레 냄새는 여전하네?

 순간 사물함 안에 들어있던 상한 우유의 썩은 내가 훅하고 내 코를 찔렀다. 등 뒤에서 비웃음이 터졌다. 돌아보니 놈들 모두 나를 보며 깔깔 웃고 있었다.

 압둘! 간다!

 내 귓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날아온 발길질에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나도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서 끝내고 싶었다. 놈을 빨리 때려눕혀 자꾸만 떠오르는 이 개 같은 기억을 떨치고 싶었다. 증오에 사로잡혀 동작이 절로 커졌다. 결국 놈이 포착할 만큼이나 커다란 빈틈을 내보였다. 아까부터 내 털끝이라도 건드리고 싶어 안달 난 놈의 주먹이 처음으로 내 오른쪽 뺨을 때렸다. 유의미한 충격은 아니었다. 링 위에서 이 정도 대미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이 정도 주먹에 맞아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후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주먹이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때다 싶어 쏟아지는 놈의 주먹을 막는 데만 급급했다. 가드를 올린 두 팔 사이로 교복을 입은 놈의 모습이 보였다. 십 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링 한구석에 몰려 쪼그려 앉은 나를 놈이 그때처럼 짓밟았다.

 며칠 동안 방바닥에 누워 그 스파링만 곱씹었다. 그토록 열심히 체육관을 다녔는데 막 들어와 줄넘기만 하던 놈에게 쓰러졌다. 시간이 부족했을까? 아니, 나라서 안 된 거겠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서. 석 달이 아니라 삼 년이어도, 평생을 해도 그게 나라서.

 꽃대가 꺾여 떨어진 꽃은 다시는 봉오리를 피우지 못한다. 차고 더러운 바닥에 버려져 그대로 사라지고 잊힌다. 애초에 그것이 다시 꽃을 피울 일은 없다. 그 꽃은 아무런 쓸모도, 의미도 없다. 잠시 착각했다. 다시 활짝 꽃 피울 줄 알았다.

 옥상에 올라 난간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뛰어내릴까, 이제 전부 끝낼까. 죽고 싶을 만큼 죽고 싶었지만 결국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옥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104호 여자와 또 마주쳤다. 그녀가 나를 보고 비웃었다. 죽을 용기도 없는 겁쟁이라고.

 스마트폰으로 한참을 검색한 끝에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찾았다. 그곳엔 나처럼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채팅방에 들어갔다가 같은 동네에 사는 한 남자를 알게 됐다. 남자의 아이디는 짱딱. 나이가 엇비슷했던 우리는 어느 정도 말이 통했다. 내가 사는 고시텔로 그를 초대했다. 죽는 것도 혼자서는 외로웠다.

 다음날, 고시텔로 짱딱이 찾아왔다. 그는 키도 크고 살집도 꽤 있었다. 우리는 채팅방에서 차마 다 하지 못했던 대화를 이어 나눴다. 짱딱은 활기차게 이야기하다가도 금세 침울해졌다. 감정이 들쑥날쑥했다.

 우리가 마주 앉아 어떻게 죽을지 논의하고 있는데 누군가 밖에서 현관문을 두들겼다. 외시경으로 밖을 보니 104호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가 왜 나를 찾아왔을까? 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대뜸 내게 전부터 자살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서 있는데 그녀가 불쑥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나도 죽고 싶어요. 우리 같이 죽을래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잠시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마침 같이 죽을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다. 말없이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짱딱이 갑자기 나타난 그녀를 수상한 눈으로 보길래 내가 대신 소개했다. 이 고시텔 104호 사시는 분이에요. 이분도 죽고 싶으시대요. 짱딱이 의심이 가득한 투로 물었다. 왜요? 왜 죽고 싶으신대요? 그러게. 그건 나도 궁금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그녀가 곧 자신의 사연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들어가려고 몇 년을 공들인 회사에 떨어졌다. 이제 학비는커녕, 학자금 대출만 잔뜩 있고 더 버티기 힘들다. 그 사연이 딱히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내가 그 여자가 아닌 이상 무슨 이유를 대도 그녀를 이해하기는 힘들 테니까. 남들이 죽으려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각자의 사정을 털어놓은 뒤 어떻게 죽을지 논의하는데, 104호 여자가 대뜸 손에 쥔 하얀 알약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어렵게 구한 거예요.

 애그래다시알. 스위스의 안락사 기관에서 사용하는 약으로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아이템이다. 이 약을 복용하면 서서히 졸리다 잠에 빠져들고, 그대로 심정지가 온다. 아무런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데다가 어쩌다 암거래되는 것도 말도 안 되게 비싸다. 내가 말했다.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그녀가 말했다. 죽는 마당에 돈 받아서 뭐 해요. 그건 그렇다.

 쇠뿔도 단김에 빼자고, 우리는 이렇게 모인 김에 이 자리에서 함께 약을 먹기로 했다. 유서 따위를 쓰자는 사람도 없었다. 다들 세상에 별 미련이 없었다.

