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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11. 2023

이 노래만 나오면 온몸이 둠칫둠칫

언젠가 스톡홀름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면 첫 글의 제목으로 'Somewhere in Stockholm'을 붙이고 싶었다.

Somewhere in Stockholm은 스웨덴 출신 아비치가 만든 노래다. 

스톡홀름 어딘가에서 우리 가족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는 의미였고 스웨덴의 세계적인 DJ 겸 프로듀서 아비치(Avicii)의 짧은 삶을 기리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유튜브 아비치 채널 'somewhere in stockholm' 동영상

아비치와의 인연은 2018년 8월 북유럽 가족여행 때부터였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Normal'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귀를 사로잡았다.

재빨리 음악검색을 해보니 아비치의 'For a better day'라는 노래였다. 그때는 아비치가 가수인 줄 알았다.

뭔가 쓸쓸하고 우울하기도 하면서 또 뭔가 힘차고 희망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특히 노래 중간 피아노 솔로 부분은 독보적이었다.

힘찬 멜로디의 피아노 독주는 꽤 매력 있었다. 

2015년 스톡홀름 Gärdet의 Summerburst에서 공연하는 Avicii (사진=TT통신)

코펜하겐에서 스톡홀름으로 이동한 뒤 'For a better day'뿐 아니라 다른 노래도 찾아들었다.

아비치가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이고 가수가 아닌 DJ,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프로듀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4개월 전인 2018년 4월 아비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사실도 알게 됐다.

For a better day가 실린 STORIES라는 앨범에서 'Somewhere in Stockholm'이라는 노래도 들었다.

아비치가 자신의 고향인 스톡홀름을 그리워하며 만든 노래라고 했다.

2018년 4월 21일 아비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 스톡홀름 세르겔 광장에 모인 추모 인파 (사진=Dagens Nyheter)

아비치 나이 겨우 28세였다.

아비치 죽음을 알고 난 이후 듣는 그의 노래는 슬펐다.

나는 아비치 고향인 스톡홀름 어딘가에 있는데 그 노래를 만든 아비치는 이 세상에 없구나 하면서, 아이들과 아내가 잠든 호텔방에서 홀로 맥주를 마시며 아비치 노래를 들었었다.

그 이후 나에게 스톡홀름은 아비치의 도시로 남았다.

아비치팬들은 아비치 사망 다음날 세르겔 광장에 모여 그의 음악에 춤추며 그를 추모했다 (사진=Dagens Nyheter)

여행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For a better day' 뮤직비디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유럽에서 전쟁으로 난민이 된 아동들을 상대로 인신매매가 성행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법이 대담하고 거침없었다.

어린 시절 인신매매를 당한 두 아이가 성인이 된 뒤 범죄조직 두목을 찾아가 복수하는 설정이었다.

불과 3분 24초짜리 노래 안에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드러내 놀라웠다.

그제야 가사 내용도 와닿았다.

아비치가 그냥 유명한 전자음악 프로듀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비치 'For a better day' 뮤직비디오

그 후로도 아비치의 음악을 즐겨찾기 해두고 자주 들었다.

아비치는 나에게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이라는 장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 않게 해 준 이였다.

자주 들어서인지 첫째, 둘째도 아비치 노래 중 헤븐(heaven)이나 What would i change it to를 좋아하게 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Avicii True Stories'의 한 장면

그러다가 스톡홀름에 다시 오게 되면서 사그라들던 아비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스톡홀름에서 아비치를 더 잘 알고 싶었다.

실제 스톡홀름 거리에서 아비치 노래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Levels 등 아비치 노래가 나오면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둠칫둠칫 몸을 흔들거나 발장단을 맞추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22년 8월 스톡홀름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비치 대표곡 중 하나인 'Wake me up'을 따라 부르며 춤추는 것을 봤을 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비치 노래가 스웨덴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하고 국민 노래로 인식되는 듯했다.

분명 아비치는 스웨덴 국민에게 무척 사랑받는 뮤지션이었다.

