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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07. 2023

스톡홀름 놀이터가 393개...아동 최우선 나라

스웨덴 스톡홀름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 바로 놀이터다.

집에서 걸어서 5~10분 거리 안에 놀이터가 있었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은 없어도 놀이터는 10분 거리에 항상 있었다.

한국처럼 아이들이 없는 빈 놀이터가 아니라 유아에서 초딩까지 북적거리는 놀이터였다.

그네 하나, 미끄럼틀 하나, 시소 하나 틀에 박힌 놀이터가 아니라 제각각 특색 있는 놀이터였다.

굴마르스프란 역 인근 놀이터

그네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영유아용부터 나이대별로 탈 수 있는 종류가 2~3가지는 됐다.

놀이터 바닥도 모래, 흙으로 된 곳도 있고 작은 나무조각을 깔아 둔 곳도 있었다.

부모 입장에선 마구 뒹굴어도 좋은 나무조각 바닥 놀이터가 좋았다.

미니 그네

그럼에도 아이들은 흙, 모래에서 놀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유치원 가는 아이에게 올인원 형태의 방수옷을 많이 입힌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흙탕물에 뒹굴어도 눈밭에 굴러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

이 때문인지 한국에선 아이들이 흙 만지면 '지지'하며 말리곤 하는데 스웨덴 부모들은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대로 놔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 옷 하나로 아이들이 더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것 같다.

물놀이장 있는 놀이터

굴마르스프란역 근처에 살 때 인근 놀이터에 자주 갔었다. 놀이기구가 많고 제법 넓어 놀기 좋았다.

특히 물놀이장이 있어 아이들이 좋아했다.

여름에만 물을 채우는데 깊이가 20~30cm 정도로 얕아서 어린아이들도 별 걱정 없이 놀 수 있었다.

아이들은 물에서 놀고 어른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 햇살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놀이터에 그네 타거나 모래놀이 하러 갔다가 결국 물에 뛰어들어 옷이 흠뻑 젖어 오는 경우가 많았다.

칼라플란역 인근 Tessinparken 물놀이장

아이들과 주말에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놀이터마다 집라인, 미니 트램펄린 등 다른 곳과 차별되는 놀이기구가 1~2개는 있었다.

정글짐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한 게 아니라 소재나 난이도가 천차만별이었다.

스톡홀름 시의 놀이터 현황 지도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놀이터가 몇 개 있을까 궁금했다.

대략적인 위치라도 알아두면 다음에 놀러 갈 때 편할 것 같았다.

구글지도에서 스웨덴어로 놀이터인 'lekplats'를 검색해 보니 스톡홀름에서만 수십개가 나왔다.

스톡홀름시 홈페이지에는 지역별로 놀이터 위치와 간략한 특징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스톡홀름에는 놀이터가 모두 394개 있다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스톡홀름 시에는 시립과 사설 놀이터가 무려 393개 있었다.(유치원 놀이터는 제외)

시에서 만든 놀이터가 391개, 사설 놀이터가 2곳이었다.

작은 물놀이장이 있는 곳 57개, 일반 놀이터 291개, 공원에서 간단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이 45개였다.

지역명을 검색하면 해당 놀이터 위치나 이름이 나왔다.

리딩외시가 안내하는 놀이터 현황. 총 43곳의 놀이터가 있다 (사진=리딩외 홈페이지)

현재 사는 리딩외 시 홈페이지도 찾아봤는데 모두 43곳의 놀이터가 있었다.

영유아가 이용 가능한 놀이터, 장애인이 접근가능한 놀이터,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놀이터, 눈썰매나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놀이터, 밤에도 놀 수 있도록 조명시설이 갖춰진 놀이터 등을 세부적으로 표기해 놨다.

놀이터 위치를 지도에 표기해 놓으니 파악하기 쉬웠다.

오덴플란의 ㄷ자 모양 아파트 가운데 마련된 놀이터

기억에 남는 놀이터도 있다.

오덴플란(Odenplan) 근처에 가면 ㄷ자 형태로 각기 다른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곳이 있었다.