 하나, 둘, 셋. 애그래다시알을 동시에 입에 넣은 우리는 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이 순간에도 냉장고에 있는 먹다 남은 김밥이 생각나는 내가 하찮게 느껴졌다. 허기를 참아내고 버티자 곧 졸음이 몰려왔다. 서서히 의식이 희미해졌다. 아, 이제 끝이구나. 안녕. 세상아.

 다음 날 아침. 멧돼지가 우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짱딱이 코 고는 소리였다.

 어젯밤, 어마어마한 복통에 시달렸다. 짱딱과 나는 밤새 방을 굴러다니며 비명을 내질렀다. 진짜 죽을 뻔했다.

 밤에는 그렇게 배가 아팠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배가 고팠다. 냉장고에 있던 김밥을 꺼내 하나씩 입 안에 집어 먹으며 생각했다.

 이 괘씸한 여자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ㆍㆍㆍ 그 여자 ㆍㆍㆍ

 미국 플로리다 대학의 크래도 사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을 시도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새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은 이들 중 대부분이 다시 죽으려 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다리 위에서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만 빼고.’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 목을 죄는 이 빌어먹을 노끈이 제발 끊어졌으면.’

 고민 끝에 죽으려는 행동을 한 직후 그 어느 때보다 살고 싶은 마음이 들며 후회했다는 것이다.

 옥상에서 내려온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107호 앞에 멈춰 서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이전에 그를 살리고자 썼던 방법이 결과적으로 그의 상태를 더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된 이상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밤, 나는 107호 남자를 찾아가 나 역시 죽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내 말을 믿을 수 있도록 내가 죽으려 하는 많은 이유를 준비했지만 그는 별말 없이 나를 집 안으로 들였다.

 집 안에 죽고 싶은 또 다른 남자가 있던 건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107호를 살리는 것과는 상관없는 변수였다. 게다가 짱딱이라고 불리는 그 남자 역시 죽고 싶다는 마음을 돌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둥글게 둘러앉아 자살하려는 이유를 말하는 자리에서 짱딱은 자신의 사연을 말하다가 버럭 화를 냈다. 몸이 덜덜 떨리고 호흡이 가빠지기도 했다. 작은 자극에도 폭발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았다.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에게 해를 가하기도 하지만, 그 분노의 대상이 자신이 되었을 때는 자기 자신에게 해를 가한다.

 이어서 107호 남자가 자신의 사연을 덤덤하게 풀어놓았다. 글쎄. 그의 사연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만, 지금껏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꽤 감미로웠다.

 곧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자는 둥,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자는 둥 두 남자가 앞다퉈 살벌한 말들을 꺼내길래 나는 서둘러 준비한 약을 꺼내 그들 앞에 내밀었다.

 베아팔란디르. 위에서 작용하는 이 하얀 알약은 통증을 유발하는 체내 화합물을 생성시킴으로써 어마어마한 복통을 유발한다. 지속적인 고통에 반응하는 대뇌 피질의 활동을 연구하기 위해 화학과에 제약을 의뢰해 받았던 약으로 통증 감각만을 극심하게 증가시킬 뿐 다른 부작용은 없다. 당시 피실험자를 구하기 힘들어 뭣도 모르고 내가 약을 먹었다가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대로 죽는 줄 알고 화학과 놈들이 범인이라고 내내 소리를 질렀다. 평소 죽고 싶은 생각이라고는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해 준 약이니 임상은 성공적으로 마친 셈이다.

 이 약이 애그래다시알이라고 말하자 둘은 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긴, 애그래다시알은 구하기는커녕 구경하기도 어려워 다들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나도 검색 끝에 겨우 약 이름만 알아낸 정도였다. 내가 그 약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충분한 믿음을 주었을 거다.

 짱딱이 그러면 이제 죽을 날짜를 정하자며 내 작전에 초를 치려고 들어 내가 지금 당장 약을 먹자고 말하며 그를 다그쳤다. 짱딱씨는 세상에 아직 미련이 남았나 봐요? 날짜는 무슨 날짜를 잡아요.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가요? 나는 다음날부터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할 예정이라 출국을 앞두고 있었기에 반드시 그날 107호 남자에게 약을 먹여야만 했다. 내가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결국 우리는 그 자리에서 동시에 약을 삼켰다. 107호 남자와 짱딱은 베아팔란디르를, 나는 그것과 똑같이 생긴 비타민 B를 먹었다. 나는 양옆에 누운 남자들이 모두 잠든 걸 확인한 후, 집으로 돌아와 캐리어를 챙겨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일주일간의 일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집 안의 물건들이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는 후텁지근한 바람이 들어왔다. 도둑이 들었을까? 방바닥을 자세히 보니 검은 발자국이 가득 찍혀 있었다. 아, 그 발자국 모양은 내가 며칠 전 옥상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이 생겼다.

 107호! 그 남자가 왜? 그가 왜 내 집에 침입했을까?

 극도로 불안해진 나는 가만히 집 안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집을 나오는 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고시텔을 나온 나는 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다소 외진 길을 지날 때였다. 급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옆 골목에서 번쩍 나타난 누군가가 내 몸을 거칠게 잡아당기더니 와락 끌어안았다. 그 괴한은 내가 소리 지르지 못하도록 내 입부터 손으로 덥석 막았다.

 나를 내려 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는 107호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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