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참! 이게 무슨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의 어른 버전도 아니고 이거 참 난감해서야.'
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 난처했어요.
마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질문을 받은 아이처럼 맹숭한 웃음만 지어 보였지요. 자녀들 중에 누가 더 예쁘냐고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의 질문이 참 곤란하게 느껴졌지요. 그것도 아이 셋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나 아이가 다 듣고 있는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딸 셋 중에 누가 젤 예뻐?"라고 물으실때면 당황스러웠지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다 예뻐요.' 하며 멋쩍게 웃으며 말하면서도 뭔가 너무 진부한 대답같이 느껴져 맘에 들지 않더라고요. 거기다 그 대답에 굴하지 않으시고 그래도 더 이쁜 친구가 있을 거 아니야?"라고 물으시면 얼마나 얄궂게 느껴지던지 초등시절 악동친구들같이 느껴졌지요.ㅎㅎ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땐 이런 질문을 받는 엄마도 참 당혹스러웠죠.
당황함에 "다 예뻐요." 대답 해 놓고도 제 대답이 썩 맘에 들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게 저의 진실된 마음이니까 그렇게 답하곤 했지요. 그러면서도 늘 이런 질문은 참 불필요하다고 생각되고,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질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질문을 짓궂고도 집요하게 하고 가시면 그 앞에선 웃으며 답하다가도 뒤돌아서서 나 홀로 입을 삐쭉거리곤 했지요.
'왜 아이들 앞에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얍?'
혼자서 그렇게 나 홀로 궁시렁 타임을 가지고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제 마음의 소리가 제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사랑의 크기가 다를 수 있겠어. 다르다면 사랑의 모양이 다른 거겠지."
난감한 질문에 아쉬운 날, 혼자 뽀루뚱 궁시렁 하며 찾아낸 답을 듣는 순간 정말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첫정이라고 하지요?
첫아이가 뱃속에 찾아온 날을 모두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저도 새벽 다섯 시 두 줄을 확인하고 너무 설레어서 잠이 안 오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한 번 잠들면 '엥~~' 하고 자기 피를 뺏어가는 모깃소리 외에는 천둥소리 등 그 어떤 소리에도 깨지 않는 남편 귀에 속삭였지요?
"나 임신한 것 같아요."
눈을 번쩍 뜬 남편도, 저도 너무 기뻐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두 부부가 너무 경이롭고 신나서 두 손을 맞잡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남편은 이른 출근을, 저는 언니에게 물려받은 두꺼운 임신 가이드북을 펼쳐보는 이른 아침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니 첫아이는 얼마나 귀할까요? 저는 첫아이를 키우는 근 2년 동안 "안돼"라는 단어도 잘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오냐오냐하는 엄마였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늘 아이에게 정성을 들여 긍정어로 말해주었기 때문이지요. 조그마한 생명이 얼마나 큰 사람으로 느껴지던지 늘 어른과 대화하듯 모든 말들을 나누었던 정성스러운 육아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이 빠르고 세 살 아이가 구사하는 언어들은 참 신기할 정도로 야무져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기쁨이 가득했지요. 다시 키우라면 그 정성으로 못 키울 것 같아요. 실제로 둘째 셋째의 육아의 질은 첫아이를 키울 때와는 현격한 차이가 나지요. 제 책 <아이를 믿어 주는 엄마의 힘>에 리얼하게 나와있어요.
우리 둘째는 얼마나 '헤보'였게요.
태어나자 품에 안겨준 아이는 땡그란 눈을 뜨고 제게 눈을 맞추었어요. 신생아들은 보통 꼭 눈을 감고 있던데 둘째는 땡그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어요.
아기 때 눈이 파랗고 웃으면 눈이 살포시 떨리며 눈웃음과 보조개가 세트였던 아가였지요. 십 개월 정도 된 아이를 재워 놓고 밖에서 일을 하다 봄 잠이 깬 아이는 타박타박 기어서 닫힌 방문을 손바닥으로 '탁탁탁'하고 두드립니다. 달려가 문을 열면 천사처럼 웃곤 했어요. 때로는 '우리 아가가 인형이야! 천사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예쁜 딸이었지요. 자라면서도 천성의 고운 결이 있어 늘 마음이 가는 딸이에요. 보통은 첫째를 이기려 드는 둘째라고 하던데 저희 집 둘째는 언니에게 양보하고 동생을 챙기는 그런 성품의 소유자네요.
누가 셋째를 거저 키운다고 하던가요?
그런 말들을 듣다 나은 셋째는 너무나 존재감이 확연한 아이였어요. 자고 일어나면 나 일어났다는 표시를 앉아서 "엥"우는 사이렌 소리로 나타내는 딸이었지요. 그뿐인가요? 이건 뜨거우니 만지면 아! 뜨거워하고 가르치면 겁을 먹고 하지 않았던 언니들과 달리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습기 뜨거운 김에 손을 대고 얼굴이 빨개져 울음을 터트리는 아가였지요. 그러니 막내인데도 얼마나 혼이 많이 났는지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는 왜 이렇게 이쁜가요? 저는 두 살 세 살 터울인 데다 개월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고만고만 한 아이 셋을 키우는 데도 막내가 너무 예쁘더라고요. 혼은 젤 많이 나지만 그 와중에도 귀엽고 사랑스러워 미워할 수 없는 우리 막내는 엄마의 영원한 막내입니다. 자기가 사랑 받는 걸 아는 아이지요.
아이들 각자의 예쁨이 달라요.
엄마가 세 딸을 향한 사랑이 어디 다를 수 있겠어요.
다르다면 사랑의 모양이 다른 거겠지요.
커가면서도 마찬가지고요. 삼인삼색 세 아이의 예쁨이 다 달라요.
어느새 벗이 되어가는 첫아이,
엄마에게 사랑을 베푸는 둘째,
여전히 존재감 뿜 뿜 귀여운 막내!!!
아이들의 고유한 빛으로 빛나며 자신만의 음색의 노래로 마음과 세상을 채우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형제들이 모여 부모님 얘기를 하다 보면 같으면서도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곤 해요. 큰 대명사들은 공통분모가 있지만 소소한 느낌들은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저도 첫아이 육아와 다둥맘의 육아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듯이 저 또한 아이들에게는 똑같지 만은 않은 엄마이겠지요. 아이들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도 조금씩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형제들이 말하는 부모님이 조금씩 다르듯이요. 하지만 부모를 향한 그 사랑만큼은 모두 같겠지요?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도 그렇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모양에 담긴 같은 크기의 사랑!
혼자 골똘하던 그날, 마음의 소리가 이렇게 말해주는데 혼자 신나 빙고! 나이스! 하고 잠들던 생각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