아비치는 아바(ABBA), 록시트(Roxette), 에이스 오브 베이스, 자라 라슨(Zara Larsson)에 이어 스웨덴에서 다섯 번째로 앨범(싱글 포함)이 많이 팔린 음악인이라고 했다.

글로벤에 있는 아비치 아레나

스톡홀름엔 아비치 관련 장소도 많았다.

굴마르스프란 역 근처에 살 때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원형 돔 공연장이 있는데 아비치 사후 그를 기리기 위해 이 공연장 이름을 기존 Ericsson Globe에서 Avicii Arena로 변경했다.

이를 기념해 엘라 티리티엘로라는 14세 소녀가 스톡홀름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아비치의 For a better day를 재해석해 불렀다.

아비치가 태어났던 외스터말름에선 의회가 Humlegården에 추모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T-센트랄렌 역 인근 SPACE stockholm 건물엔 생전 아비치의 유품 등이 전시된 박물관(Avicii Experience)이 있다.

스톡홀름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엘라 티리티엘로가 부른 For a better day

2023년 4월 22일 스톡홀름 문화의밤(Kulturnatt Stockholm) 행사 때 벼르고 벼르던 아비치 박물관(Avicii Experience)을 관람했다.

아비치 박물관에는 아비치의 작업실, 고등학교 때 음악을 만들던 방 등을 실제 물건들로 꾸며놨다.

아비치 박물관에 전시된 고등학교 시절 아비치 개인 방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한 채 아비치 대표곡 Without you, Wake me up, Broken Arrow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과 많은 VR 관객 앞에서 DJ 경험을 할 수 있는 체험공간도 있었다.

박물관의 상당 부분은 아비치 동료, 친구, 프로듀서의 인터뷰 영상으로 채워져 아비치 개인과 음악 세계 등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았고 너무 큰 기대를 안고 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아비치라는 음악인의 삶에 한발 다가간 거 같아서 만족했다.

아비치의 10대 때 작업공간

본명이 '팀 베릴링(Tim bergling)'인 아비치는 고교 시절 친구와 함께 만든 하우스 음악을 인터넷에 공개하며 음악의 길로 들어선다.

아비치(Avicii)라는 이름은 불교에서 가장 고통이 극심한 아비지옥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Avici를 따서 지었다고 했다. SNS인 마이스페이스 가입 때 avici라는 아이디가 이미 등록돼 있어 i를 하나 더 붙였다고.

한 클럽 기획자를 만나 학교 무도회에서 첫 공연을 한 뒤 미국 마이애미와 프랑스 파리의 축제와 클럽에서 공연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됐다.

2011년 첫 히트작인 Levels을 내놓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일렉트로닉 뮤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비치의 첫 히트곡 'Levels'

Levels는 정말 한번 들으면 그 멜로디에 빠질 수밖에 없다.

뮤직비디오처럼 몸을 흔들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아비치는 미국 LA로 건너가 최고의 작곡가들과 작업해 자신의 첫 번째 앨범인 'True'를 내놓는다.

이 앨범에 실린 'Wake me up'은 아비치의 최고 히트곡으로 63개국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아픔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예민한 성격이었던 그는 종종 불안 증세에 휩싸였고 결국 많은 공연을 취소했다.

아비치 익스페리언스

수만명의 사람 앞에서 홀로 무대에 오르는 것이 불안했던 아비치는 무대 공포증을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공연을 위해 호주로 가는 도중 등에 심각한 통증을 느껴 도착 즉시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췌장염이었다.

아비치는 의사의 수술 권유에도 팬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진통제인 모르핀 약물을 투여하면서까지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계속된 투어 공연에 몸 상태는 더 악화돼 결국 공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된 아비치는 이를 끊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결국 지병이 악화돼 담낭과 맹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2012년 Ericsson Globe에서 열린 Avicci 공연. Globe 공연은 세 번 매진됐다 (사진=Dagens Nyheter)

아비치는 스페인 이비자 섬의 한 농가에서 약물 중독 치료를 받으며 기력을 회복했다.

