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죽은 아기새의 무덤을 만들어 준 여전사들

딸들은 용감했다.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딸들은 동물을 참 좋아해요.

여느 엄마들이 그러하듯 저는 동물을 키울 생각이 없습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딸들의 성화에 조금도 굽힘이 없는 엄마입니다.

"너희들 똥기저귀 땐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엄마 보고 또 똥을 치우라고? 엄마는 싫어. 너희들이 엄마 강아지야. 강아지 키우고 싶으면 시집가서 너희들 집에서 키우기."

딸 셋에 복닥복닥한 엄마는 매정한 엄마 포스입니다.


작년에 딸들이 서로 동맹을 맺어 엄마가 눈을 떠 보는 곳마다 '강아지 키우고 싶어요' '열심히 키우겠습니다' '새가족을 맞이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는 것' 등 강아지에 관련 된 글과 그림으로 도배를 해 놓았어요. 방문뿐 아니라 거울에도, 화장실 문 앞 수건에도, 컴퓨터 모니터에도, 여기저기 다양한 그림과 문구가 붙어있었지요. 서명운동표까지 만들어 붙여 놓은 딸들은 한 표라도 추가하기 위해 강아지 대신 기르고 있는 비어디 드래곤 친구들의 이름 알달이까지 적어 놓았답니다.



방문에 서명운동표를 붙여 놓은 딸들 ㅎ ㅎ ㅎ 여섯 번째 알달이는 비어디드레곤 이름^^


 그뿐 만이 아니에요. 무섭게 서로 기도를 시작하는 거예요. 거기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간절해요. 며칠 째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딸들입니다. 그 간절함이 얼마나 무섭던지요. ㅎㅎ

 엄마, 아빠도 딸들 몰래 회의가 이어져요. 아빠도 살짝쿵 흔들려해요. 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없어요. 생명을 맡아 키운다는 것, 그 생명과 언젠가는 정을 떼어야 한다는 모든 사실이요. 그리고 강아지 키울 비용이 있다면 엄마는 써야 할 곳이 참 많아요. 딸들의 소망처럼 강아지를 키우진 못했지만 여러 고민과 가족회의 끝에 저희 가정엔 지금은 앵무새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 날이었어요.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세 딸이 분주합니다.

"아기새가 죽었어"

"어떻게 불쌍해."

서로 대화를 하며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나눈 뒤 일사천리로 움직입니다. 딸들은 모종삽과 비닐장갑을 챙겨 우산을 들고나가네요. '죽은 새? 죽은새를 어떻게 한다는 거지?' 궁금해 엄마도 우산을 쓰고 따라나섭니다. 많이 내린 비에 피할 곳을 찾던 아기새가 어딘가에 부딪쳤는지, 추위에 떨었는지 길가에 죽어 있었어요.



딸들이 이렇게 용감했나요? 유독 동물을 좋아하고 사육사가 꿈인 둘째가 죽은 새를 비닐장갑을 낀 두 손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습니다. 첫째, 셋째는 새를 묻어둘 자리를 모색하고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셋이서 손발이 척척 맞아요. 엄마는 영락없는 구경꾼이 됩니다. 아닙니다. 이제 보니 엄마는 딸들의 우산을 열심히 들어주었네요. 거기다 소리꾼의 추임새가 되어 흥을 더하듯 감탄사를 연신 쏟아 놓았습니다. 딸들은 아기새를 묻어주고 주변을 둘러본 뒤 강아지풀을 꽂아주며 애도를 합니다.



 엄마는 세 딸의 협업에 감탄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딸들이 참 용감하고 멋지게 느껴졌지요. 아기새를 묻어 둔 무덤엔 하루가 지날수록 열매와 꽃들이 늘어갑니다.


막내딸이 학교 다녀오는 길 무덤에 하나씩 하나씩 올려준 손길들이 쌓여가네요. 비가 온 뒤로 더 맑고 화창한 하늘 아래에 따스해 보이는 아기새 무덤이에요.



 비 오는 날 아기새를 묻어주던 딸들을 떠올리다 보면 오버랩되어 지나가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저의 어릴 적 일이에요. 학교를 다녀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오빠가 급하게 무언가를 안고 옵니다. 바로 총에 맞은 비둘기였어요.

 제가 살고 있는 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어요. 맞은편에도 마당이 있는 주택이 있었는데 어린 제 눈엔 으리으리한 저택처럼 느껴지는 마당이 넓고 실내에 계단이 있는 3층 집이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두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집 손녀는 볼이 오동통하고 피부가 새하얀 친구였지요. 저보다 몇 살이 어린 동생이었는데 가끔 동생과 함께 놀곤 했어요. 또래 친구와 함께 동생집에 놀러 가면 동생처럼 얼굴이 예쁜 젊은 엄마가 저희가 놀러 갈 때마다 장롱에서 달달한 알사탕을 하나씩 꺼내어 주셨어요. 무언가 부유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집이었지요.


 그런데 반전! 그 저택의 할아버지의 취미는 아주 평화롭지 않은 취미였어요. 할아버지는 장총을 들고 새 사냥을 하셨어요. 새 종류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때는 참새 사냥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날 총에 맞아 아파하고 있던 새는 비둘기였지요. 오빠가 새를 데리고 와 치료를 해주던 그날 저는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어요. 그날도 저는 가위, 가재 수전 등 잔 부름을 맡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빠가 잘 치료를 해서 돌려보내 주었다고 들었으니 다행히 비둘기는 총알에 직격타를 입은 것은 아니었나 봐요. 비둘기를 치료해주고 돌려보낸 뒤 놀고 있는 오빠를 저는 그날 자주자주 쳐다보았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그날 제 일기장에는 '백의 천사 나이팅게일 같은 우리 오빠 정말 멋지다'라고 써 놓았지요.


지금도 가끔은 동물을 참 좋아하고 수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둘째 딸을 볼 때마다 오빠를 떠올리게 되어요. 오빠도 수의사가 꿈이었지요. 동물을 좋아하는 오빠덕분에 다양한 강아지, 십자매 새, 공작비둘기등을 키웠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동물을 키우고자 하는 의지와 자신이 없는 엄마입니다. 현재 우리 집에서 함께하는 코뉴어 앵무새 '해씨'가 싸놓은 똥을 치우며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기 일쑤인 엄마입니다. 하지만 앵무새와 함께 뒹굴며 행복해하는 딸들의 미소를 보며 행복해하는 엄마랍니다. 딸들이 만들어 준 예쁜 마음이 담긴 무덤을 마음과 사진에 담아 놓는 엄마랍니다. 딸들이 어서 자라 강아지가 아닌 아가를 얼른 내 품에 안겨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아가를 좋아하는 엄마랍니다. 그 엄마는 오늘도 자는 딸들에게 인사하고 딸들을 생각하며 미소 지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 따로 생각 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