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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13. 2023

스웨덴 제1정당 사민당은 복권회사?

2023년 3월 27일 스톡홀름 솔나 프렌즈 아레나에서 열린 유로 2024 F조 예선 스웨덴과 아제르바이잔의 경기를 보러 갔다.

그때 몸을 푸는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유니폼에서 낯익은 로고를 발견했다.

스벤스카 스펠(SVENSKA SPEL).

파란색 훈련복 상의에 박힌 스벤스카 스펠의 빨간색 로고는 강렬했다.

스벤스카 스펠 로고는 스톡홀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권 대리점 간판에도 있었다.

스웨덴의 흔한 복권 로또 대리점

스벤스카 스펠은 스웨덴 제1의 도박회사였다.

축구 국가대표 메인 스폰서가 도박회사라니 재미있고 놀라웠다.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여러 팀 유니폼에도 도박회사 로고가 있지만 그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축구팀 이야기이었다.

우리로 치면 로또 등을 주관하는 동행복권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메인 스폰서가 된 것이었다.

정부 복권 사업을 수탁하는 사기업인 동행복권과 달리 스벤스카 스펠은 온라인 카지노를 비롯해 스포츠베팅, 복권 등 다양한 도박사업을 하는 국영기업이었다.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의 메인 스폰서 '스벤스카 스펠' (사진=Dagens Nyheter)

시스템볼라겟이라는 국영회사를 둬 모든 술을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스웨덴이 도박사업 역시 스벤스카 스펠로 관리하는 듯했다. (스벤스카 스펠 외 다른 도박사업체도 있어 독점은 아니었다.)

스벤스카 스펠은 스웨덴 축구협회뿐 아니라 스웨덴 아이스하키 협회, 스웨덴 스키협회, 스웨덴 올림픽위원회, 스웨덴 엘리트 여자축구, 스웨덴 E-스포츠협회, 하키리그 등의 메인스폰서를 맡고 있었다.

경기 승패를 알아맞히는 스포츠 베팅 사이트를 운영하는 국영기업이 여러 스포츠에 메인 스폰서로 나서고 엘리트 스포츠 선수 지원, 각종 후원계약과 유소년 청소년 선수 육성 등에 지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뭔가 이상하기도 하고 그럴듯하기도 했다.

Svenska Spel은 스웨덴 아이스하키 협회의 메인스폰서이기도 하다 (사진=Svenska Spel 홈페이지)

스포츠 도박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니 그중 일부를 스포츠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스웨덴에서 복권이나 로또, 스포츠 토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게가 많았고 상당히 도박 친화적인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복권 상금의 33%를 제세공과금으로 떼지만 스웨덴은 도박 상금에 세금이 한 푼도 붙지 않았다.

스벤스카 스펠 사이트를 보면 복권이나 로또로 일확천금을 받은 이들의 실명 인터뷰도 있었다. 무려 얼굴도 공개했다.

복권 당첨자 실명 인터뷰 (사진=Svenska Spel 홈페이지)

한국에선 로또 1등 당첨자의 신원은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 공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로또 명당처럼 인터뷰 말미엔 복권이나 로또 구입처도 명시돼 재미있었다.

스웨덴 복권이나 로또를 해서 혹시 운 좋으면 스벤스카 스펠 사이트에 실명 인터뷰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꿈 같은 상상도 잠시 해봤다.

크로스컨트리 경기에 스폰서로 참여한 Svenska Spel (사진= Svenska Spel 홈페이지)

사회적으로 도박에 관대한 스웨덴 사회에 관심을 가지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한국적 시각에서 약간 충격적이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파 연립정부의 한 주축인 극우계열 스웨덴민주당 주도로 정당의 복권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정당이 복권을 판다고? 복권을 판매하다가 또 금지한다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스웨덴은 스벤스카 스펠 등의 도박사업체 외에 비영리기구의 복권 판매를 허용해왔다.

놀랍게도 비영리기구에 속한 정당은 복권 판매가 가능해 수십 년간 합법적으로 복권을 팔아 정치자금 상당 부분을 마련해왔다고 했다.

문제는 스웨덴에서는 신용 즉 외상으로 복권을 판매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는데 비영리단체는 예외 규정을 적용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따라 정당이 만든 복권업체 역시 구매자들에게 외상으로 복권을 판매해 왔다.

