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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에는 몰랐지

8년을 사귀고 결혼했음에도

by 이사라

요즘엔 남편과 싸울일이 거의 없다. 간혹 기분 나뿐 일이 있더라도 다음 날이면 슬그머니 푼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를 놀려 먹을 수가 없으니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손해보는 느낌이 든다. 결혼후 30년이나 지나고 보면 부부사이의 온갖 낙(樂)들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남은 것이란 서로를 골려먹는 재미. 그것마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예전에는 남편과 많이 다투었다. 특히 신혼초에는 치열하게 싸웠다. 그 중 오랫동안 싸웠던 문제는 아침밥을 짓는데 왜 안도와주냐, 하는 문제였다.

그문제는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가, 내가 직장을 그만 두면서 자연스레 해소가 되었다. 남편은 돈 벌어오는 일을, 나는 집안일을 맡게 된 것이다. 훗날 역할이 바뀌었을 때, 그 때도 여전히 밥은 내가 지었는데, 그때 쯤이면 나는 밥짓는 명수가 되었고, 남편은 노력에 비해 음식맛이 형편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자마자 닥쳐온, 날마다 밥을 지어야 하는 문제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난관이었다. 그때서야 집에서 주부로서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얼마나 힘든일을 감당하고 있는 것인지 새삼 느껴졌다.

남편과 둘만 살았다면, 아침은 빵이든 뭐든 알아서 챙겨 먹어요, 난 원래 아침은 건너뛰는 사람이라오. 하면서 직장으로 잽싸게 도망갔을 테지만 그때는 결혼과 동시에 시동생 둘을 챙겨야 했다. 귀엽고 예쁘고, 착한 동생들이었다. 남편보다 무려 9,10년 연하인 두 동생은 대학 신입생이었고, 또 한 명은 재수를 하기위해 서울로 유학온 동생이었다. 동생들을 굶길 수야 없지 않은가. 게다가 재수생은 도시락도 날마다 싸주어야 했다.


남편 직장은 집에서 5분정도로 가까왔고, 나의 직장은 한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였다. 게다가 나는 결혼전에는 반찬 만드는 것을 제대로 해 본적도, 누구에게 배워본 적도 없었다.

오죽하면 남자친구가 "내가 닭도리탕 만들어 줄테니 우리집에 와서 몸보신 해" 하고 초대했을때, 세상에 닭도리탕을 만들 수 있단 말이야. 이런 남자와 결혼하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어먹으며 몸보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감동했었다.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는 순간 같은 몸이라도 정신이 달라진다는 것을, 남자들이란 동체이정(同體異精)으로 변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그래서 아침식사 준비는,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도시락을 싸는 것이 나에게는 날마다 해결해야 하는 힘든 과제처럼 여겨졌다. 어느날, 도시락 반찬을 뭐를 하지? 고민하는 나에게 직장동료가 고구마 줄기를 볶아봐. 요즘 그게 맛있던데. 하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고구마 줄기를 사다가 토막내서 아침에 열심히 볶았는데, 아무리 볶아도 이 놈의 줄기가 힘을 전혀 빼지 않고, 목으로 넘어가면 도로 나올듯이 뻣뻣하게 굴었다. 기름을 더 부어봐도, 간장을 더 넣어봐도, 불을 더 세게 해보도 소용없었다.

"이것봐. 동생아. 얘가 왜 이렇게 뻣뻣하지?"

나는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은 먹어보지 않아도 모양만 보고도 문제점을 척 알아봤다.

"형수님. 줄기를 벗기지 않은 것 아니에요?"

흠. 줄기를 벗겨야 하는 것도 있군. 시동생도 알고 있는 사실을 나는 몰랐네. 나는 볶던 줄기를 모두 개수대에 쏟아 버리고 즉시 다시 다른 반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아까워 할 시간도 없었다. 내가 그렇게 동동거리던 순간에도 남편은 침대에 앉아서 여유롭게 신문만 뒤적이고 있었다.


그래서 참다 못한 내가 문제를 제기했다.

"왜 내가 아침에 밥하고, 국 끓이고 도시락을 싸는 동안, 옆에서 도와 주지 않고 그렇게 신문만 보고 있는 거얏! 내가 당신보다 일찍 집에서 나가야 하는뎃!"

신문을 뒤적이던 남편이 잠이 덜깬 상태로 느릿하게 말했다.

"여보야. 나는 저녁 담당이잖어. 저녁에 당신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짠하고 찌게를 내오는게 내 일이잖어."

"그래도 당신은 직장이 가까워 시간이 많잖아. 옆에서 바쁘게 일하면 같이 도울 생각이 안들엇!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뎃!"

"여보야, 그렇게 바쁘면 당신이 한 시간 일찍 일어나면 되않어? 우리 직장의 어떤 사람은 집이 멀어서 새벽 5시에 일어난데."

그 말을 듣고,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데? 사기결혼 당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8년을 사귀고 결혼했고, 사귈 때에는 크게 싸운 적이 없었다. 남자친구는 늘 나에게 자상했고, 나는 결혼을 안하면 안했지, 만약에 해야 한다면 내가 8년동안 사귄 남자친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환상이 깨어지는데 결혼 하고 단 몇 달이면 족했다.


그 때는 남편이 아침에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신문만 뒤적이고 있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남편도 퇴근 후 저녁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느라 아침까지 도와 줄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동시에 신경쓰는 능력이 아예 결여되어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우리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억울해했다.


이젠 남편과 나의 노고(勞苦)는 너, 나 가릴 것이 없게 되었다. 남편이 힘들면 나도 힘들고, 내가 힘들면 남편도 힘들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나를 끝까지 보살펴 주지.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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