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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rsona Mar 18. 2021

경로석 촌극

 목요일이면 수필 강의 들으려고 양재역에서 종로3가까지 지하철을 탄다. 사람이 많이 탄 차가 오면 그대로 보내고 다음 차를 기다린다. 여유를 갖고 집을 나서는 덕에 한두 대 기다려도 시간에 쫓길 일은 없다. 승차하면 곧바로 경로석 쪽으로 간다. 운 좋게 빈자리가 있으면 앉아서 좋고, 멀지 않은 길이기에 서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노인 중에는 경로석을 힐끗 쳐다보고 자리가 없으면 일반석에 앉아 있는 젊은 청년 앞에 가서 서는 이들이 있다. 자리를 양보하라는 무언의 ‘나이 갑질’이 아닐는지? 그런 모습이 싫어서 아예 일반석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경로석 쪽에 서서 가도 마음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서 있는 사람들끼리도 빈자리가 날 때를 대비해서 주변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나이를 가늠해본다. 빈자리가 났을 때 눈치코치 볼 것 없이 앉아도 될지, 옆 사람에게 일단 권해보고 나서 사양하면 앉을지, 바로 앞자리가 비지 않아 한 걸음 옮겨서 앉아도 염치없이 보이지는 않을지 따져보아야 한다. 특히 여성이 가까이 있다면 재빠른 몸놀림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게다가 정거장에서 새로 합류하는 경쟁자를 살피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주변 사람 대개가 같은 생각이라는 점을 잊으면 진다. 

 나는 서 있을 때부터 견제, 아니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머리도 검고 복장은 캐주얼하니 ‘저 인간은 이쪽 번지가 아닌데 왜 여기 서 있는 거야?’ 하는 속내를 감추지 않은 눈길로 쳐다보기 일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지공도사’ 6년 차인데 거리낄 게 없다. 자리가 나면 앉는다. 앉았다고 해서 상황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 보이면 무조건 양보한다. 연상으로 보이는 사람이면 판단결정해야 한다. ‘난 아직은 젊어.’ 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일어설지, 눈을 감아 못 본 거로 할지를. 전철 타는 일이 뭐라고 목요일마다 이러는지 우습기도 하다. 한편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갈등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면서 사는 소소한 재미도 느낀다.

 지하철에서의 일을 돼 새기며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하루의 일과를 접는다. 작은 일에서 비롯한 생각이 깊이와 넓이를 더해간다. 작은 갈등이지만 남에 대한 배려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던가? 돌고 도는 우주 만물 온갖 것들의 시시비비와 미추를 따지지 말고 유연하게 보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세상의 먼지와 티끌도 이전에는 의미 있는 무엇의 일부였을 터이다. 이처럼 세상살이에서 겪는 조그만 불안과 초조도 삶의 의미 있는 먼지이고 티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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