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와 대화
매일 아침 “Good Morning, Hi!" 하면서 거실에 나오면 손녀 그레이스는 “안녕, 하부지!” 하고 인사를 한다. 손녀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영어로 인사를 하는데, 손녀는 나의 눈높이에 맞추려는지 늘 한국어로 화답한다. ‘하부지’라는 말이 익숙한 듯 항상 이 말이 입에 붙는다. 손녀가 말을 배울 때 주로 우리 내외와 함께 지낸 것이 한국어로 대화를 하게 된 이유가 아닌가 한다. 손녀가 태어나서 몇 년 간은 우리 내외가 호주를 방문하면 으레 딸과 함께 손녀도 한국을 찾았다. 거의 반 년 정도는 우리와 함께 지내다시피 했다. 한 때는 한국어를 일상적으로 쓰다 보면 영어로 자기 뜻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어린 아이들이야말로 태어난 그 나라 언어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남을 누구나 인정하는 바가 아닌가.
영어에 서툰 나는 손녀가 하는 말을 이해 못할 때가 많다. 프렙스쿨(Prep school, 우리 학제로 유치원)에 가기 전 TV 앞에서 영어 만화 프로그램에 빠지는 손녀다. 무슨 말인지 몰라 “왓(What)?” 하고 물으면 “하부지, 그것도 몰라!”라고 할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어린 아이 앞에서 한참 작아지는 나 자신을 느끼며 “우이, 빨리 영어회화를 익혀야지.” 하는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호주로 날아올 즈음에만 머리에 박힌다. 국어교사로 퇴직한 나는 아직도 오로지 “난 우리말만 사용할거야” 하는 시대착오적인 고집을 부리곤 한다.
손녀와 나는 공통점도 있다. 가끔 심심해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손녀는 혼자 놀이하는 것을 즐긴다. 내 딸도 혼자 외롭게 지냈지만 손녀 또한 형제자매 없이 혼자 자랐기 때문이다. 아내와 내가 호주에 오면 손녀는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으려 한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나도 함께 놀며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손녀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은 새벽부터 내 방으로 내려와 “하부지, 뭐해? 같이 놀자”고 보챈다. 함께 있다는 것만 해도 손녀는 매우 좋은가 보다. 남동생을 5 년 만에 봤는데 예쁘고 귀엽지만 아직 어려 함께 있기는 성가신 모양이다.
어느 날은 “하부지, 뭘 제일 좋아해? 골프 치고 노트북 하는 거 말고.” “으음, 하부지는 먹는 게 제일 좋아.” 수준에 맞춘 웃자고 한 이야기다. “에이, 하부지 그렇게 먹는 거 좋아하면 아빠처럼 배불뚝이 돼지처럼 될 텐데.” 하며 나를 웃게 만들고 나에게 글감을 던져주곤 한다. 이제는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가름하는 나이가 되어 할아버지의 생각과 기분을 어느 정도 아는가 보다. 하기야 학교에서 사리 분별에 대해 잘 가르쳤을 테니까. 그래, 아이도 어른의 스승이 될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레이스, 하부지는 호주 음식이 내 입에 딱 맞는단다. 피쉬 앤 칩(Fish & Chips), 스테이크 앤 필라프(Steak & Pilaf), 미트 파이(Meat Pie), 치킨(Chicken), 파스타(Pasta), 피자(Pizza) 모두가 다 맛있어." 손녀는 입은 짧지만 누가 내 손녀 아니랄까봐 나와 식성이 대체로 닮았다. 안성맞춤이라고나 할까 비슷한 식성이다 보니 먹는 것에는 난처한 처지에 빠지지 않아 다행이다. "그레이스, 그리고 하부지는 김치찌개, 된장국도 좋아 하지만 빵과 우유에 시리얼을 먹는 것이 더 좋단다. 너도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전에 잘 먹는 거 말이야."