건물 대부분이 아파트였는데 ㄷ자 건물 중간 안뜰에 제법 큰 면적의 놀이터가 있었다.

학원 간 첫째 기다리느라 막내랑 이 놀이터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을 보내곤 했다.

재미있는 건 아파트 입주민과 자녀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해질 무렵이 되니 각자 사는 건물로 뿔뿔이 흩어졌다는 점이다.

여러 아파트에서 놀이터 하나를 공유하는 셈이었다.

나 같은 외부인도 얼마든지 놀이터에 출입할 수 있었고 막내 역시 재미있게 놀았다.

이 놀이터 역시 스톡홀름 시가 만들고 관리하는 곳 중 하나였다.

스톡홀름 부엉이 놀이터

스웨덴에 오기 전 해운대 마린시티에서 식사한 뒤 주변을 산책하다가 한 놀이터에 '입주민 외 이용 금지'라고 적은 팻말을 본 적이 있다.

막내가 그네를 보곤 타고 싶다고 했는데 그 팻말을 본 이상 놀이터에 발을 들여놓기가 왠지 꺼려졌다.

막내가 계속 조르는 데도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만 놀 수 있다는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리며 지나친 기억이 있다.

사유 재산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물인 놀이터를 타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걸 어쩌겠는가.

세상이 하도 험해서 신원이 확실한 입주민에게만 놀이터 출입을 허용하는 것도 이해되긴 한다.

쿵스홀멘 도서관 인근 놀이터(왼쪽). 로젠달 정원 인근 사각 미로 같은 미끄럼틀

하지만 아이들 마음껏 뛰어놀라고 있는 놀이터 인심이 이렇게 박한가 싶어 씁쓸했다.

한국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도 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은 놀이터도 있다.

스톡홀름에서 공공재인 놀이터는 한국에서는 사유재일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은 일부 놀이터를 민영화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자체가 직접 만든 놀이터도 있지만 건설사가 아파트 주민 자녀만을 위해 만든 놀이터도 있으니 말이다.


부산에서도 군데군데 놀이터가 많긴 했지만 아쉬운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미끄럼틀, 그네, 시소 정도 설치해 두고 흉내만 낸 수준의 놀이터였다.

아이들도 안다. 어떤 놀이터는 재미있어 또 가고 싶고, 또 어떤 놀이터는 시시해서 가고 싶지 않은지를.

아이 없는 텅 빈 놀이터는 아이들이 학원 가서 놀 시간이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놀이터 시설 자체가 재미없기 때문일 수 있다.

투표권 없는 아이들 노는 곳이라고 구석진 곳, 자투리 땅, 그늘진 곳에 놀이터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이왕 만들 바엔 좀 신경 써서 제대로 만들면 좋겠다.

최근 10~20년 새 한국에서도 기적의 놀이터 등 특정 지역에 놀이터 프로젝트가 진행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순천 기적의 놀이터는 1호에서 7호까지 다 가봤는데 아이들도 어른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먼 놀이터보다 가까운 놀이터가 아이에겐 더 좋다.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앞 바닥분수

스톡홀름 시는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고 관리하는 게 기본적인 아동정책 중 하나다.

몇 안 되는 사설 놀이터도 기본 전제는 '우리 모두'의 놀이터라는 점이다.

스웨덴 지자체와 시민은 공공장소에서 모든 사람의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들의 기본적인 놀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놀이터도 누구든 이용에 제한이 있어선 안 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아동의 권리를 최우선 순위에 둔다는 스웨덴에서 놀이터 접근성은 아동복지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스웨덴은 법으로 어린이 권리를 보호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또 아동옴부즈맨이라는 별도의 정부기관을 둬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사회에서 어떻게 준수되는지 감시해 왔다.

2020년엔 아예 스웨덴법에 '아동은 모든 종류의 차별로부터 보호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며 아동에 관한 모든 결정에서 아동 이익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통합시켜 버렸다.

앞서 1979년에는 세계 최초로 가정과 학교에서 어린이 체벌을 불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후 핀란드 노르웨이 유사한 법을 만들었고 현재 60개국 이상이 아동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1년 체벌금지를 명문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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