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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rsona Mar 18. 2021

호미로 막을 걸

 몸에 이상 증세가 있을 때 바로 병원에 가면 쉽게 나을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심하게 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긴 병원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 나뿐이겠는가?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 삽으로 막을 걸 포클레인으로 막는다.’라고 해야 이해하기 쉬울 것도 같다.     

 벌써 재작년 일이다. 호주에서 귀국하기 일주일 전쯤부터 감기와 몸살이 왔다. 호주는 6월이면 초겨울인데 딸, 사위며 손주들 만난 기쁨으로 건강에 소홀했나 보다. 몇 년 전부터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 있어서 환절기마다 주의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감기와 몸살기가 있다 싶으면 바로 약을 먹고 땀을 흥건하게 흘려서 몸을 개운하게 했다. 

 귀국해서는 날씨가 따뜻해서 곧 나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기침약만 먹고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이 병을 키웠다. 며칠 지나도 낫지 않고 기침이 심해졌다. 놀란 아내와 함께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진찰 결과는 심각했다. 당장 큰 병원으로 가란다. 힘이 쭉 빠지고 앞이 노랗게 변하며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아내가 황급히 콜택시를 부르고 아주대 병원으로 달렸다. 

 응급실 병상에서 환자 옷으로 갈아입었다. X-ray 촬영과 혈액 검사를 했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닌지 초조했다. 병상으로 찾아온 의사가  ‘폐렴 초기’라고 했다. ‘폐렴에 걸리면 나에겐 치명적이라던데…’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의사는 초기여서 다행이라고 위로하며 당장 입원 수속을 밟으란다. “정리해야 할 은행 일도 있고, 정기적인 모임, 그리고 목요일마다 있는 수필 교실은 어쩌나?” 걱정하는데 아내는 “어쩌나?”가 무슨 소리냐고 어이없어 했다. 초기라 하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핀잔 섞인 위로를 했다. 

 오후에야 병실이 나서 입원을 했다. ‘갑갑하고 답답한 병원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는 순간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가 떠올랐다.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존시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준 작품이 아니던가? 마지막 잎새에 의지한 절실한 삶의 소망. ‘그래, 나도 불안해할 것 없어, 병원에선 의사만 믿자.’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입원해서 며칠 동안 주변 환자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증상이 심각한 사람들이었다. 몇 달, 몇 년씩 병상에 있는 환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픈 것은 별것도 아니네.’라는 생각에 위안을 가졌다.     

 담당 의사가 치료 결과가 양호하다며 퇴원을 해도 좋다고 했다. 푹 쉬면서 가볍게 걷기 운동만 하란다. 퇴원하고 며칠 뒤 은행에 갈 일이 있어서 외출했다. 일을 마치고 집 앞의 건널목을 건너와 몇 걸음 걷는데 왼쪽 다리 종아리가 뜨끔하면서 통증이 왔다. 퇴원한 뒤로는 가볍게 천천히 걸었으니 무슨 큰일이야 있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하루 이틀 지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혼자 정형외과를 찾았다. 근육이 파열됐다는 것이다. 젊은 의사가 사무적인 말투로 한마디 했다. 수술할 단계는 아니지만 깁스를 해야 한다고. ‘아이고, 할 일도 있고 일정이 있는데….’ 혼란스러웠다. “그럼, 깁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는 내 질문에 “그럼 하루 이틀 물리치료 받으시고 정 안 되겠다 싶으시면 깁스하시죠.” “아하!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리치료를 받고 귀가해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펄쩍 뛰었다. “오늘 당장 깁스해서 빨리 나을 생각을 해야지 물리치료가 뭐냐?”고 채근했다. 다음날 순한 양처럼 이끌려 병원으로 갔다. “많이 아프셨어요? 어떻게 하시게요?”라는 의사의 말에 아내는 당장 깁스해주라고 주문을 했다. 머리가 갑자기 띵해졌다. ‘에구, 내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 거야?’ 어제 어떤 환자가 목발 짚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들게 걷는 모습이 떠올랐다.

 뼈가 절단되거나 인대가 끊어지면 4, 5개월은 거동을 못 한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내 경우는 경미한 근육 파열이라서 3, 4주 정도 깁스를 하면 나을 거란다. 갑자기 깁스하고 목발 짚고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에 ‘멘탈’ 붕괴.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4주면 한 달인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팔자에도 없던 깁스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갑갑하고 답답한 하루하루였다. 낮에는 혼자라는 외로움,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허전함으로 힘들었다. 여러 생각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혼자 있는 시간은 견디기 힘들었다. 공연한 한숨이 자주 나왔다. 이겨내려고 마음을 다져보지만 마음이 약해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뚝심이 약해졌나 보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복에 겨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푹 쉬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골골 백세’라는 말이 있다. 골골거리고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면서 오래 사는 것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 요즘 시대는 골골대며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가 더 큰 관심사다. 

 뒤늦게 겪은 일로 건강을 우선 생각하게 되었다. 남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겠지만. 건강이 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안 좋아지는 상태도 있다.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또 다른 질병이 나에게 생길지 알 수 없지만, ‘골골 백세’가 되지 않으려면 때를 놓치지 않고 치료를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다졌다. 어디 병뿐이랴. 매사에 때가 있는 법, 때를 놓치지 말아야 삶이 건전하고 행복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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