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울기 전 이사를 했다

어디에 살더라도 부디 안녕히 계시기를

by 늦작가

여전히 어설픈, 30s


"내 삶의 감초 조연, 네 삶의 감초 조연"



매미가 울기 전, 이사를 했다. 남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난 후 총 4번째 이사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재건축된다. 생각보다 관련 일정이 빠르게 추진되면서 이주를 해야 했다. 40년을 뿌리내린 나무도, 많은 아이들의 아지트였던 놀이터도, 할머니들의 사랑방 느티나무 밑 그늘도 모두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이번에도 우리 부부만의 이사 준비를 했다. 그동안 우리와 좋은 이웃이 되어주셨던 분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인사를 할 분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 분들과 나눈 일상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장모님의 단골집이기도 한 정육점 사장님은 은퇴를 앞두고 계신다. 나이도 많으신데, 5년 뒤에도 장사를 하긴 힘들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는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고기를 사 구워 먹으며 작은 축하의 시간을 가졌더랬다. 사장님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우리 부부를 귀여워하셨다. 국거리를 200g만 사도 수육거리를 400g만 사도 제일 좋은 고기를 찾고 찾으셨던 사장님의 푸근함에 무장해제되었던 것 같다. 농담처럼 "앞으로 좋은 일 있으면 어디서 고기를 사 먹어요?”라고 말했더니, 사장님은 답이 없이 낡은 냉장고를 쓰담쓰담하신다. 대답대신 사장님은 제일 좋은 국거리 고기를 찾고 또 찾으셨다. 농담이 머쓱해졌다. 사장님의 이별 준비는 우리보다 더 힘드실 것 같다.



떡볶이 아주머니와도 인사를 해본다. 아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사먹었던 떡볶이다. 그 입맛이 어디 가겠는가. 임신한 아내 심부름으로 종종 사 먹었던 떡볶이다. 사장님은 항상 아이가 건강한지 산모는 건강한지 물어봐주신다. 손님들이 없어서 장사할 곳을 새로 찾아보신다고 하셨다. 나는 어디가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해본다. 주변에 비싼 초밥집도 갈비집도 있지만, 5000원짜리 떡볶이가 오래오래 그리울 것 같다. 사장님은 순대를 천천히 썰면서 본인 얘기를 처음으로 해주셨다. 장사를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도 이 날 처음 알게 되었다. 어묵 국물을 담아주시는 사장님 표정에 잠시 미소가 스친다. 장사하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랐을까? “날씨가 어떨지 걱정되네요, 조심히 가세요” 우리가 떠나는 길을 염려하며 축복의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쩌면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 이별이 이렇게 아쉬운 것이었음을 느낀다.



경비반장님과의 마지막 인사를 해본다. 이 아파트에 오기 전 만났던 경비반장님들은 무뚝뚝하시고 이웃들을 경계하는 느낌이 많았다. 진상도 많이 만나셨으리라. 그래서 그렇게 마음과 얼굴도 딱딱해졌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반장님은 참 다르셨다. 마을의 어른 같다고 해야하나. 새벽에 출근하는 이웃들과 안부도 묻고, 이중주차된 차를 밀고있으면 어디선가 손살같이 나타나셔서 손을 보태셨다. 분리수거를 하고 있으면 칭찬도 해주시고, 인자한 미소도 품위있는 말투도 따라하고 싶은 분이셨다. 우리가 한동안 안보이다가 아이를 안고 아파트로 돌아오자 반장님은 기뻐하셨다. 반장님께 인사드리겠다며 아이를 안고 경비실을 찾았을 때, 반장님은 내 품에서 잠든 딸을 보며 눈가에 미소를 띄우며 재롱을 부리시기도 했다. 경비반장님도 이제 은퇴하신다고 한다. 그동안 애써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반장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어주셨다. 매일같이 보던 이웃이었지만, 다시는 마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저릿해졌다. 반장님께 딸 아이 이름을 말씀드렸다. 반장님은 여러번 아이 이름을 되뇌이셨다. 절대 잊지 않으시려는 것처럼



갑자기 삶이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자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며, 수많은 조연배우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도움을 주고받는 그런 인생 드라마. 나 역시 다른 드라마 속에서 웃음과 따뜻함을 남겨주는 감초같은 조연이고 싶다. 명품 조연 덕분에 나의 인생 드라마가 더 따뜻해지는 것 같다.



정육점 사장님, 떡볶이집 사장님, 경비반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어요.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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