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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May 30. 2023

팔자에도 없는 스웨덴 부촌 월세살이

정말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이대로 잊고 살았으면 했지만 불현듯 한 번씩 생각나 몸서리치게 만드는 기억이다.

찬란했던 스톡홀름의 여름을 즐겨보지도 못하고 '집순이'로 만들어버렸던 집 구하기의 악몽을 돌이켜본다.


지난해 스웨덴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첫 관문, 다섯 가족이 머물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적당한 집을 못 찾아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상황이 반복됐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스톡홀름이 우리를 '거부'하는 듯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정말 밤낮없이 주구장창 접속했던 스웨덴 집 구하기 사이트 'blocket'. 월세가 살인적이다.

아이들 학교 개학이 8월 중순 무렵이었기 때문에 7월 말 스웨덴에 입국했다.

스웨덴에 오기 전 아이들을 보내고 싶었던 학비가 무료인 공립 국제학교는 첫째만 입학 허가를 받았고, 둘째는 계속 수개월째 대기 상태였기 때문에 확실한 거처를 정할 수 없었다.

이곳은 스쿨버스도 없고, 부모가 매일 통학을 책임져야 해 가급적 학교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고 가능하면 삼남매가 같은 학교에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막내는 한 달 차이로 입학 가능 연령이 되지 않아 홀로 유치원에 가야 했다.

첫째, 둘째만이라도 같은 학교에 보내야 했고, 또 집은 그 학교와 유치원에서 가까울수록 좋았다.

할 수 없이 첫째만 입학 허가를 받은 공립 국제학교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곳에 우선 두 달짜리 집을 구했다.

에어비앤비도 알아보았지만 다섯 식구가 살 만한 집은 월세가 1300만~1600만원 정도였다.

0이 하나 잘못 붙은 줄 알았다. 스톡홀름의 살인적인 미친 집세를 실감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주인 할아버지가 내놓은 집을 한국에서 페이스타임(facetime)으로 영상 통화하며 내부를 둘러보고 계약까지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살던 3룸 주택이었다.

스웨덴에서는 거실도 룸으로 쳐서 실제론 방이 2개밖에 없는 셈이었다.

두 달만 머무를 예정이니 침실이 2개여도 다섯 식구가 지낼 만하겠다 싶었다.

그러나 스톡홀름 세입자 사례 글을 찾아보니 집 규모에 비해 식구 수가 많으면 아파트 이사회 같은 곳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아 이사 당일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에게 다시 연락해 가족 수가 주거 허용 적정 인원을 넘은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마. 내가 우리 아파트 협회 이사회의 의장이야. 너희들 거주허가 났어" 그러는 게 아닌가.

그렇게 두 달 살 집을 구한 채 마음 편하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기억이 난다.

스웨덴에서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공간과 별개 방을 주는 것이 아이들의 주거 복지에 해당된다고 들었다.

blocket과 더불어 스웨덴 집 구하기 사이트의 양대산맥 'samtrygg'

그런 과정을 거쳐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집에서 9월 말까지 머물 수 있었다.

한편으론 월세 기한이 다가올수록 얼른 다른 집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에 조급해졌다.

또 공립 국제학교 측은 개학이 임박했는데도 둘째의 입학 허가 여부에 대해 계속 기다려보라는 희망고문만 할 뿐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결국 연간 학비를 내는 다른 국제학교로 아이들을 입학시킬 수밖에 없었다.

첫째와 둘째 두 아이 모두 같은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등하교마다 '고생길'이 열릴 게 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제는 이 국제학교는 스톡홀름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외스테르말름에 있다는 것.

집값이 너무 비쌌다.

거실과 방 1개의 아주 허름한 아파트가 월세 330만원이 넘어갈 정도였다.

현재 세입자는 집을 보러 간 나에게 집이 마음에 들면 빨리 집주인에게 의사표시를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해 줬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세입자가 정해졌는지 부동산 사이트에서 관련 글이 사라졌다.

두 달간의 임대기간이 끝나고 대청소 끝낸 월셋집. 모든 게 다 잘 갖춰져서 너무 편안하게 잘 지냈다

월세가 비싸도 어쩌겠는가.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오는 집주인들에게 최대한 많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번번이 '읽씹'만 당하고 답장조차 받지 못했다.

"우리가 언제 너 스웨덴에 오랬니?"라고 하는 것처럼 사회 전체로부터 거부당하는 느낌이었다.

거리에서 오가다 누굴 봐도,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20여 곳 집주인에게 거부만 당하다가 나름의 노하우를 찾았다.

우선 새 집이 올라오자마자 집주인에게 재빨리 연락하고, 빨리 뷰잉(viewing) 날짜를 잡아 선점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 영어로 메시지를 보내면 세입자가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번역 사이트를 통해 스웨덴어로 집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고 뷰잉 요청을 했다.

