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살 나무-
어릴 적 내 어머니와 가는 길은
어디나 꿈결이었습니다.
나 지쳐 쉬고 싶음
언제 어디라도 잠이 들었고
먼 친적 집 다녀오는 길에
내 어머니의 등은
가장 평안한 꿈결이었습니다.
우리 작은 어머니 어깨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작은 나 업으신 어머닌
내 삶도 지고 계셨습니다.
내 작은 몸은 더 많은 생을 말하여 주었지만
어머닌 지금까지도 달게 지고계십니다.
내 어머니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날 업어주시던 작은 어깨마저도 사랑합니다.
(이번 시는 제목이 없더라고요. 시의 제목이 이제 고민하게 되네요. 혹 영감이 떠오르시거든 한 수 전수해 주세요.^^ 어릴 적 쓴 시들을 모아 정리해 놓은 노트입니다. 노트는 몇번의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스무살이 넘어 정리한 이 스프링 노트가 마지막 노트이자 유일한 시 노트입니다.)
며칠전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 딸이 집에서 걸어 5~10분 걸리는 공간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잘 시간에 잠이 든 딸아이를 깨우고 싶지 않아 아이를 업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대번에 말립니다. 먼 길을 이동하고 한 밤에 집에 도착하면 잠든 막내딸을 차에서 안아 침대에 눕히던 남편이 요즘 반복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못 안겠다. 이제 언니들처럼 깨워 걸어가라고 해야지."였습니다.
무게감이 예전과 다르고 자신의 근육상태도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차에서 내려 바로 집 앞이니 차마 깨우지 못하고 큰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안아 올라가는 남편입니다. 그런 남편이 저를 막아서는 이유는 본인이 안고 가는 것은 엄두가 안 나는 거리이기에 도와주지도 못하니 제게도 힘들다고 깨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깨 재 잠을 붙일 아이를 생각하니 푹 자게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자초해 들쳐 업고 두 언니들과 아빠를 뒤로하고 바쁜 걸음으로 앞질러 걸어갑니다. 그래봤자 어쩌다 있는 일이기에 업어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를 눕히고 나면 '헉헉'하면서도 같은 상황이 되면 업어주고 싶은 마음은 아마도 어릴 적 엄마의 등에 업혀 오던 그 추억 때문일 것입니다. 어릴 적 제가 살던 집은 높은 지대에 있었습니다. 가파른 골목을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길이라 아가씨가 될 때까지 그 집에 산 저는 높은 고지가 너무 싫어 결혼 할 때 무조건 평지에 있는 집을 골랐을 정도로 고지에 살았습니다.
바쁘고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시던 엄마는 모처럼 외가 식구들을 만나는 날이면 날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셨습니다. 가족 행사가 있어 외가에 다녀오던 날이면 한 밤이 돼서야 헤어지게 되었지요. 그런 날이면 맛있는 것도 배부르게 먹었겠다, 사촌들과 신나게 뛰어 놀았겠다 저도 녹초가 되어 버스 안에서 깊은 잠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저를 업고 그 가파른 올라 가셨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나요. 초등학교 2학년인 저를 차마 깨우지 못하시고 업고 가시면 추운겨울 깨어 걸어갈 일이 까마득했던 저는 엄마 등에 업힌 것을 잠결에 확인하고 바로 곤한 잠에 뭍히곤 했지요. 엄마의 등에 철퍼덕 붙어 언덕 길이 아닌 꿈길을 가곤했습니다.
위의 시는 그 때를 기억하며 고3때 쓴 시입니다. 아마도 업으려는 저를 말리는 남편의 손을 뒤로하고 아이를 업고 가는 제 마음에는 그 때의 포근함이 간직되어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어차피 깨는데 힘들게 뭘 업냐며 허리 아프다며 저를 말리는 남편의 말처럼 아이는 자는 척 등에 업혀 있던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언니들이
"엄마 서이 잠 깼어. 방금 침대에 눕자마자 눈 떠 나랑 눈 마주치니까 웃었어. 또 자는 척 하는거 봐라. 눈 떠봐 방금 눈떴잖아." 라고 말해주었지요. 막내의 특권입니다. 큰 아이는 일곱 살 때부터 잠든 동생들에게 엄마, 아빠의 품을 양보하고 차에서 깨어 걸어 다녔으니까요.
저도 일남 사녀의 막내로 자랐습니다. 엄마는 오남매를 홀로 키우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 마음엔 홀로 오남매를 키우시는 엄마를 향한 측은함과 감사함과 고단함을 덜어드리고 싶은 복합적인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린 아이에겐 잠은 이길 수가 없었나봐요.^^ 열아홉 살 시에 그런 엄마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점점 추워지는 계절입니다. 이럴 때 사람의 온기처럼 따뜻한 것도 없을 것 같아요. 포근한 품이 되어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고, 고마움을 담아 남편의 등을 쓸어주면 좋겠습니다. 나이 드신 노부모의 손을 잡아드리고 지나가는 이웃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네면 좋겠습니다. 멀리 있는 분에게는 온기를 담아 안부를 전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조금은 더 온기 가득한 초겨울이 될 것 같아요.^^ 서로의 온기로 따뜻한 시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