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메다 Oct 19. 2021

오늘은 행복한 하루인가, 아닌가.

2021년 10월 19일 화요일, 평범한 고시생의 일상

    오늘은 별 거 없는 평범한 내 하루를 써보려고 한다. 평소처럼 7시 30분에 알람을 듣고 깼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이부자리에 누워 미적대며 이도 저도 아닌 채로 30여분을 보냈다. 8시 5분이 돼서야 겨우 일어나 잠을 깨우러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는 오랜만에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책상에 앉았다. 영 잠이 깨지 않아 맥심 화이트골드 커피를 4잔이나 만들어 먹었다. 그래도 잠이 깨지 않아서 괜히 설탕이 끈적하고 텁텁한 끝 맛을 음미해야 했다. 멍을 때리는 것도 20분이 지나 이러다가는 다시 잠이 들거나 오늘 하루도 망치겠다 싶었다. 바람을 맞으며 정신을 차릴까 하고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은 채 집 밖을 나섰다.


    나는 햇빛을 맞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참 좋아한다. 등받이가 없는 벤치나 평상보다는 등받이 있는 벤치를 좋아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등받이 있는 벤치가 없다. 바로 길 건너 아파트에는 벤치가 있기는 하나 거기는 아침 8시쯤에 햇빛이 들지 않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10분 거리에 있는 지역 하천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곳은 벌레는 많지만 주민들을 위한 벤치가 굉장히 많으며 가만히 앉아서 멍 때리기도 좋은 장소다. 벤치에 앉아서 강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잠을 깨야겠다는 목적도, 느슨한 옷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도 잊은 채 멍하니 물을 바라봤다. 따뜻한 햇빛이 내 온몸을 비추고 있는 느낌이 좋았다. 썬크림을 바를걸 하고 후회했지만 길지는 않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만히 앉아 멍 때리고 있었다.

우리 동네 지역 하천. 여름에 범람해서 흙이 쌓였다.

  

  9시 20분쯤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 4일 동안 슬럼프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빠르게 시험을 붙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세서 더더욱 공부를 못 하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지난 월요일에 살기 위해서 병원에 갔다. 필요시 약(로라제팜)을 받고 선생님과 짧은 상담을 했더니 맘이 많이 편해져서 오늘은 다행히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12시까지 지난주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강의를 들었다. 점심을 먹을 때가 돼서 보니 집에 로션이 다 떨어진 게 생각났다. 올리브영에서 로션이나 하나 사 오고, 그 참에 점심이라도 먹을 겸 집을 나섰다. 20분을 걸어갔고, 올리브영에서는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했으며 오는 길에 유부초밥을 샀다. 갈 때나 올 때나 힘들다고만 생각했지 다른 느낌은 없었다. 결국 로션은 인터넷으로 샀다.


    학자금 대출을 실행하고 인터넷으로 로션을 사느라 오후 공부는 조금 늦게 시작했다. 1시 40분부터 5시까지 열심히 했다. 예상했던 올해 목표를 다 채울 수 없을 것 같아 조금 빠듯하게 공부했더니 많이 피곤했다. 휴식 차원에서 지난주에 배송 온 동백나무와 율마를 분갈이하기로 했다. 흙을 30L나 주문했는데 양이 너무 많이 남아서, 작은 모종 포트에 있던 바질도 옮겨 심고 빈 화분에 해바라기와 백일홍, 라벤더를 심었다. 1시간 30분이나 걸렸고, 분갈이 자체나 흙을 치우는 과정이나 무거운 화분을 옮기는 일이나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불평불만은 안 했고 당장 그 일에 굉장히 집중해서 다른 느낌은 느끼지 못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7시 20분에 저녁을 먹었고 앉아서 유튜브를 조금 봤다. 8시 30분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해 오늘의 진도를 복습했다. 복습을 끝내니 10시가 돼서 플래너를 정리하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되돌아봤다. 요즘 소홀했던 마음보기 명상도 다시 했다. 하루를 쭉 되돌아보다가 느낀 건데 난 오늘 참 별 일이 없었다. 돌발사 건도 없었고 특별히 만난 사람도 없었으며 날 잡고 한 일도 없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영화를 보듯 내 하루를 돌려보니 순간순간이 참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 같았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아침에 나가서 강을 보고 있던 순간이 만족스러웠고, 점심을 먹으러 시내를 향해 걷던 왕복 40분이 참 흥겨웠다. 걸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발걸음도 가볍고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 올리브영에서 물건을 사지 않았지만 짜증도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움직이니 좋았던 것 같다. 분갈이를 할 때도 허리가 조금 아프기는 했으나 웃으며 했던 것 같다. 분갈이를 마친 식물들을 보며 뿌듯함도 느꼈다. 그간 쉬다가 오랜만에 공부를 시작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그리 싫지는 않았으며 오랜만에 배우는 즐거움이 있었다. 정작 그 행동을 하던 순간순간에는 아무 행복감도 느끼지 못했는데 끝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오늘은 참 행복한 하루였다.


    사실 요 근래 2주일간은 계속 우울의 늪에 빠져 있었다.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밖에 나가지도 않았으며 밤에는 일기를 쓸 여력도 없었다. 약을 먹고 친구들에게 sos 전화를 걸며 하루를 마쳤다. 그런데 오늘 생각해보니 과연 그날들은 정말 우울한 날이었던가 하는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냥 공부를 할 때가, 아니면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우울해서 하루 전체가 우울하게 느껴졌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행복했던 하루에 ‘망했다’며 검은 페인트를 칠한 날이 얼마나 될까. 뭔가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그리고 지나간 하루들이 후회되는 듯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발상도 있다. 왜 나는 오늘 하루 전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정작 그 순간에는 그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까? 해당 순간에 내가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면 과연 그 순간은 행복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내 순간순간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는데,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점에 기분이 좋기 때문에 나머지 하루도 행복하다고 포장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지나간 내 이주일은 모두 우울하고 불행했던 걸까? 이를 조금 더 확장해 본다면, 순간을 하루라 하고 하루를 내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가 불행했는데 되돌아봤더니 행복하다고 평가한다면 그 삶은 행복한 삶일까? 과정이 고통스러우면 그건 결과적으로 아무리 행복하다고 느껴도 지옥 같은 삶이 아닐까? 어려운 질문이 수없이 많이 피었다가 졌다. 나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냥 나는 오늘 이런 하루를 보냈고, 이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브런치 글을 정기적으로 쓰려고 노력하는데 참 쉽지 않다. 그나마도 이리 깊이가 얕아서 걱정이다.


잘 쓴 글은 문장이 매끄럽고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늘 하는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나는 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