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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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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Mar 26. 2021

죽는다면 새벽 세 시의 도로에서 죽고 싶다.

요 한 달간은 너무 힘들었다. 시험을 망쳤다. 상담도 끝났다. 의사는 갈 때마다 매일 똑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나 되풀이한다. 약은 내 의욕을 살려주지 못한다. 심리적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주지도 못한다. 지옥 같은 한 달이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는 죽으려고 구포다리에 올라갔다. 한참이나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다리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무서웠다. 뛰어내리려고 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살아갈 용기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죽을 용기는 더욱 없었다. 이렇게는 더 살기 싫어서 죽으려고 했지만 정작 죽자니 무서워서 살기로 했다.


송장처럼 살았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즐거운 일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자리에 누워서 이리저리 휴대폰을 갖고 노는 것도 잠시다. 시간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도 하루는 너무나 길었다.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하루는 너무나 짧았겠지만,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나에게 하루는 억겁과도 같았다. 어떻게든 자야 했다. 


잠을 자면 시간이 잘 갔다. 시간을 죽이려면 다른 수가 없었다. 자고, 깨고, 또다시 잤다. 사실 별로 잠을 자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깨서 누군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 자신을 위해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그래서 깨고 나면 기대에 차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 누구의 연락도 없는, 제 기능을 상실해버린 내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자괴감이 마구 샘솟았다. 분명 전화가 울리고 메시지가 오고 가고 하는 게 휴대폰일 텐데, 내 휴대폰은 그냥 작은 인터넷 서핑기에 불과했다. 고독에 뒤척이며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한두 시간 자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하루에 13~14시간씩을 잤다.


한 달을 보냈다.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힘은 없었다. 어제는 오늘이었고 오늘은 내일이었다. 내일을 바꾸고 싶다면 오늘을 바꿔야 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쉽지 않았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었다. 누군가가 필요했다. 다행히 내게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매일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약속을 잡았다.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현재에 살아 숨 쉬게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무너진 내 일상을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는 없었다. 전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나는 깊고 깊은 고독에 빠졌다. 여전히 나는 혼자서 잠을 자며, 공상을 하며, 과거를 후회하며, 미래를 불안해하며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기만을 기다렸다.     



어제는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또 상담도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취소됐다. 울적했다. 누구 하소연할 친구를 찾아봤으나 딱히 없었다. 다들 연애하느라 바빴고 취업을 준비하느라 바빴으며 학교를 다니느라 바빴다. 펑펑 울고 싶었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우울은 시간을 느리게 하는 속성이 있다. 우울은 나를 현실에서 밀어내 과거로 보낸다. 내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인생을 곱씹게 한다. 너무 많이 씹은 과거에서는 더 이상 단물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턱이 빠질 때까지 계속해서 질겅질겅 씹게 된다. 우울은 늪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빠져나오기 힘든, 발버둥 칠수록 빨려 들어가는.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나도 모르게 서서히 내 몸을 잠식해나가는 깊고 어두운 늪이다.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밧줄이 필요하다. 밖에서 밧줄을 잡고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밧줄을 잡고 기어올라가는 나의 노력이 필요하다. 밧줄은 필요조건이고 나의 노력은 충분조건이다. 내게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이 우울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



축구를 보고 열 시에 잠을 청했다. 하지만 별로 오래가지 못하고 깼다. 축구를 보며 마셨던 콜라 때문일까, 아무튼 다시 잠이 깼는데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누워서 십분 이십 분을 뒤척여도 잠은 오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밤은 새우고 내일 푹 자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쓰기로 했다. 노트와 펜을 챙겨서 스터디 카페로 갔다. 얼마 전에 걸어서 3분 거리 건물에 스터디 카페가 생겼지만 그곳은 가지 않았다. 10분쯤 떨어져 있는 다른 스터디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새벽 세시였다. 8차선 대로에는 차가 없었다. 평소라면 하얗고 검은색 칠을 한 쇳덩어리들이 웅웅 소리를 내며 지나가야 할 텐데 너무나 고요했다.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 그 정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무단횡단을 했다. 차가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중앙선 즈음에 가서는 벌렁 드러누웠다. 차가 한두 대 지나갔지만 다행히 나를 치지는 않았다. 새벽이라고 알려주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내 두 뺨을 어루만지는 느낌이 좋았다. 콘크리트 바닥의 오돌토돌한 감촉과 뼛속까지 얼려버릴 것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는 냉기가 좋았다. 사람도 차도 새도 동물도 아무것도 소리를 내지 않는 그 정적이 좋았다. 나를 주인공인 것처럼 비춰주는 가로등의 하얀 불빛도 좋았다. 새벽 세시의 도로가 너무 좋아서 나는 대자로 누워 있었다. 만약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새벽 세시의 도로에서 죽고 싶다. 다행히도 나는 살아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다행일까. 내일부터는 어떻게든지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일상을 회복해야겠다. 그래서 다시 교육철학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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