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우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재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늙은 나무가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안톤 슈낙의 애틋하고 절절한 산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슈낙은 재스민의 향기가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더니 왜 슬프다고 했을까? 옛 추억으로 사라진 꽃향기 때문일까. 추억에 남아 있는 늙은 나무, 아니면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요즘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부쩍 고향이란 단어에 생각이 젖는다.
어린 시절 고향이라면 시골 농촌만 생각했다. 논과 밭, 흙길과 시냇물, 강과 산이 있고 그 위로 떠오르는 둥근달과 낮게 엎드린 초가집이 있는 마을을 막연하게 생각했다. 나에게 고향이란 단어는 실체가 없는 상상일 뿐이다. 내가 태어난 곳이지만 자란 곳이 아닌 아버지의 고향은 이북 땅에 있어 거리는 가까워도 못 가는 곳이다. 아버지가 늘 그리워하시던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경기도 개풍군 개성이 나의 고향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닐지라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 고향의 이미지는 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먼지 풀풀 뿜어대는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에 몸을 싣고 찾아가 며칠씩 머물던 외조부 댁이다. 청계산 아랫마을 ‘저푸리’는 호걸들이 피리를 불며 유람하던 곳이라 하여 적촌(笛村), 적푸리, 적취리, 적드리, 저풀이로 부르기도 하였단다.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이다. 초가집 뒤에 야트막한 동산이 있고 앞에는 넓은 저수지가 있어 아름다웠다. 집주변에 연꽃과 잎이 시원해 보이는 토란도 많았다. 옛날 훈장이셨던 근엄함과 풀피리 불어주시던 자상한 성품의 외할아버지다. 외할아버지는 저푸리 저수지에서 낚아 올린 고기를 맛나게 구워 내 입에 넣어 주기도 하셨다. ‘기산 영수(箕山潁水) 별 건곤(別乾坤) 소부(巢父) 허유(許由) 놀고….’ 하며 춘향가 중중모리장단에 판소리 하시던 외할아버지다. 지금은 옛 마을 모습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초‧ 중‧ 고‧ 대학 시절까지 살았던 또 하나의 고향 같은 서울 약수동이 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오순도순 지내고, 좁은 골목길에 모여 구슬 따먹기, 딱지치기, 자치기도 하며 개구쟁이처럼 다투기도 하고, 서로 힘자랑하면서 씨름도 하며 철모르게 지내던 동무들, 여기저기 숨고 찾는 술래잡기도 했던 친구들, 뒷산과 앞들을 함께 누비며 지내던 벗들. 이성이 싹트기 시작된 곳. 골목길을 오가며 〈그 집 앞〉을 부르고 짝사랑을 가슴에 품고 설레던 곳이다.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사랑과 온갖 정성으로 배려하고 베풀었던 친구의 어머니, 인정이 넘치고 정겨운 이웃들이 살던 곳이다. 약수동은 미움과 설움이 함께 버무려진, 그래서 더 애틋하고 달곰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마음의 고향이다.
‘어깨동무 내 동무’ 하던 벗들이 설이나 추석 명절에 고향 간다고 으쓱대며 자랑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갈 고향이 없는 나는 외톨이 심정이 되곤 했다. 고향은 서러움, 외로움과 동의어였다. 그러고 보면 태어난 고향은 기억에도 없지만 고향이라 생각하며 떠올릴 수 있는 고향이 둘이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어려서부터 고향에 대한 노래에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동요〈고향의 봄>, 가요 ⟨고향 무정⟩, ⟨머나먼 고향⟩, ⟨타향살이⟩, 팝 ⟨Green Green Grass of Home⟩과 이 노래의 번안곡인 ⟨고향의 푸른 잔디⟩등을 듣거나 부르면 마음이 편안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가요무대에서 가끔 듣는 고복수의 <타향살이⟩를 특히 좋아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 저쪽….’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한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더 고향을 그리워한다. 고향에는 고향의 사람과 풍경과 그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추억이 있다. 미운 정 고운 정 모두 든 곳이 고향이 아닌가 한다. 기쁘고 즐거운 추억이 남는 곳이고, 찾아볼 수 있고 만나볼 수 있고 함께 누릴 수 있는 쉼터이기 때문에 고향을 담는 것이 아닐까. 낯선 타향도 익숙해지고 정이 들면 고향처럼 느끼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고향은 늘 동경의 대상이고 아쉬움의 원천이지만 ‘지금은 내가 머무는 곳이 고향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지낸다.
퇴직 후 아내와 해마다 호주에 있는 가족을 찾는다. 언제나 아픈 손가락인 외동딸과 손주들, 사위를 만나는 기쁨도 크다. 이곳에서 어릴 적부터 즐겨 부르던 동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고향의 봄〉을 아내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주들에게 불러준다. 자장가처럼 포근한 고향 노래를 생각나게 하는 가족이 있는 곳이야말로 영혼의 쉼터요 진정한 마음의 고향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