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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09. 2023

스톡홀름엔 판테온 닮은 건물이 있다

이곳은 스톡홀름을 찾는 여행객들이 한 번쯤 들리는 곳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찾았다가 누구나 내부 구조에 놀라는 건물이다.

여긴 스톡홀름 공공 도서관(Stockholm biblioteket)이다. 우리로 치면 시립도서관에 해당한다.

5년 전 스웨덴 여행 때 이 도서관을 방문했다.

외관은 직육면체에 원통을 올린 듯한 형태다.

2018년 스톡홀름 도서관 방문 때 첫째가 방명록을 적고 있다.

처음 내부로 들어갔을 때 도서관이 이렇게 유려해도 되는 건가 약간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 도서관의 하이라이트인 원형홀을 접한 뒤 보통 서가로 빽빽한 도서관의 전형을 깨버린 느낌이 들었다.

당시 유모차에 태운 막내를 비롯해 첫째, 둘째 등 삼남매와 함께 탐험하듯 도서관을 돌아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이 도서관이 그려진 기념품인 숄더백을 사 와 한국에서 사용하며 한 번씩 이 도서관을 떠올렸다.

스톡홀름 공공 도서관

그런데 운명처럼 4년 만에 스톡홀름에 다시 왔고 유모차를 타는 대신 어엿한 꼬마 숙녀가 된 막내와 초딩이 된 첫째 둘째와 이곳을 재방문했다.

이 도서관은 원형홀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천장을 올려다보게 되고 3층 원형 책장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줬다.

은은한 간접조명과 360도로 나 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퍼져 원형 홀 내부가 따뜻한 분위기다.

공간이 주는 마법 같다.

원형홀 천장은 별다른 구조물 없이 돔 형태를 유지해 구멍 없는 로마의 판테온 신전 같았다.

이날 도서관에서 도서카드를 신청해 받았는데 이게 뭐라고 기분이 무척 좋았다.

스톡홀름 공공 도서관 원형홀 '로툰다'

스톡홀름 공공도서관은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았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군나르 아스플룬드(Gunnar Asplung)가 설계해 1928년에 개관했다. 아직 100년이 안 됐다.

직경 26m, 높이 24m의 로툰다(Rotunda)라고 부르는 원형홀과 연결된 4개의 직사각형 건물로 둘러싸인 도서관은 네오 엔틱과 클래식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북유럽 20세기 건축의 정점이라고 도서관은 설명하고 있다.

외벽은 석회를 칠한 벽돌을 쌓아 올렸고 도서관 외관 곳곳에 고대 상형 문자 같은 문양이 그려져 있다.

원형홀 로툰다

원형 로툰다를 중심으로 전후좌우 네 방향으로 난 통로로 도서관의 다른 책공간으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특히 원형홀 바닥은 로마 판테온 신전의 대리석 바닥에서 패턴을 본떠 만들었다고 했다.

어린이 도서관을 비롯해 카페, 열람실 등이 복잡한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일부 열람실 벽면에는 중세 벽화 같은 그림이 걸려있고 나선계단, 청동 문 손잡이 등이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 있다.

군나르 아스플룬드는 이 도서관을 설계하며 모든 신의 사원이라고 불렀다는데 확실히 로마의 영향을 받은 듯했다.

로툰다에는 3층에 걸쳐 책이 소장돼 있다.

개인적으로 이 도서관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원형홀로 이어지는 긴 계단이라고 생각했다.

검은 벽면에 대리석으로 된 긴 층계를 올라가다 보면 조금씩 로툰다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어둠에서 밝음의 세계로 나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 학원이 도서관 주변이라 남는 시간에 주로 스톡홀름 도서관 로툰다에서 노트북을 펴놓곤 했는데 무척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로툰다 원형 공간 안에 도서 대출, 검색이 모두 이뤄지며 이용객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있다.

로툰다로 이어지는 계단

말괄량이 삐삐를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삶을 다룬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를 보다가 스톡홀름 공공도서관이 나와 무척 반가웠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수십 년 전이지만 영화에 나온 스톡홀름 공공도서관 모습은 비상구 표지를 허술하게 가린 것 외에는 지금과 거의 똑같았다.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에서 나왔던 스톡홀름 도서관의 로툰다 계단 (영화 캡처)

스톡홀름 도서관은 공공도서관답게 작가와의 만남, 연령대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 등 연중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장서 규모는 4만권이며 책뿐 아니라 잡지, 영화를 볼 수 있고 오디오북도 들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어 책 코너는 없다.

(한국어 책은 쿵스홀멘 인터내셔널 도서관에 가면 있다. 다만 그 수가 많지 않고 오래된 책 위주라 아쉽다. 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한국인 사서 분의 노력으로 최근에는 한국어 책 신간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쿵스홀멘 인터내셔널 도서관의 한국어책 코너

스톡홀름 도서관의 장점은 스톡홀름시의 40여 개 공공도서관 네트워크다.

어디서든 책을 빌린 뒤 주변 아무 도서관에다 반납하면 된다.

대출 기한은 한 달, 한 번에 50권까지 빌릴 수 있다.

행여 다 못 읽은 책이 있다면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한 번 더 대출 연장도 가능하다. 최장 두 달까지 책을 빌릴 수 있는 셈이다.