이런 방법으로 차츰 하나 둘 답장도 받고 뷰잉 약속도 잡게 됐다.

테라스에 나와서 햇볕을 쬐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집주인 답장이 오고 뷰잉 약속이 잡히더라도 퇴짜를 맞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어디든 조건에 맞는 새 집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뜨면 밤이고 낮이고 언제든 최대한 친절하고 공손하게, 나의 조건과 가족, 내가 이곳에 왜 와있는지를 설명하는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정말 집주인이 '슈퍼 갑'이었다.

어떤 집은 대략 한국 돈으로 월 900만원 정도의 소득 증빙이 되는 경우에만 뷰잉 신청을 하라고 했다.

한 번은 국제학교와 가까운 아파트 한 곳을 보러 갔었는데 집주인이 소득 증명서를 보내라고 해서 허겁지겁 각종 저축과 월급 명세서 등 자료를 찾아 밤에 메일로 보낸 기억이 난다.

그렇게까지 했지만 결국 '합격' 소식은 듣지 못했다.

집안에서 해 지는 노을도 감상할 수 있었다

하다 하다 안 돼 구세주 같았던 집주인 할아버지에게 여기서 몇 달 더 살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인근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두 달 머무르면서 그 기간 우리에게 세를 준 것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여름휴가 시즌 시골의 작은 통나무집 별장 같은 곳으로 가서 쉬다가 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눈만 뜨면 휴대폰으로 부동산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메시지를 보내고, 감개무량하게도 주인이 답장을 보내주면 또 그에 대해 친절하게 답변하고... 그런 나날이 이어졌다.

뷰잉 날짜를 잡아 집을 보는 일정을 한 달가량 하고서야 우리에게 또 다른 구세주가 나타났다.

지금 살고 있는 집주인 할머니는 우리가 뷰잉을 갔을 때 이전 집주인들과 달리 '너희만 좋다면 언제든지 오케이야. 다른 사람이 모레 집을 보러 올 예정이지만 취소하면 된다'고까지 했다.

할머니의 진심 어린 호의에 감동한 나는 남편과 상의해 뷰잉 후 1시간 만에 월세 계약을 하겠다고 연락했다.

할머니 집은 스톡홀름 외곽의 정원을 갖춘 단독주택이 즐비한 부촌으로 생각보다 월세가 비쌌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생활비 등 다른 부대비용을 줄여서라도 월세를 감당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 간 집에서 만난 쌍무지개

스톡홀름에서 집 구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희망고문이었다.

"너희 말고 다른 후보자가 4명 더 있어. 이번 주말까지 결정해서 연락 줄게"

뷰잉 뒤에는 언제나 이런 말을 듣고 실낱 같은 희망을 품었지만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자칫하면 못 들어갈 뻔했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우릴 환영했지만 할머니의 남편이 임대기간이 너무 짧다(9개월가량)는 이유로 비토를 놓은 것이었다.

나중에 듣자 하니 할머니가 "세상만사, 당신 입맛대로 다 되지 않는다"고 설득해 겨우 할아버지 마음을 돌렸다고 했다.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너무 잘 지내고 있다.


자체 분석 결과 우리가 집을 구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1) 머무는 기간이 1년 미만(9개월)으로 짧다.

2) 식구 수가 5명으로 많다.

3) 외국인이다였다.

집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점만 줄줄이 썼는데 1년 이상 또는 2년 이상 머물 예정이고 식구 수가 적다면 비교적 집 구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 겨울을 보낸 두 번째 집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하지만 당시에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너무 힘들었다.

집 비워줘야 될 날은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들어갈 집이 없어 호텔까지 여러 곳 알아봤었다.

집만 구하면 세상 걱정이 없겠다며 매일 답답한 마음에 저녁만 되면 술을 엄청 마셔댔다.

다시 집을 구한다면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아, 입주 날짜가 맞지 않아 그 집엔 결국 들어가지 못했지만 UN에서 일하는 의사와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이 의사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일하며 스웨덴 집은 세를 주고 있었다.

너무도 친절하고 따뜻해서, 집 구하는 과정에서 그분으로부터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너무 따뜻하다.


스톡홀름에서 집을 구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정말 너무 좋은 집주인을 두 번 연속 만난 건 아무리 생각해도 행운이다.

스톡홀름이 맺어준 인연, 감사하다.

현재 사는 집에서 바라본 북쪽 하늘, 이 북향집 테라스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오로라를 보기도 했다

주택 임대 사이트인 Blocket에 따르면 스웨덴 10대 도시 중 스톡홀름에서 집을 임대해 사는 것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스톡홀름의 한 달 임대료 중간값(median rent)은 1만4천 크로나(약 177만원)으로 단연 1위였다.

스톡홀름 주택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고 이동성이 약해 주민 90%가 저렴한 주택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한다.

이는 모든 유럽 수도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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