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우 Jul 03. 2016

500일의 썸머

'네 말이 옳았어, 단지 내가 아니었던 것 뿐이야'


내 인생, 내가 가장하는 애정 하는 영화인 '500일의 썸머'가 한국에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적어도 두 번 아니 세 번은 영화관에서 봤을 이 작품을 아쉬운 대로 집에서 꽤나 오랜만에 다시 틀어보았다. 전에 썼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내게 안겨주곤 한다. 하나의 작품에서 이렇게 다양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건 감히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재관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톰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말하고 공유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톰이 썸머를 얼마나 크게 또 소중하게 생각하는지가 느껴졌다. 내 안에 있는, 속에 들어 있는 얘기를 세상 밖으로 꺼낸다는 건 바지 주머니 속 먼지를 털어내는 일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경험상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알기에, 잘 알기에 자신의 속을 드러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잘 알기에 이 장면이 새삼 더 크게 와 닿았다. 또 그랬던 이에게 내 안에 모든 것을 보여준 사람에게 '우리는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오는 그 마음 절임이 얼마나 오랫동안 내 속을 뒤 흔드는지도 잘 알기에 더 와 닿았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아니 볼 때마다 인상 깊은 씬은 두 사람이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같은 말이라도 앞에 '첫' 자가 붙는 단어들은 알 수 없는 설렘을 불어넣곤 한다. 첫 키스 첫사랑이 그러하듯 이 장면 속 톰은 썸머가 자신의 속 얘기를 털어놓은 '첫' 상대임을 알게 됐을 때 보는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얕은 탄식을 뱉고 말았다.


두 장면은 많이 닮아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인, 특별한 존재라는 걸 각인시켜주는 장면이기에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톰과 썸머 이 두 남녀는 관객들에게 더 많은 질타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톰은 여자들에게 썸머는 남자들에게 말이다. '아니 여자가 저렇게까지 했는데 남자는 뭐하는 거야?' 그리고 '아니 저 여자는 이렇게까지 하고 이제 와서?' 이렇게 엇 갈리는 반응이 나오게끔 유도했다는 게 다시금 생각해봐도 참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나눈다. 나와 그 사람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님을,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함께 해나가는 것이 보다 현명하게 사랑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단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아픔이 가고 사랑은 오듯 여름은 가고 가을은 온다. 아직도 무더운 여름 속에서 허우적 되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극장에서 꼭 봤으면 하는 작품 '500일의 썸머'. 이제는 놓아주세요, 당신의 여름을.



매거진의 이전글 곡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