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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Jan 14. 2021

가산점을 받아야 하나?

지난 1월 1일에 2021년 5급 공채 선발인원이 공개됐다. 내가 지망하는 교육행정직은 전국에서 6명을 뽑았다. 작년엔 7명이었는데 한 명 줄었다. 안 그래도 바늘 같은 문이 더 좁아졌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방대생이다. 그래서 행정고시를 친다면 지방인재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선발예정인원이 10명 이상일 때, 1차와 2차 합격자가 선발인원의 20%에 모자란다면, 20%만큼을 추가합격시켜주는 제도다. (단, 성적이 너무 낮다면 20%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합격되지 않는다. 실제로 지방인재가 20% 할당을 채운 전례가 없다. 매년 미달이다.) 실제로 받는 구체적인 가산점보다는 이렇게 얘기하는 게 이해하기 훨씬 편하리라.


지방인재는 유리한 제도다. 그냥 유리한 제도 정도가 아니라, 써먹지 않으면 병신일 정도로 압도적인 도구다. 그러나 내가 희망하는 '교육행정'직은 선발예정인원이 10명이 아니라서 지방인재가 적용되지 않는다. 내가 시험을 치기 전인 2019년까지 교육행정직은 계속 10명 이상을 선발해왔는데, 2020년부터는 10명 이하 단위로 뽑고 있다. 올해도 6명으로 10명에 못 미친다. 하지만 일반행정직은 111명이라 지방인재를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선발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운 적인 요소가 줄어든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래서 나는 TO가 뜬 다음 한동안 고민했다. 일반행정으로 바꿀까, 교육행정직을 고수할까.


일반행정은 합격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사실상 행시생 평균 정도만 되더라도 SKY 학생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일반' 행정이라는 말처럼, 일반행정직은 모든 부처에 배치된다. 내가 원하는 교육부로도 충분히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연수원에서 성적을 매겨서 성적순으로 부처를 고른다. 그런데 교육부는 기피부서라 연수원에서 꼴등을 해도 갈 수 있을 정도다. 따져보면 합격도 쉽고, 원하는 교육부로도 갈 수 있는데 내가 왜 망설이나 싶었다.


친구 몇몇에게 전화를 했다. 두 명은 가산점을 버린다는 것 자체도 아까운데 그렇게 큰 가산점을 버릴 수는 없다며 일단 합격이 중요하다며 일반행정직 공부를 권유했다. 행정고시 커뮤니티에도 물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버리면 바보'라며 일반행정직 시험을 치기를 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행정직 시험을 치는 게 맞아 보였다. 그런데 나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마, 교육행정직을 쳐야 할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명확한 꿈을 버리는게 더 큰 가산점을 버리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마음이 뻥 뚫렸다. 내가 고민하고 있던 교육행정직을 쳐야 하는 구실을 대신 찾아주셨다. 나는 교육부에 들어가서 교육 정책을 짜는 관료가 돼 세상을 바꾸고 싶었을 뿐, 단순히 교육부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관료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일반행정직에서도 교육부에 갈 수 있지만, 교육부에서 따로 교육행정직을 뽑는 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일반행정직은 시험 과목 중에 교육학이 없기 때문에, 교육부 안에서 교육에 관한 일을 맡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 내 꿈은 단순히 교육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내 꿈은 그런 게 아니었다.


꼬맹이 때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막연한 꿈이었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학생들의 인생을 바꿔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범대에 진학했다. 머리가 좀 더 크고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조금 아쉬웠다. 내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너무 적었다. 아이들이 자기의 네트워크로 선한 영향력을 끼친대도 세상을 바꾸기엔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교육부에 들어가 고위 관료가 되고 싶다. 교육을 바꿔서 사람을 바꾸고 싶다. 사람을 바꿔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줄 아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나는 이 세상에 유일한 진리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믿음. 과학도 다 믿음이다. 사람들은 과학이 공명정대하고 절대적인 법칙을 밝혀내서 우리에게 세상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과학도 믿음의 영역에 불과하다. 그 절대적인 법칙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지금 가장 세상을 잘 설명해주는 이론이 현재의 과학 이론일 뿐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법칙들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십상이다. 과학의 역할은 절대적 진리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중세시대 종교가 그랬듯이, 이런저런 사람들이 믿을만한 이유를 대가면서 "세상이란 이렇다!"라고 설명하고 그걸 믿으라고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과학이 밝혀낸 '일리'를 '진리'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다. 가장 절대적이고 실증적인 학문인 과학조차 그 이론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는데 다른 학문은 어떠하랴. 지배적인 이론은 세상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잘 해석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는' 것이지 그 이론이 진리인 것은 아니다. 수학 또한 공리에 대한 믿음을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학문이기에, 그 근간은 믿음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세상을 설명하는 지배적 이론들에 대한 믿음. 정부에 대한 믿음. 오며 가며 마주치는 타인에 대한 믿음. 나에 대한 믿음.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불신 속에서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가능성을 믿고, 타인의 긍정적인 부분을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단점을 공격하는 대신 보듬어 안고 위로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다. 타인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연민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싶다. 아니다. 가르친다는 표현은 잘못됐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이라는 가치를 일깨우고 싶다. 믿음이 가득한 사람으로 가득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 사회는 신뢰가 넘치는 사회이고, 분명히 살만한 사회일 것이다. 행정고시는 수단에 불과하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당장의 수단에 눈이 멀어서 내 꿈을 잠시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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