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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28. 2023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은 있을까

동물도 행복할 권리가 있나.


지난 3월 초 아이들 스포츠휴가 때 스웨덴 동물원인 스칸센(Skansen)과 콜모덴(Kolmården)을 연이어 갔다.

스웨덴 동물원은 뭐가 다를까.

한 나라를 여행하면 가급적 동물원을 가는 편이다.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라마다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차이 나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때론 그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힌트가 되기도 한다.


스칸센에 간 날, 날씨가 너무 추워서 실내 서커스 체험으로 오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폐장시간이 임박해 동물 중 딱 하나만 보고 가자고 하니 첫째가 북극여우(Arctic fox)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정말 보고 싶은 동물 중 하나였다.

아시아권 동물원에선 볼 수 없는 동물이라 꼭 눈에 담고 싶었다.

북극여우 fjällräven (사진=WWF)

북극여우는 스웨덴어로 fjällräv 또는 fjällräven이라고 한다. 스웨덴의 아웃도어 대표 브랜드 이름이 피엘라벤이기도 하다.

폐장시간인 오후 4시가 넘어 북극여우가 퇴근(?) 하지 않았을까 마음이 조급했다.

그때 멀리서 흰색 털뭉치가 눈 아래로 휙 지나갔다. 눈 위로 흰색의 여우가 사뿐사뿐 뛰어가는 모습 자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가올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웠다.

그러던 중 북극여우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다 같은 마음이었을까. 주변 사람들 모두 조용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걸 알기라도 하듯 북극여우는 관람객과 근접 거리에서 잠시 포즈를 취해 사진을 허락하더니 유유히 발걸음을 돌렸다.

횡재한 기분이었고 신비로웠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피엘라벤이 활발한 모습으로 쇼타임을 해주니 정말 황공했다.

피엘라벤을 본 것만으로 스칸센 동물원 다 본 거 같은 느낌이었다.

북극여우의 자태

몸길이 약 70cm, 몸무게 2.5~5kg, 수명 5~8년인 북극여우는 현재 멸종위기종이다.

20세기 초 개체수가 1만마리였지만 1928년 심각하게 수가 줄어 보호대상이 됐고 2000년대 초반에는 30~4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보전 노력으로 현재 스웨덴과 노르웨이 북부 지역에 550마리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북극여우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기후변화.

겨울에 눈 대신 비가 자주 내리면서 바닥에 얼음층이 생겨 먹이를 구하지 못한 설치류가 많이 줄어들자 설치류를 잡아먹는 북극여우 역시 개체수가 확연히 감소하고 있다.

다른 원인으로 기후온난화로 수목한계선 위까지 올라와 활동하는 붉은여우들이다.

북극여우 활동 반경과 겹치는 붉은여우는 먹이경쟁에서 북극여우를 죽이는 일이 많다고 한다.

스칸센 북극여우 안내판

전 세계에서 550마리밖에 남지 않은 북극여우를 보게 돼 영광이었다.

생김새도 보통 여우와 다르고 흰색 털 때문인지 기품이 느껴졌다.

이 흰색 털의 여우는 단열 효과가 높아 추위에 잘 견딜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빙하가 물러난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주름잡은 첫 포유류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눈에 띄는 흰 모피를 노리는 밀렵꾼 때문에 북극여우 개체수가 급격히 줄기도 했다.


다음 날은 콜모덴으로 갔다.

다행히 오전 돌고래쇼 시간에 맞춰 도착해 관람할 수 있었다.

넓은 수족관에 대충 봐도 10마리 이상 돌고래가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제주도 한화, 일본 후쿠오카 우미노나카미치에서 돌고래쇼를 본 적이 있어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먼저 영상과 함께 10분 정도 돌고래 생태 등에 관해 설명을 들은 뒤 쇼가 시작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4분 정도만에 돌고래 쇼가 끝났다.

돌고래 점프도 그리 높지 않았고 돌고래가 조련사를 등위에 태우고 물속을 질주하지도 않았다.

다른 관람객들은 환호하고 손뼉 쳤지만 난 감탄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봐온 돌고래쇼에 비하면 너무나도 기대 이하였다.

콜모덴 돌고래쇼

사실 돌고래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동물학대 논란이 많다.

경남 거제 한 돌고래쇼는 동물단체 시위와 반대로 문을 닫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년 전 울산 장생포 돌고래 수족관에선 일본에서 돌고래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돌고래 한 마리가 탈진해 죽은 일도 있었다.

장생포 수족관은 너무 공간이 협소해 돌고래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을 만했다. 좁은 수조에 부딪혀 온몸에 생채기가 난 돌고래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한때 반동물적인 돌고래쇼를 중단하고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 여론과 움직임이 거세 실제 수족관 돌고래 몇몇은 제주도 앞바다에 방류돼 새 삶을 찾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 돌고래쇼는 어떨까 내심 궁금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끝나버린 느낌이었다.

둘째는 "아빠, 이게 끝이야? 더 하는 거지?"라고 물었다.

나는 "끝난 거 같아. 후쿠오카 돌고래쇼보다 훨씬 못한데? 돌고래 점프 높이도 채 3m가 안돼 보이던 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첫째는 "돌고래가 높이 뛰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인 줄 알아... 여긴 인간적이네" 그런다.

첫째는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만큼은 못하지만 고래에 대해 관심이 많다.

뭔가 시시한 쇼 이긴 했지만 첫째 말을 듣고 보니 여긴 돌고래를 많이 배려하나 보다 생각했다.

코앞에서 본 호랑이

타이거 월드로 갔다.

호랑이는 너무 익숙한 동물이어서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햇볕 잘 드는 곳에 한 마리 호랑이가 드러누워 있었다.