“하부지, 그럼 또 뭐가 좋아?” “으음, 다음에는 여기 날씨. 너무 따뜻해서. 그리고 맑은 하늘이 너무 좋단다. 그레이스 수영하는 거 보는 게 제일 좋지만.” 이 나라 사계절은 열대성과 온대성의 조화가 이루어진 기후로 건조한 편이지만 청정한 하늘에 깨끗한 공기를 맘껏 누릴 수 있다. 아내와 작은 호수 공원을 산책할 때면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을 만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특이한 모습을 지닌 새들의 맑고 아름다운 소리에 젖어 아내와 더불어 평안을 누리는 때가 좋다. 마음을 정화 시켜주고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자연의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이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하부지, 그런데 왜 그렇게 약 많이 먹고 ‘흐읍’ 하면서 소리를 내는 거야?” “응, 실은 하부지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숨 쉬고 하는 게 힘들고 기침을 자주 하기 때문에 약을 먹고 ‘흐읍’ 하는 거야.” “그럼 하부지, 많이 아파?” “아냐 아프지는 않아.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나라에서 지내는 것이 하부지 몸에 좋다고 한단다.” “그럼 하부지, 우리나라에 와서 아빠 엄마랑 함께 살아 으~응?”
미세먼지나 황사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살 수 있는 이곳이 나도 좋다. 인생에 있어 건강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부지, 그럼 또 뭐가 다음에 좋아?” “으음, 난 호주 사람들이 좋단다. 너도 길거리를 가거나 마트에 가보면 모든 사람들이 웃으며 인사하는 거 봤지? 함께 어울리며 얼굴을 마주하거나 우연히 대할 때마다 늘 웃으며 인사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 거 말이야.” 남에게 피해 안 주고 피해 안 받고 살아가는 개인주의적 모습이 보이지만 다민족 국가의 시민들이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 진실하게 다가온다. “근데 하부지, 싫은 건 없어?” “으음, 글쎄 싫은 것도 있지만 그건 다음에 우리 이야기 하자.”
벌써 호주 브리즈번을 여러 차례 오가고,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로 유명한 시드니, 작은 유럽이라 불리는 멜버른도 다녀오기도 했다. 아름다운 자연의 정경과 도시와 인간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나라에서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호주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의 생각이 가끔 들곤 했다. 호주 문화와 한국 문화가 분명히 다름을 알면서도 호주 생활에 좋고 싫은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슬로우 라이프를 살아가는 호주는 자연과 함께 뛰놀고, 가족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중요한 국가다. 따라서 일찍 문을 닫는 가게가 많다. 오후 6~7시에 영업을 마치기 때문에 밤의 문화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불만이었다. 계절이 상반되는 나라이다 보니 계절에 맞추어 준비하고 적응해 가는 것이 마뜩치 않았고 오른 쪽으로 돼있는 운전석, 혼란을 야기하는 주행도로, 자가용이 없이는 가고 싶은 곳이 있더라도 쉽게 왕래할 수 없는 것 또한 부담을 주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곳임을 새삼 느끼면서 한국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하부지, 근데 늘 혼자만 노트북 해? 나도 게임하게 해 줘.” “으음, 그레이스는 탭이 있지, 그걸로 하면 되잖아.” “에이, 탭은 싫어. 화면 큰 걸로 하고 싶어.” “그래, 그럼 한 시간만 하는 거야.” 가끔 내 방에 와서 이렇게 졸라 댈 때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주고 옆에 앉아 맑고 고운 눈동자를 바라본다. 회전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학교에서 일러준 학습 게임을 즐기는 손녀의 모습을.
오늘따라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게 보이는 손녀의 모습에서 한국인의 피를 느끼는 나는 행복감에 젖는다. 더 나아가 손녀가 한국어로 말할 때 더욱 자랑스럽게 여긴다. 가끔 자기 아빠와 이야기할 때는 영어로만 하는 것을 본다. 지금은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젠가는 한국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는지도 모를 거란 안타까운 마음에 빠져들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