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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Emilio Oct 18. 2022

'조용한 퇴사'에 대한 생각 2

조직 측면

회사의 여러 기능 중에 '인사' 부분만큼 보수적인 것도 없다. 가장 민감한 사람을 다루는 부서로써 경영진의 직속 부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탓이다. 그렇다 보니 혁신보다는 단기 대응에 치중해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전략 부서나 재무 부서에게 전략적 이슈에 있어 주도권을 뺏기거나 지휘받는 현상이 적지 않다)


@asylab


최근의 '조용한 퇴사'와 관련해서 세부적인 내용의 시시비비를 가릴 마음은 없다. 조직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중요할 뿐이다. 아마도 대부분 일할 맛 나는 회사, 즉 GWP (Great working place)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GWP의 주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경영진(상사)과 직원 간의 신뢰
- 직원이 느끼는 업무 흥미와 자부심
- 동료와 함께 일하며 겪는 재미

위 세 가지 중에서 근간이 되는 것은 경영진(상사)과 직원 간의 신뢰 부분이다. 우리는 어디에나 꼰대 같은 상사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회사 보고 들어갔다, 상사 보고 나온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꼰대 상사를 그냥 두고 봐주는(볼 줄 모르는) 경영진을 떠나는 것이 된다. 또라이가 제거되지 않는, 오히려 득세하는 현실이 싫은 것이다. 상하 간의 신뢰가 없는 조직에서 직원 개인은 얼마나 본인 일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며, 동료들과 일하는 것이 즐거울 수 있을까? 이상한 상사 입맛에 어떻게 하면 일을 맞춰 할까 고민할 것이고, 동료 간에는 불필요한 신경전과 경쟁을 벌일 수도 있다.


'신뢰'에 대한 구세대와 신세대의 인식 차이 역시 한몫한다. 구세대는 '관계'에 절어 있는 회사 생활했다. 비록 실수가 있더라도 그(?) 집단에 소속돼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지금 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나중에 조직이 챙겨주곤 했다. 이들의 머릿속엔 일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관계를 형성해야 하고, 친해져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젊은 직원과 무리하게 가까워지려 (나름의, 하지만 쓸데없는) 노력하고 있다. 친해진다는 것과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이제 모르는 것이 생기면 상사를 찾지 않는다. 새로운 형식으로 쉽고 멋지게 풀어주는 인터넷이 있다. 직원들이 이젠 상사의 존재가 절실하지 않다. 젊은 직원들이 이기적이고 싸가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일터에서 신뢰는 관계가 아니라 일을 통해 이뤄진다. 조직 차원에서 보자면 정책과 제도를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최근 경영 자문해주고 있는 회사 CEO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대표님,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하실 때마다 이걸 꼭 생각하십시오. 이 결정이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이 결정이 좋은 인재를 오래 보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청년실업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체감상 재계 순위 15위권 밖의 그룹에선 인력난이 시작되고 있다. 시내 맛집에는 점원이 부족해서 빈 테이블이 있는데도 손님을 기다리게 하고 있다. 단순히 어떻게 대응할까 정도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관점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있는 그림은 이제 찢어버리고 새로 그려야 한다는 소리다.


첫째, 병목을 초래하는 기득권이 없는지 살펴본다. 중앙화된 권한(인사, 예산권)을 과감하게 중간관리자에게 내려줘야 한다. 실무 직원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권한 행사가 결정되면 투명성과 수용도가 높아진다.


둘째, 젊은 직원들에게 재량권을 부여한다. 중차대한 일을 당장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회식, 체육대회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회사는 일정과 예산만 한정해주고, 나머지는 그들의 생각대로 해보자. 나는 회식결정 재량권을 주고 나서야 직원들이 직접 고기 굽는 식당을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셋째, 경영 활동에 대해 제대로 설명한다. 작년 홍역처럼 지나갔던 사무직 직원 노조의 공통된 목소리는 '인사 평가 제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설명은 있었으되 충실하지 않았다. 자의적인 개입이 숨겨져 있어 대충 넘어갔을 수도 있다. 이제는 납득이 돼야 몸이 움직이는 세대와 함께하고 있다.


넷째, 새로운 제도 수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만나본 C-레벨 경영진 중에 원격근무에 대해 걱정하지 않던 사람은 없었다. 물론 의사소통이 필요한 부분은 부각이 됐지만, 애초 우려만큼 안 좋은 결과를 낸 건 아니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먼저 채택해서 불필요한 논란을 초래하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경영진부터 솔선수범한다. 최근 경영난에 빠진 한 기업의 유연근무제도 롤백 소식을 들었다. 실적이 좋지 않으니 일을 더 하라는 거였다. 실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기업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제도였는데 아쉬움이 컸다. 다 좋은데, 그럴 정도로 실적이 좋지 않다면, 명분을 쌓는 차원에서라도 경영진부터 다른 부분을 희생했어야 한다고 본다.


'조용한 퇴사'에 젖어든 직원은 상당히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성향은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다른 직원까지 전염되고 만다. 사과 박스의 썩은 사과가 혼자 썩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인재 전쟁이란 말은 자주 회자되지만 대체로 'S급 인재' 영입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제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직원을 분별해내고 대처해야 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조직이 할 일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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