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메다 Jan 06. 2021

독후감 대회로 책을 받았다.

도서출판 더숲, 감사합니다.

나는 낯가림이 심하다. 그리고 상대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다. 날 때부터 그런 기질이기도 했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며 심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게 두려우면서도 인정받고 싶어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었지만, 많이 친해져서 내 본모습을 알면 친구들이 날 버릴 것 같았다. 뭐든지 잘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다음에 내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들이 날 하찮게 여길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현실 세계가 아니라 인터넷 세계를 나의 세계로 택했다. 그곳에서 나는 버림받지 않으니까.


게임을 곧잘 했다. 수준급으로 잘하지는 못했지만 못하지도 않았다. 상위 10~30% 정도에는 늘 들었다. 게임에서 나랑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보다 나는 늘 잘했고, 그래서 버림받을 일이 없었다. 현실에서는 '얘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눈치를 보느라 소심하지만 게임에서는 달랐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내가 관계를 주도해나갔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이 좋았다. 학교에서는 친구라 할만한 사람 없이 지내며 인터넷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들도 친구는 아니었다.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남의 눈치를 덜 신경 쓰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버림받는 것이 두렵고, 내 본모습이 드러나면 주변인들이 날 떠날 거라는 공포에 시달린다. 인터넷은 나를 감출 수 있고 원하는 것만 내보일 수 있다. 잘하는 것만 보여주면 늘 잘하는 사람,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기에 나는 버림받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놓지 못한 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 커뮤니티에서 독후감 대회가 열렸다. 상금 15만 원과 여러 가지 상품이 걸렸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십시일반 후원한 돈과 책이었다. 거기다가 출판사 "더숲"의 직원이 출판사 차원에서 수상자들에게 자기네 출판사의 책을 나눠준다고 했다. 구미가 당겼다. 현실이었으면 절대 안 했을 거다. 내 글을 보여준다는 건 나라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같으니까.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는 나를 모르니까, 혹여나 나를 버린다 하더라도 그 아이디를 버리면 되니까 괜찮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브런치에 올린 독후감 하나를 골라서 대회에 참가했다. (우리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brunch.co.kr))


커뮤니티의 코드와 맞지 않는 글이라 생각해서 사실 수상은 바라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남들이 쓴 글을 보니 다들 너무 잘 썼다. 내 글은 어디에 비빌 여지조차 없었다. 대회에 참가한 일을 후회했다. 제발 누구 하나라도 내게 표를 던져줘서 꼴등만은 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디를 지우고 잠적하리라 다짐했다. 자주 가던 커뮤니티 하나가 사라져서 아쉽다는 생각까지 나는 쭉쭉 나아갔다. 내 몸은 걸어가는데 생각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투표 기간 동안 초조하고 또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일을 하는데도 독후감 대회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입상에 성공했다. 입상자를 뽑는 첫 번째 투표에서 19편의 글 중 4번째로 많은 투표를 받았다. 중복투표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순위를 가리는 두 번째 투표에서는 9명이나 나를 뽑아줬다. 최종 결과는 문학에서 4등, 비문학+문학 전체에서 7등이었다. 순위에 들어서 좋았고 상금을 받아서 좋았으며 부상을 받아서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사람들이 내 어두운 면을 보고도 나를 밀쳐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메다의 역사이야기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세 차례 치렀다. 1차 시험이 성균관에 들어갈 자격을 두고 치르는 '소과'다. 이를 합격하면 조선의 국립대인 성균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엔 성균관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만 그다음 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됐었다. 이어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대과'를 치렀다. 2차 시험인 대과에 합격하면 과거시험에는 합격한 것과 같았다. 관직이 보장됐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3차 시험이 남아있었다.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전시'를 치렀다. 전시는 합격자들의 순위를 매기는 추가 시험이다. 프로듀스 101에서 11명을 미리 선발하고, 그다음 시험으로 11명의 순위를 매기는 식이다. 나의 경우 첫 번째 투표가 '대과', 두 번째 투표가 '전시'였던 셈이다.


대회가 끝나고, 이제 내 머릿속에서 대회는 잊혔다. 사실 상품보다는 결과가 중요했으니 상품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약속했던 부상을 보내주겠다는 운영자에게 신상정보를 넘기고는 '이러다가 장기 털리는 거 아닌가' 불안해하던 것도 잠깐이었다. 한 일주일을 게임과 공부에 빠져 지냈다. 그러다가 오늘 오전에 카톡 한 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로젠택배 블라블라..." 난 택배를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슨 택배지? 하며 알림을 열어봤다. '도서출판 더숲'에서 보낸 상품이 오늘 도착한단다. 더숲? 처음 듣는데? 뭐더라... 아!