이후 스웨덴 음악가들과 미국을 돌며 음악을 만들고 공연했지만 결국 무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작곡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8월 28일 스페인 이비자 섬의 우수아이아(Yushuaia)에서 마지막 공연 이후 아비치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페루 등을 여행하며 음악을 만들었고 LA로 돌아와 음악작업을 이어갔다.

이 시기 아비치는 자신이 겪은 우울증, 중독 증세, 휴대전화 스트레스 등의 문제를 다룬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8년 4월 아비치는 오만 무스카트로 휴가를 떠났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 초기 사인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유족 측이 공식적으로 밝힌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다. 

아비치는 음악생활 중 마돈나, 콜드플레이 등과 같은 유명 가수, 그룹과 작업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신시사이저와 혁신적인 비트로 새로운 유형의 곡을 만들었고 광란의 파티와 콘서트 경계를 허무는 최초의 DJ로, 좁은 클럽이 아닌 넓은 경기장(아레나)으로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비치 유품

이력에서 보듯 아비치는 약물 중독,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힘겨워했다.

그의 죽음 이후 아비치 부모 등은 팀 베릴링 재단(Tim Bergling Foundation)을 만들어 청소년 자살과 정신질환 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비치 사후 발매된 앨범 수익금은 전액 이 재단에 기부됐다고 한다.

아비치 생전인 2017년 아비치 다큐멘터리 영화인 'Avicii True Stories'가 개봉됐다.

영화 제목에 들어간 두 단어 True와 Stories는 모두 아비치의 앨범 제목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비치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리듯 공연을 계속해온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결국 애초 자신을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해 준 일등공신이지만 공연일정 등으로 갈등도 빚었던 클럽 기획자와 헤어지며 영화는 마무리됐다.

영화는 앞으로 아비치가 만들 음악을 한껏 기대하게 만들며 현재진행형으로 끝났는데 1년 뒤 아비치는 돌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아비치 사후에 두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인 'Avicii: I'm Tim'이 제작돼 2024년 6월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에서 공개됐다.

아비치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간 유럽 전역, 아시아, 미국 등을 돌며 모두 813회의 공연을 했다.

1년에 약 90회, 약 4일마다 1번씩 공연하는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아비치 익스페리언스

내향적인 성격인 아비치가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성공하고 쉼 없이 너무 많은 공연을 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았다.

그걸 이겨내려 약물,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급기야 우울증까지 겪으면서도 계속되는 공연에 영혼까지 갈아 넣은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다.

아비치의 죽음에서 자기 존재가치는 아랑곳없이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 기업형 아이돌 그룹이 얼핏 떠올랐다.

아비치 죽음 이후 1년간 스웨덴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가 '아비치'였다고 한다.

스포티파이(Spotify) 등 각종 음원사이트 순위에서 아비치 음악이 역주행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아비치 추모공연이 열린 솔나 프렌즈 아레나. 아비치를 추모하는 팬들로 꽉 찼다. (사진=아비치 유튜브 채널 캡처)
솔나 프렌즈 아레나에서 열린 아비치 추모 공연 마지막 곡 'Levels'

아비치가 죽은 다음 해인 2019년 솔나 프렌즈 아레나 열린 아비치 추모 공연에서는 5만8천163개의 좌석이 30분 만에 매진돼 아레나 개장 이래 최대 관객수를 기록했다.

아비치 사망 당시 재산이 2억3천100만 크로나에 달했다. 300억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 재산은 부모가 물려받았다.

아비치는 음악과 공연활동 중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며 자선단체 등에 사후 남긴 재산에 버금가는 수억 크로나를 기부했다.

아비치 사후에 나온 앨범 'Tim'

아비치에게 음악이란, 공연이란, 성공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의 의지로 좀 천천히 달렸더라면 삶을 뒤돌아보고 여유 있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지 않았을까.

팬들 역시 그의 음악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통 큰 기부는 물론 'For a better day' 뮤직비디오에서 보듯 아비치는 음악을 통해 사회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이른 죽음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Avicii R.I.P

아비치 상징 로고

(# 스웨덴 언론 익스프레센, 다겐스 니히터, 위키피디아, Avicii Experience, 영화 'Avicii True Stories' 등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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