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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용의 유래(1)

응답하라 리낡용, 어느 여름밤.

by 낡은용

나는 교사다. 부모님도 교사, 할아버지도 교사다. 공교육 집안에서 나고 자란 나는 공교육이 키웠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과외나 학원으로 물들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건 은근한 나의 자랑이자 자부심이기에, 나는 종종 '단 한 번도'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사실 짧게 몇 번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녔던 집 앞의 영어 학원, 초등학교 6학년 때 다녔던 유명한 수학 학원. 학교에서는 콧대 세우고 나대기를 잘 했던 나는 왠지 학원에 가면 주눅들곤 했다. 사교육에 익숙지 않다는 의식이 왠지 모를 민망함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중학생 때 다녔던 종합 학원에서는 좀 달랐다. 학원에서 같은 반이 된 옆학교 남학생이 나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 남학생은 중학교 2학년인데 키가 183이나 되는 친구였다. 게다가 남중을 다녔기 때문에 왠지 유치해 보이는 우리 학교 남학생들과 달라 보였다. 그의 관심을 받은 덕분에 쉽게 학원에 적응한 나는, 다른 곳들에서처럼 '나대기' 시작했고, 그의 친구들과도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183남학생이 아니라 그의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으레 발생하는 사춘기 소년소녀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처럼.



그 남자애, 그러니까 그의 친구도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가 자꾸 나에게 문자를 보내고 장난을 쳐 왔기 때문이다. 환경만 허락한다면 무제한의 대화가 가능한 요즘 sns와 달리 그 때 문자는 소위 '알'이라고 해서 한 달에 갯수가 정해져 있었고, 보낼 수 있는 문장의 길이도 제한돼 있었다. 그 아까운 문자를 나에게 아낌 없이 쓰는 남학생이라. 나는 한 통의 문자가 아까워 내용도 꽉꽉 채워 보내는데 걔는 이런 식이었다.

'나굥' (2007.06.04. 10:36PM)


이렇게나 여유 넘치는 플러팅이라니..지금 생각해보니 '알'이 넘치는 부잣집 아들이었나 보다 싶은데 아무튼 그랬다. 나굥은 점점 발전하더니, 그는 마침내 어느날 밤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

'리낡용, 응답하라 오바.' (2007.06.12. 12:03AM)


아침에 일어나 문자를 보자마자 풉, 웃음이 터졌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해괴한 글자의 조합인데 읽어보니 친구들이 날 귀엽게 부르곤 하는 '나굥'이랑 발음이 비슷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학원에서도 날 이렇게 불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선생님) "이거 누가 이렇게 했어?"

(걔) "리낡용이요!"

(선생님) "리낡용이 뭐야? 누구야?!"


단발성에 그치지 않는 꾸준한 시도,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특이한 발음으로 형성된 유대감, 나를 특별하게 대하고 장난을 걸어오는 것 같다는 뿌듯함... 어느 순간 나도 어딘가에 내 이름을 쓸 때 '리낡용'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사실 그 전에는 '이쁜경'이라고 썼는데, 학교 한문 선생님과 엄마만 날 같이 그렇게 불러줬고 주변 친구들은 그렇게 불러주지 않았다. 별명으로 밀던 이쁜경이 실종된 자리에 리낡용이 그렇게 들어왔다.



학교에서도 어느 순간 친구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 지각했을 때도 칠판에 내 이름만 별명으로 적혀서 담임 선생님도 내 별명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은 나를 낡용아, 낡용아 라고 불렀다. 선생님도 가끔 그렇게 불렀다. '낡용'에는 나의 풋풋한 (짝)사랑 이야기, 초여름 중학교의 분위기, 쏟아지는 관심과 애정에 기뻤던 나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그리고 우리반에 전학생이 왔다. 나랑 조금 가까워진 후 그는 대뜸 특이한 발음으로 날 불렀다.

'낡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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