20~30m 거리에서 호랑이를 바라보는데 호랑이를 보는 나도, 나를 보는 호랑이도 서로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그때 호랑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걷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관람객들과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코앞에서 보는 호랑이 아우라와 포스는 상당했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눈매, 기다란 수염, 걸을 때 꿈틀대는 근육들, 털의 미세한 움직임이 다 보였다.

맹수를 눈앞에서 보는 살 떨리는 경험이었다.


디즈니 영화 '메이의 새빨간 비밀'을 10번 이상 본 삼남매는 실제 레드판다를 보자 비명을 질렀다.

레드판다는 오묘한 붉은빛 털에 알록달록 꼬리, 귀여운 얼굴로 나무를 우아하게 걸어 관람객 시선을 붙잡았다.

아내는 "이곳 동물들이 정말 열심히 일한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레드판다의 산책

얼룩말, 쌍봉낙타, 물소, 타조 등은 서로 어우러져 평화롭게 공존했다.

마치 아프리카 세렝게티에 온 듯했다.

동물 생활공간을 지면 아래 2m 정도 깊이에 만들고 울타리를 없애 관람객은 아무런 방해물 없이 동물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쯤 되니 스칸센이나 콜모덴 동물 관리 방식이 궁금했다.

한국 동물원엔 드러누워 자기 바쁘거나 무기력한 동물들이 다수였는데 이곳 동물은 맹수나 소형, 대형동물 가릴 것 없이 왜 이렇게 활동적인가.

정말 무슨 약이나 에너지드링크라도 먹인 건지 정신교육이라도 시킨 건지 의문이었다.

야생보다 좁은 공간에서 관람객의 괴롭힘까지 당하는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인데 어떻게 해소하는지 알고 싶었다.

첫째 말처럼 스웨덴 동물원은 뭔가 인간적인, 동물 친화적인 운영을 하는 것일까.

지금은 운영 중단된 부산의 한 동물원은 몇 년 전 야간개장을 추진했다.

동물단체는 '돈에 눈이 멀어 쉬어야 하는 동물을 다시 스트레스에 내몰리게 하는 미친 짓'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동물원 측은 아랑곳없이 야간개장을 강행했다.


지난해 말 스웨덴 한 동물원에서는 침팬지 5마리가 탈출해 동물원 측이 4마리를 총으로 쏴 죽여 동물학대 논란이 일었다.

동물원 측은 침팬지가 위험한 동물이라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는 반발이 거셌다.

이때 침팬지는 직접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고 하는데 동물원 생활이 따분했던 건지, 자유를 찾으러 나간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해 말 침팬지 5마리가 탈출했던 Furuviksparken

스웨덴 일부 동물원만 봤고 이날 따라 동물 컨디션이 유독 좋았을 수도 있어 일반화하기 어렵겠지만, 한국과 일본 동물원과 다른 느낌을 받아 새로웠다.

동물원이 인간 욕심으로 자연 섭리를 깨트린 동물 학대장, 인간이 말 못 하는 동물을 착취해 이득을 취하는 곳이라는 비판은 일면 타당하다.

한편 어린이가 자연과 동물을 이해하는 교육장소,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 일부를 보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동물원을 없애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을 만들려는 고민은 계속돼야 할 거 같다.


2014년 아르헨티나에서 눈길을 끄는 동물 관련 재판이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동물원에 있던 암컷 오랑우탄 산드라(Sandra)는 새끼 오랑우탄이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진 뒤 매우 불행하고 불편해 보였다고 한다.

방문객 시선을 피하고 이불 속으로 숨는 등 계속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동물 권리 운동가 그룹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산드라가 불행해진 건 동물원 측의 태만이나 동물복지법 위반 때문이 아니라 '개인' 권리가 침해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동물이 사람이냐며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2014년에 인권을 얻은 오랑우탄 산드라 (사진=Natacha Pisarenko)

하지만 재판을 맡은 Elena Liberatori 판사는 "산드라는 법의 의미에서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며 자유에 대한 권리와 신체적, 심리적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 같은 특정 기본 권리 즉 인권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는 사람과 같은 영장류인 오랑우탄이 자율적인 주체인 인간임을 명시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산드라는 판결 이후 우여곡절 끝에 동물원을 벗어나 미국 플로리다 보호구역으로 옮겨져 많은 오랑우탄과 침팬지 무리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오랑우탄인 산드라는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혁명적인 판결에도 여전히 대초원이 아닌 인간이 통제하는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동물을 위한 정의(Justice for Animals)'라는 책을 쓴 미국 철학자 Martha C Nussbaum은 사람이 능력과 필요에 따라 가능한 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듯 동물 역시 능력과 필요에 따라 만족스러운 삶을 살 기회가 있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동물권이라고 주장했다.

누스바움의 주장은 대부분의 척추동물이 인간처럼 고통, 두려움, 행복, 연민 등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데 기반해 동물이 인간 행위로부터 구속이나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반면 Patrik Svensson이라는 스웨덴 저널리스트 겸 작가는 "인간은 자연을 통제하고 동식물을 개인 실험실로 만들었다"며 "불과 몇 천 년 만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완전히 재구성했으며 생물학적 다양성을 편의에 맞게 최소한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인간은 필요한 가축은 늘리고 그 외 동물은 서식지 파괴로 멸종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누스바움의 주장은 동물권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으로만 이해해야 한다"며 "인간은 지구 생명의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있는 만큼 야생 동물과 가축 모두의 환경 개선에 최선을 다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80억 개체로 지구 생태계 지배자가 된 호모 사피엔스의 어깨가 실로 무겁다.


(# 세계자연기금, 다겐스 니히터 등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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