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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Dec 16. 2020

도서관

[명사]
온갖 종류의 도서, 문서, 기록, 출판물 따위의 자료를 모아 두고 일반이 볼 수 있도록 한 시설.


나는 국립대에 다니고 있다. 도서관 장서가 250만 권이 넘는다. 새로 나온 신간도 신청만 하면 바로바로 입고해준다. 외국 도서도 예외는 없다.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 외에 책을 읽기 위한 자리도 따로 있다. 그것도 많이 있다. 책 읽기 참 좋은 환경이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는 장서 15 만권짜리 구립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 책이 없으면 근처 서점에서 '바로대출' 서비스도 활용할 수 있다. 해당 도서관애 장서가 없으면 부산시내 다른 국공립 도서관에서 책을 가져와 빌릴 수도 있다. 책 읽는 공간, 공부하는 열람실도 분리돼 있다. 참 책 읽기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난 도서관을 애용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 도서관에 참 자주 갔다. 초등학생 때는 1년 내내 다독상을 받은 해도 있었다. 동아리도 도서실 동아리를 했고 봉사시간도 도서관 책 정리를 하며 채웠다. 점심시간마다, 수업이 끝난 후마다 나는 도서관에 가서 살았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은 학원에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무도 도서관을 찾지 않았다. 도서관은 나만의 아지트였다. 책을 읽으라고 만들어 둔 자리 대신에 도서관 구석 아무 곳에나 앉아서 자유롭게 책을 읽었다. 그때의 감정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참 좋아했었다.


내 꿈도 거기서 시작됐다. 엄마는 내게 만화책을 사주지 않았다. 유일하게 사주는 게 있다면 학습만화였다. 나는 지루한 과학이나 수학만화 대신 역사만화를 택했다. 집에 읽을 거라고는 어려운 줄글 책과 역사만화 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틈만 나면 역사만화책을 봤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도서관에서 세계사 만화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는 시오노 나나미를 만났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지금은 역사책이 아니라 소설책이라 생각한다.) 내게 역사학자라는 꿈을 불어넣었다. 그때 도서관은 내 친구였고, 스승이었고, 내 절반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도서관과 멀어졌다.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는 않았는데 왜 멀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 기억에 남는 기억이 하나 있다. 야자시간에 소설책을 읽고 있었는데(판타지나 무협소설도 아니고 깨나 유명한 고전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와 책 읽을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타박을 했다. 그깟 공부보다는 책을 읽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기에 선생님의 말에 굉장히 화가 났다. 말을 듣자마자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와서 바로 짐 싸고 집에 갔다. 선생이 잡았지만 돌아보지도 않았다. 엄마는 내게 일찍 온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 인간과는 그걸 계기로 서로 없는 사람 취급하듯이 했다.(그러고 3년 내내 수학 시간에 만났다.) 졸업하고 나서 찾아가니 다른 친구들에게는 "아이구 @@야"라고 하며 내게는 "@@씨, 반갑습니다." 하던 기억도 난다.


당장은 크게 화나고 반항도 했지만 그 일화가 내 머릿속에 깊게 남았나 보다. 독서가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점차 독서량이 줄었고 도서관에도 덜 갔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도서관과는 점차 멀어졌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도서관과는 친해지지 않았다. 먼저 신입생 때는 책을 별로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술을 먹으며 놀러 다니지도 않았다.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돌아보면 무슨 의미가 있겠지.) 2학년은 게임하느라 다 보냈다. 3학년이 되고 심리상담원과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하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서관에 가지는 않았다. 도서관이 풍기는 분위기가 왠지 나를 밀쳐내는 것 같았다.


내게 도서관은 아늑한 아지트였다. 하지만 대학도서관은 아지트보다는 거대한 성전에 가까웠다. 공부 전용 열람실 외에 책을 읽는 자리에서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들이 다 공부하는데 혼자 책을 읽고 있자니 내가 이상한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정숙이 너무 어려웠다. 그 고요한 공간에서 내가 자그마한 소리만 내도 모두가 나를 쳐다볼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거룩한 성전은 내가 생각하는 도서관의 이미지와 맞지 않았다. 대학 도서관은 내게 이질적이고 무서운 장소다.


올해는 알라딘에서 책 35권을 샀다. 책값으로 34만 원을 썼다. 한 달 용돈 30만 원을 받는 입장인 내게 적지 않은 지출이다. 왜 돈도 없으면서 이렇게 책을 사제끼나 하다 보니 도서관에 잘 안 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도서관에 얽힌 내 이야기와 생각을 한번 쭉 써봤다. 약을 더 먹고 상담을 더 받고 상태가 많이 좋아지면 도서관에 대한 무서움을 털어내고 도서관을 많이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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