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일기

무해한 나의 일기

by just E

비가 내렸다. 아니 눈이 내렸다. 아니 비 같은 눈이 내렸다.


12월 24일

퇴근을 하면 맛있는 식사를 하고 성당에서 전야미사를 드리고 가볍게 러닝을 한 후 따뜻한 이불 안에 들어가 즐겨보는 유튜브와 약간의 알코올

을 하려 했다.


퇴근 3시간 30분 전,

사고가 발생했다. 급하게 수습하고 너덜거리는 몸을 이끌고 회사에 복귀했을 때는 오늘의 에너지를 거의 소진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고, 너덜거리는 마음에 합당한 보상이 필요했다.


남아있던 와인을 꺼내고 마켓컬리에서 주문해 뒀던 언젠가 기분 좋은 날에 먹을 유린기를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돌렸다.

좋은 기분이 아니어서 그런지 예전에 마셨던 와인맛과 먹었던 유린기 맛이 아니었다.

적당히 배가 불렀고 따뜻한 이불 안에 들어갔더니 조금 행복해지는 것도 같았다.

누워서 보는 유튜브는 언제나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기 마련이다. 누워서 몇 시간째 액정화면 속의 유튜브를 보다가 보니 속이 더부룩했다.


12월 25일

성탄절에 드리는 교중미사가 1시간 남은 상태에 눈이 떠졌다. 부지런히 준비했다면 가까운 성당 어디라도 갔겠지만 당연히 난 부지런하지 못했다.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시간에 가족미사에 참석했고 꾸며진 성당을 보며 누군가의 부지런함에 편승하는 것 같아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잿빛 하늘의 성탄절이라니.

온통 잿빛인 동쪽보다는 서쪽 방향으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길 잿빛 구름 가운데 맑은 하늘이 보였다. 누군가에게 지금을 보내고 싶어 휴대폰을 들었으나 렌즈의 포커싱이 나갔다.


크리스마스가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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