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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rsona Mar 18. 2021

BMW

 독일산 명차 ‘BMW’가 아니라 교통수단인 ‘BMW’(BusMetroWalking) 이야기다.   

  

#Bus(버스)

 학창 시절은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그 무렵 꿈이 버스를 타보는 것이었다. 버스 타고 학교 가는 동네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대학교까지 모두 걸어 다닐만한 거리였다. 중학생 시절 어머니는 가끔 나에게 스웨터 보따리를 들려서 장사하러 나갔다. 창피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엄청나게 신났다. 꿩 먹고 알 먹듯 버스도 타고 덤으로 자장면도 먹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픈 추억도 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재수하던 해였다. 그 시절에는 시내버스에도 차장이 있었다. 차장은 젊은 아가씨들이었다. 그네들은 학생증을 일일이 확인했다. 당시 대학생은 버스 할인이 있었다. 재수하는 신세에 학생증이 어디 있겠나? 대학 진학도 못 했는데 할인 혜택도 없으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사복을 입었을 때도 대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대학생도 교복이 있었다. “재수생인데 좀 봐주세요.” 선처를 호소하면 흘낏 쳐다보고는 그대로 “오라이!” 하는 차장이 있는가 하면, ‘버스를 타지 말든지…’ 대놓고 험한 말로 무안을 주던 차장도 있었다. 차장은 버스 안내양으로 이름이 바뀌고 요즘엔 시골 버스에서도 찾기 힘든 희귀 직업이 되었다. 어쩌다 버스를 타면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모든 것이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Metro(지하철)

 가끔 지하철을 탄다. 승차하면 경로석 쪽으로 직진한다. 운 좋게 빈자리가 있으면 앉아서 좋고, 서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노인 중에는 경로석을 힐끗 쳐다보고 자리가 없으면 일반석에 앉아 있는 젊은 청년 앞에 가서 서는 이들이 있다. 자리를 양보하라는 무언의 ‘나이 갑질’로 느껴진다. 그런 모습이 싫어서 아예 일반석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경로석 쪽에 서서 가도 마음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서 있는 사람들끼리도 빈자리가 날 때를 대비해 주위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나이를 가늠해본다. 빈자리가 났을 때 눈치 볼 것 없이 앉아도 될지, 옆에 사람에게 일단 권해보고 사양하면 앉을지, 바로 앞자리가 비지 않아 한 걸음 옮겨서 앉아도 염치없이 보이지는 않을지 따져보아야 한다. 여성, 특히 중년여성이 가까이 있다면 아연 긴장한다. 재빠른 몸놀림도 염두에 두어야 하니까.

 나는 서 있을 때부터 견제, 아니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머리가 아직 세지 않았고 복장도 캐주얼하니 ‘저 인간은 이쪽 번지가 아닌데 왜 여기 서 있는 거야?’ 하는 눈길로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지공 도사’ 그러니까 ‘어르신 우대용 교통카드’ 사용자이니 거리낄 게 없다. 자리가 나면 앉는다. 앉았다고 해서 상황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 보이면 무조건 양보한다. 연상으로 보이는 사람이면 나름 판단․결정해야 한다. ‘난 아직은 젊어.’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일어설지, 눈을 감으며 못 본 체 할지를.

     

#Walking(걷기)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 소리 옛 임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백년설의〈나그네 설움>을 흥얼거리며 집 앞에 있는 청소년문화센터 무궁화공원을 걷는다. ‘정처 없는 이 발길’이 아니라 하루 만 보 걷기를 채우기 위해서다. 몇 년 전부터 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영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원 한 바퀴 거리는 1.46km. 다섯 바퀴면 얼추 만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길을 한쪽으로만 돌자니 지루하다. 하늘도 올려다보고 옆으로 이어진 숲의 나무들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돌아보기도 한다. 그것도 지루하면 공원을 벗어나서 거리로 나선다. 마트나 시장에 가서 쇼핑이나 눈요기를 한다. 우리네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새롭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걷기를 마치면 제자가 운영하는 커피숍에 들러 잠시 쉬었다가 일어선다. 제자가 있으면 더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이제는 걷기가 즐겁고 거르면 서운한 일상이 되었다. 건강이 없으면 다른 것을 다 갖추어도 소용이 없다. “늙기는 쉽지만,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는 앙드레 지드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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