구매자는 복권업체과의 구독 계약을 통해 복권을 먼저 사고 나중에 인보이스(송장)를 받아 결제하는 후불거래가 가능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시스템 상 복권을 구입한 뒤 돈을 내지 않거나 못 내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통 복권업체는 추후 복권값을 지불하지 않는 이들의 명단을 크로노포그덴(kronofogden)이라는 채무집행 국가기관에 보내게 된다.

채무자들이 돈이나 빚을 못 갚으면 급여나 재산을 압류당하거나 살던 집에서 강제로 퇴거당할 수도 있다.

정당이 소유한 복권업체가 복권 외상 판매로 사행성을 조장하고 신용불량자까지 양산하는 셈이다.

2014~2016년 약 8천명이 복권 값을 지불하지 못해 채무집행 국가기관에 명단이 넘어갔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등이 소유한 복권 사이트 스크린샷 (사진=Dagens Nyheter)

복권 판매로 가장 많은 수익을 얻은 정당은 2022년 총선 전까지 연립정부를 이끌었던 사회민주당(사민당)이었다.

사회민주당은 2021년 복권 판매로 1억5천200만크로나(약 194억원)를 벌었다.

이는 그해 정당 총수익의 거의 절반에 해당했다.

사회민주당과 함께 복권 판매로 정치자금을 마련한 보수당(현재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 소속당)은 복권 판매로 2021년 470만 크로나(6억여원)를 벌어들였다.

그외 나머지 정당은 복권 판매를 하지 않았다.

사회민주당의 복권 판매 수익은 보수당의 수익보다 32배나 많았다.

실제 사회민주당은 2021년 기준 가장 많은 정치자금인 3억4천45만7천650크로나를 모았고, 이는 2위 중앙당 1억6천100만크로나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거의 복권 판매 수익만큼의 차이가 난 것이었다.

2017년 이전 10년간 사회민주당은 복권 판매로 5억 크로나 이상의 수익을 올렸고 이 금액과 비중은 갈수록 커졌다.

지난해 총선에서 보수당 등과 연립정부를 구성한 스웨덴민주당은 가장 많은 선거자금을 모으고 사용하는 제1 야당 사회민주당의 돈줄을 차단할 목적으로 정당의 복권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스웨덴민주당 의회 관계자는 이 법안을 두고 '(사회민주당이) 스스로 조작한 부패한 시스템'의 정상화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2004년 사회민주당 연립정부가 정당을 비롯한 비영리단체에 복권 신용 판매를 허용하는 새로운 법을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기독민주당과 좌파당이 이 법에 항의했지만 다수였던 사민당 정부가 이를 통과시켰다.

물론 이 법은 모든 정당에 유효했지만 실질적으로 사회민주당이 복권 판매로 가장 많은 수익을 얻었다는 점에서 최대 수혜자였다.

막달레나 안데르손 사회민주당 대표 (사진=Dagens Nyheter)

스웨덴민주당, 보수당, 기독민주당, 자유당 등 우파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4개 정당이 이런 법안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전 총리인 막달레나 안데르손 사민당 대표는 "단일 정당(사민당)을 겨낭한 특정 법안이며 야당을 침묵시키려는 조치"라며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안데르손 대표는 사민당이 다른 정당에 비해 복권 판매 수익이 훨씬 많은 데 대해 "우익 정당과 달리 기업자금을 받지 않으며 민중 정당으로서 자금을 마련하는 우리의 방식"이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스웨덴 대중운동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민당 반발에도 지금 분위기라면 스웨덴 의회에서 다수인 우파 연립 정부가 이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

늦어도 2024년 봄엔 법안이 통과돼 정당의 복권 판매가 전면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당 복권이 금지된다면 사회민주당의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 해 정치자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입원을 잃게 되고 선거자금, 캠페인 비용 등에서도 큰 구멍이 생긴다.


스웨덴 정치학자인 Marja Lemne는 "민주주의 정당에 돈은 중요하지만 문제는 돈을 얻는 방법이며 복권으로 정치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가"라며 "많은 정당이 그런 종류의 수입 없이도 살아남았으며 이를 두고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라고 말했다.

정당이 도박중독이나 신용불량 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복권 판매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누가 복권을 샀는지 알 수 없어 정당 자금의 투명성 차원에서도 옳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래 저래 명분 싸움에서는 사민당이 불리한 형국이다.

