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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rsona Mar 18. 2021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뜻이 맞는 벗이 멀리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니던가

(人不知不慍 不亦君子乎) 

    

 칠십을 달리는 삶에 예나 지금이나 공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에 빠져서 항상 배우고 싶고, 벗과 만나고 싶고, 성정을 부드럽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국어국문학과에 다니던 대학 시절 시도 배우고 수필, 소설, 문학, 한문학도 배웠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도 가졌다. 그 시절 배움이 삶의 희망이었고 목마름이었다. 공자가 말한 ‘이 또한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가?’에 심취하며.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학습이야말로 나에게 천직으로 주어진 교사의 길을 걷게 했다. 38년이란 긴 시간을 재직하며 부족하고 부끄러운 가르침도 있었다. 배움이란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삶은 나를 좀 더 발전된 인간의 모습으로 이끌었다. 그 배움이 나를 한층 더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여 교사로서의 삶을 만족스럽게 했고 또한 기쁘고 즐겁게 했다. 

 종종 졸업한 제자들을 만날 때 “선생님! 그때가 좋았어요!” “선생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하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었다. 제자들이 나를 알아줄 때는 기쁜 마음, 그렇지 않을 때는 섭섭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공자님의 즐거움처럼 성내지 않을 수 있는 배려와 이해와 사랑의 마음뿐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낼 필요가 없으니 ‘이 또한 군자 같지 아니한가.’

 가르침과 배움의 교직을 정년으로 퇴임하고 6,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의 매일 아침 운동으로 골프 연습을 하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다. 약속이 없는 날 오후에는 작은 거실의 소파에 엉덩이를 묻은 채 TV를 시청하는 것으로 시간을 죽이는 무료한 인간이기도 했다. 참으로 긴 시간 생산적이지 못한 세월을 보냈다. ‘나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 누구일까? 왜 이리 시간을 좀 먹는 허깨비가 된 걸까?’ 회의와 안일함의 연속이었다. 많은 고민과 생각에 젖어 나 자신에게 혐오감까지 들 정도로 영혼이 메말랐던 생활이었다. 더하여 퇴직하고 글 한 번 안 쓰고 못 쓰는 나 자신을 자책하며 깊은 수렁에 빠지곤 했다.

 퇴직한 뒤에는 함께 지냈던 친구들과 추억들을 떠올리며 마음으로만 존재했던 그들과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느 날 저녁 TV를 보다 어느 초등학교 교장이 환경보호 운동 차원으로 아이들과 함께 휴지 줍고 열심히 봉사한다는 훌륭한 선생님을 소개하는 미담 프로를 보았다. ‘어~어~ 저게 누구야! 기정이? 아~아~’ 난 TV를 보자마자 학교를 찾아보았다. 학교 홈페이지에 소개된 윤기정 교장. 골목길 단짝인 옛 친구가 아닌가! 다음날 확인 전화를 했다. 세월은 흘러 각자의 삶의 길을 달리던 친구와 기쁜 마음으로 다시 연결된 것이다. 오랜만의 연락이 비록 소리만의 만남이었지만 기쁜 즐거움을 가져다 준 대화였다. ‘이 또한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가!’ 

 그 후 만남의 시간을 가끔 가졌다. 세월이 유수 같다는 느낌이 든 몇 년 뒤, 2016년 12월 중순 오후, 친구의 전화 한 통이 날아왔다. “여보게, 친구 기수! 그동안 잘 지냈는가? 이 해가 가기 전에 얼굴 한 번 봐야지!” “어허! 이거 누구야? 반갑다. 자네, 양평에서 잘 지내고 있지? 한 번 찾아 간다고 하면서 차일피일 됐네.” “다름이 아니라, 종로3가에 수필교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제출한 글 읽고 평가한다네. 교수님이 강의도 하고 글 쓰고자 하는 우리 또래 문우들이 함께 합평도 한다네. 여기 나올 때마다 자네 생각이 나고 연말도 되고 해서… 어떤가?” “아하! 그래, 반갑다. 그렇지 않아도 새해에는 무엇을 해 볼까 찾던 중일세. 이렇게 좋은 곳을 소개해 주니 고맙네. 장소 시간, 문자로 넣어 주시게.” 이처럼 먼 곳으로부터 좋은 소식 오고 친구와도 만날 수 있는 연락이 왔으니 ‘이 또한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가!’ 

 매주 목요일 종로 수필교실을 향하기 위해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안고 버스에 오른다. 달리는 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익숙한 풍경에 눈을 고정해 가면서. 양재역에 하차하여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를 음미할 수 있는 스크린도어에서 전철로 환승을 한다. 종로3가역 6번 출입구로 나와 오늘의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가 모여’ 각자 제출한 작품을 합평하는 자리에 들어선다. 

 교수님의 강의와 새로운 작품에 대한 합평이 끝난 후 참새가 방앗간을 건너 날아가지 못하듯 지도교수님, 문우님들 함께 하는 뒤풀이 시간이 이어진다. 이름난 골목길 식당에서 수업한 내용을 나누고 한 잔의 약주도 털어 넣는다. 언제나 뒤풀이 자리가 나에게 활력을 더해 준다. 매주 친구와의 만남은 설렘과 열기를 동반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이 친구와 더불어 보람된 삶의 길로 함께 나아간다는 이 기쁨,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삶의 경험을 목말라 하면서 오늘도 독서와 글쓰기의 새로운 배움으로 나아간다. ‘이 또한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가!’

 나는 오늘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또 다른 ‘삼락(三樂)’인 ‘일독’(一讀, 책 읽고 글 쓰고 항상 배우는 선비정신), ‘이색’(二色, 사랑하는 사람과 변함없는 사랑을 나눔), ‘삼주’(三酒, 벗과 함께 술 마시는 즐거움)에 빠지기 위해 만남의 장(場)인 종로3가 수필 교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새로운 만남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기쁘고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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