운영자가 내게 '더숲'에서 출판한 책 중 아무거나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었다. 슬프게도 그렇게 끌리는 책이 없어서 '이걸 어쩌나..' 곤란해하고 있던 찰나였다. 류시화 시인의 글이 많이 있었으나 시집은 아니었고, 시선집이 한 편 있었지만 한국시가 아니었다. 그 외에는 이름처럼 자연과학 도서가 많았는데 어려울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 생명과학을 배우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봤다. 인디언 연설문집이라는 부제에서 마음이 끌렸다. 현대문명의 배금주의와 비인간화를 비판하며 흔히 끌고 나오는 주제가 아메리카 인디언의 사상 아니던가? 읽어서 내 맘을 정화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디언에 대한 다른 추억도 떠올랐다. 예전에 네이버에서 "달빛머리"라는 웹툰이 연재됐었다. 후반부에 가면 아메리카 인디언과 미국 백인들의 교류와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때 인디언 추장이 말하는 인디언의 사상에 깨나 감명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이런 글에서 베껴온 내용이 아닐까 싶다.

다른 비유도 있다. 어디서 들었는데, 인디언들은 양심을 삼각형에 비유한다고 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삼각형이 뱅그르르 돌아가며 내 마음을 할퀴어댄다. 하지만 계속해서 삼각형이 돌아가다 보면 결국 그 끝이 무뎌져서 원이 돼버리고, 그럼 아무리 돌아가도 내 마음이 아프지 않다고 한댔다. 참 마음에 드는 비유다. 정말 이런 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인디언은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디언 연설문집을 상품으로 골랐다.


도서출판 더숲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이준구 교수님의 미시경제학 교과서보다도 두껍다.


가격이 많이 비싼데 이걸 해도 줄까 하는 걱정을 좀 했다. 다행히 주시더라. 동전지갑도 함께 주셨다. 많이 고마웠다. 책을 받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달빛머리" 웹툰을 보던 시절이 떠올랐다. 책장 한편을 차지한 두꺼운 이놈의 모양새를 보니, 아직 다 읽지도 않았지만 벌써 내 마음속에 인디언의 사상이 녹아들어 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선물 받았다는 기분까지 드니 오랜만에 내 마음속 작은 아이도 웃음을 짓는 듯하다. 출판사 더숲에게 감사하다.


너무 두꺼워서 다 읽지는 못하겠고 또 한 장도 안 읽고 책장에 넣기는 아쉬워서 첫 챕터만 읽어봤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어떻게 공기를 사고 판단 말인가"라는 연설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이고, 생각해봤더니 내가 "달빛머리"에서 본 대사도 이 연설문의 변주다. 인디언의 자연주의 사상에 마음이 웅장해졌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몇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말이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나 움직여놓을 수 있을까. 참 놀라운 일이다. 읽을 책이 늘었고, 즐거워할 시간이 늘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다시 한번, 이 책을 선물해준 "도서출판 더숲"에게 감사한다.


요즘 인터넷 세상은 마치 투기장 같다. 이곳저곳에서 편을 갈라 싸운다. 커뮤니티 안에서 싸우고 커뮤니티끼리 싸운다. 혐오가 만연한 시대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남의 편, 남의 편이면 욕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쉽디 쉬운 사고방식이 모두에게 들어차 있다. 많은 추천을 받은 게시글이나 댓글을 따로 띄워주는 시스템(소위 베스트 게시글 시스템)은 '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내 이야기에 동의하는구나. 내가 맞아!' 하는 편견을 강화시킨다. 같은 편끼리 모였으니 같은 편의 이야기를 부둥부둥해줄 뿐, 그 이야기가 맞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 안타깝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이 세상에서 싸우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이 가엾다. 상대를 욕할 때 그 욕을 가장 먼저 듣는 것은 자신의 귀라는 사실을 애써 잊어버리는 그들이 불쌍하다.

그런 마음으로 연설문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기를.


그러나 우리 희망을 갖자.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과 얼굴 흰 형제들 사이의 적대감이 다시 살아나지 않기를. 서로를 적대시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잃기만 할 뿐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젊은 전사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하기 원한다. 하지만 이미 자식들을 잃은 우리 늙은이들은 잘 알고 있다. 싸움을 통해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20쪽, "어떻게 공기를 사고판단 말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법정의 글은 별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