사회민주당 캠페인 모습 (사진=Dagens Nyheter)

지금의 스웨덴이 있기까지,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사회민주당 정치자금의 가장 큰 비중이 복권 판매 수익이었다는 점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안데르손 사민당 대표 말처럼 기업 후원을 받지 않고 정당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사민당 정당 수익 중 기부금 비율이 1%에 불과하고, 이번 법안을 주도한 극우 성향 스웨덴민주당의 기부금 비율이 21%로 가장 높다는 점에서 일면 이해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서 뒤로는 도박인 복권 수익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복권 외상 판매까지 가능하게 해 신용불량자까지 양산하는 건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북유럽 선진 민주주의 국가 스웨덴 정치의 가려진 민낯인가 싶었다.

정당 수입 구조가 어떻길래 복권 판매 수익이 절반이나 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사회민주당 2020년 2021년 수익 구조 (자료 출처 www.kammarkollegiet.se)

2021년 사민당 수익 3억4천45만7천650크로나 중 복권 판매 수익은 45%인 1억5천229만1천779크로나였다.

그다음으로 공공지원(정부 지원금인 듯) 37%가 큰 비중을 차지했고 놀랍게도 회비는 1%에 불과했다.

금액으로 치면 392만4천768크로나(약 5억원)였다.

사회민주당 당원이 되려면 한 달 20크로나(128원 환율기준 2천560원), 연간 240크로나(약 3만원)를 내야 한다.

사민당 연간 회비 수익을 회원 연간 회비로 산술적으로 나누면 약 1만6천353 정도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사회민주당 회비 납부 당원이 1만6천353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인지 의아했다.

한국정치 1, 2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회비를 내는 권리당원이 나무위키 기준 각각 79만여명, 117만여명, 당비 수입은 각각 120억여원, 262억여원이었다.

이 수치가 맞다면 국민 신뢰도가 높다는 스웨덴 정당 정치가 참여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다고 보긴 어렵겠다.

사회민주당 홈페이지

정당의 복권 판매 금지 법안이 통과된다면 사회민주당 입장에서는 발등의 불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거부해 온 기업 후원금을 받지는 않을 테고 정치자금을 마련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할 듯하다.

물론 선거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 돈이 전부는 아닐 테지만 그래도 정치자금, 선거자금은 중요하다.

일부분도 아니고 전체 정당자금의 절반가량이 뻥 비어버리는 상황에서 사회민주당은 어떻게 해서든 법안 저지에 나서지 않을까 예상된다.

스웨덴이 복권, 도박 친화적인 국가인 줄은 알았으나 제1당인 사회민주당 정치자금의 주 수입원이 복권 판매 수익이었다니 다시 생각해도 놀랍고 혼란스럽다.

분명 스웨덴 정치만의 역사나 전통이 있고 사민당은 지금껏 그 바탕 위에 공고한 민주주의 정치를 일구고 국민에게 신뢰감을 심어줬다.

이번 복권 판매 금지 법안 추진이 사회민주당의 주 수익원을 없애 다음 선거에서도 재집권하겠다는 현 우파 연립정부(특히 스웨덴민주당)의 큰 그림이겠지만 대중정당인 사회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건 분명해 보인다.


이번 사태를 다수당의 횡포라고 보는 관점도 있었다.

스웨덴 의회에서 과반 의석수를 차지한 스웨덴민주당, 보수당 등 우파 연립정부가 거대 야당인 사민당 정치자금 축소를 노리고 법안을 제출해 통과시키려 하는 움직임이 의회민주주의의 폭력이라는 시각이었다.

이번 법안 목적이 정당의 복권 판매로 인한 도박중독 해결이나 정치자금의 투명성 제고 차원이 아니라 경쟁 정당을 고사시키려는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다수 의회 권력의 힘으로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나중에 의회 권력을 다시 잡은 사민당 정부가 기업 등 외부 기부금 비율이 높은 스웨덴민주당을 겨냥해 정당 기부금 비율을 대폭 축소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켜도 할 말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권력을 등에 업고 힘으로 경쟁 정당을 억누르는 건 그동안 페어플레이를 해온 스웨덴 정당 민주주의의 룰을 깨는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번 법안이 통과될지 위협만으로 그칠지 두고 볼 일이다.


(# Dagens Nyheter, Expressen, kammarkollegiet.se 등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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