2023년 스톡홀름 공공도서관 로툰다 풍경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에서 나왔던 스톡홀름 도서관의 로툰다. 비상구 표지가 가려져 있다. (영화 캡처)

최근 스톡홀름 도서관에 파친코라는 책이 새로 들어왔다길래 처음 책 대출 예약이라는 걸 해봤다.

책이 어디에 소장돼 있든 자기가 원하는 도서관에서 책을 받을 수 있어 편리했다.

마치 부산 강서구 도서관에 있는 책을 해운대구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자유로운 반납은 그러려니 했는데 이런 희망 도서관 예약 대출 시스템은 좀 놀랐다.

지하철역 지하 통로에 있는 외스터말름 도서관

도서관 대부분이 접근성 좋은 곳에 있어 인상적이었다.

오덴플란 역 주변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비롯해 40여 개의 공공도서관은 지역 중심지인 센트룸이나 교통요지에 있다.

외스터말름 도서관은 지하철역 통로에 입구가 있어 출퇴근 시 편하게 들릴 수 있고, 칼라플란 도서관이나 키스타 도서관 등은 쇼핑몰이나 백화점에 입점해 있어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다.

쇼핑몰 2층에 있는 칼라플란 도서관

나 살던 부산의 도서관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 도서관이 도심이 아닌 외곽에 있어 불편했다.

물론 중심지는 땅값이 비싸니 자연스럽게 싼 부지를 찾아가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센트룸에 있는 키스타 도서관

예전 대학 졸업 후 한때 취직 공부를 했던 부산 금정도서관은 시립 묘지인 영락공원 인근에 있다.

지하철역에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인데 한여름 도서관 입구까지 오면 온몸에 땀이 흐를 정도였다.

주변 환경이 조용해 공부하긴 좋지만 시민 접근성 면에선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도서관이었다.

책 반납은 이렇게

도서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접근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스톡홀름 도서관은 최고다. 장 보러 왔다가, 지하철 타러 가다가 손쉽게 책을 빌릴 수 있다.

도시 계획을 할 때부터 도서관을 중심에 놓고 시민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 배치했다는 이야기다.

도서관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의자도 있다

누구나 가기 좋은 곳에 있는 도서관은 때론 카페이며 열린 만남의 장소다.

내가 가본 몇몇 도서관엔 모두 아동이 부모와 함께 편하게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다양한 디자인의 편안한 의자와 스터디, 열람 공간도 있었다.

도서관 도서 열람용 의자

T-센트랄렌역의 컬처후셋 도서관에 가면 유아,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있다.

특히 여긴 11~15세 특정 연령 청소년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 있는데 부모는 못 들어가고 오직 청소년만 들어갈 수 있다.

부모 간섭 없이 아이 홀로 책을 고르며 독서하며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게 새로웠다.

피아노 연주 공간도 있다. 헤드폰을 낀 채 피아노를 치면 오롯이 혼자만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리딩외로 이사 온 뒤엔 스톡홀름 시가 아닌 리딩외 도서관에 종종 가는데 스마트폰이나 개인 PC로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해 요긴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대출은 카드를 인식하고 책을 책상에 올려두면 끝

스톡홀름 공공도서관은 지난해부터 2025년까지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물리적인 공간 업데이트는 물론 도서관 운영전략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도 진행되고 있다.

리모델링 전체적인 방향은 이렇다.

               도서관을 단지 책을 전시하는 곳에서 문학에 생명을 불어넣는 곳으로 바꾸겠다.

               도서관은 도서관 소장품을 제공하는 것에서 출발해 스톡홀름 시민의 장서를 형성하겠다.(출판물을 더 쉽게 접하도록 변경)

               도서관은 단순히 복사실을 제공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회적 사명을 수행하겠다.(정부, 시민사회, 기업과 협력해 현대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겠다)             

               마을 한복판의 도서관이 아닌 도시 전체의 도서관으로 만들겠다.(도시 전체의 강력한 도서관 네트워크 형성)

               도서관이 새로운 서비스를 설계할 때 도서관 사용자 경험에서 시작하겠다.(도서관을 활발한 공동 창작과 참여를 위한 장소로 제공)             


스톡홀름 도서관은 리모델링 작업 도중인 현재도 도서관 발전 방향에 대한 시민 의견을 받고 있다.

2025년 도서관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궁금하다.


스웨덴 거주허가증이 있다면(퍼스널 넘버가 없어도 된다) 당장 인근 도서관에서 도서카드를 만들길 강추한다.

카드가 없어도 책 대출을 제외한 도서관 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만큼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자.


스톡홀름 도서관의 접근성과 네트워킹 시스템은 무척 강력했다.

하지만 우리 도서관이 더 선진적인 부분도 있다.

스웨덴에 오기 전 지역 도서관에 읽고 싶은 신간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신청해 읽곤 했다.

보통 2~3주 안에 책이 도착해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자메시지가 온다.

또 고사하는 지역 서점을 살리기 위해 지역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고 도서관에 반납하면 책값을 돌려주는 정책도 시행 중이다.

몇몇 거대 인터넷 서점의 할인 정책 때문에 빚어지는 지역 서점 몰락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이긴 하지만.

이런 서비스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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