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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May 25. 2023

‘유쾌 상쾌 통쾌’ 그레타 툰베리를 만나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기후위기 시위에 참여한 그레타 툰베리

인스타그램 팔로워 1천470만여명.

스웨덴 최상위 SNS 인플루언서이자 기후운동가.

아스퍼거 증후군, 강박 장애가 있는 채식주의자.

15세 때 학교를 결석하고 국회 앞에서 기후위기 대책 마련 1인 시위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금요일마다 기후 학교 파업(climate school strike),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시위로 전 세계 수백만 학생들이 금요일 수업을 거부하고 기후위기 시위로 뛰쳐나오게 한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그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났다.

스웨덴 정부 고소한 오로라(Aurora) 회원들

2022년 11월 25일.

이날 오로라(Aurora)라는 기후운동단체는 어린이, 청소년 636명의 서명을 받아 스웨덴 정부에 집단소송을 제기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스웨덴 정부의 기후정책이 아예 없고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며 고소했다.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195개국(한국도 포함)이 파리협정을 채택했는데 스웨덴 정부가 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파리협정 핵심 내용은 지구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고 각국이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정해 실천하자는 거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기후위기 시위

시위에 나선 이들은 스웨덴 정부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스웨덴의 탄소배출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지 않고

이를 줄이기 위한 실행가능한 감축 계획도 없다며 '바로 지금' 국가를 고소한다고 외쳤다.

"스웨덴 정부는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후 목표를 개발하고 따라야 한다. 국가의 기후 조치가 실패하면 미래에 우리의 인권을 위협한다"는 것이 이들이 집단소송과 시위에 나선 이유였다.

앞서 비슷한 소송이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환경단체가 승소해 해당 정부가 기후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스톡홀름 기후위기 시위

사실 나는 그레타 툰베리 이름 정도밖에 몰랐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주제로 스웨덴으로 연수를 온 아내가 이번 집회를 취재하면서 급관심을 가져야 했다.

시위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내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시위 출발점은 정부 청사가 있는 Mynttorget였다.

늦지 않을까 조바심을 가지고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번 시위에는 그레타 툰베리도 소송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해 관심을 끌었다.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는 그레타 툰베리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는 그레타 툰베리
"이제 우리는 국가를 고소한다"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그레타 툰베리

프랑스 AFP 통신, 다겐스 니히터, SVT 등 외국과 스웨덴 언론 기자들도 일찌감치 와서 취재에 나섰다.

나는 기동성이 편한 휴대폰 카메라로 찍으려다가 그래도 DSLR 정도는 있어줘야 시위대의 의아한 시선을 받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에 내가 가진 유일한 카메라를 들고 갔다.

나의 캐논 500D + EF-S 24mm, 구식이긴 하지만 가볍게 들고 다니긴 좋다.

출시된 지 14년 된 캐논 500D다.

문제는 렌즈인데 놀랍게도 24mm 팬케이크(모양이 팬케이크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단렌즈밖에 없다.

500D는 1.6 크롭센서라 환산 화각이 38mm 정도다.

평소 아이들 찍기엔 좋은데 이번엔 뭔가 상당히 애매하다.


사실상 광각인데 조금이라도 생생한 시위 모습을 찍으려면 시위대에 붙어서 카메라를 들이대야 했다.

취재용으로 팬케이크 렌즈를 물린 500D를 떠올리면 지금 생각해도 차라리 폰카가 더 나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지 기자들의 플래그십 카메라와 비교해 너무 뽀대 나지 않는 500D에 팬케이크 렌즈 조합.

그거 들고 열심히 찍고 있으니 '얘, 뭐니'하는 시선이 느껴지는 듯한 혼자만의 자격지심에 약간 멘털이 이탈했지만, 훗 장인은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는 고고한 자존심으로 셔터를 눌렀다.

평소 때는 못 느꼈는데 이 날따라 500D 셔터 소리도 왜 이리 촌스럽고 경박스럽다냐.

나는 밥벌이하는 입장이 아니다 보니 진짜 기자들 동선과 화각에 피해가 안 가도록 신경도 써야 했다.

기후 위기 취재하는 현지 기자
혼자 촬영하고 리포트하고... 인상적이었던 현지 매체(SVT였나) 기자

암튼 스웨덴 시위도 우리나라 시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플래카드 들고 대열 지어 행진하며 구호 외치고 노래도 부르고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경찰차 1대가 앞에서 에스코트하고 경찰관 두어 명 정도가 길을 유도하는 식이었다.

많은 취재진들이 시위대 속 그레타 툰베리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나도 그 속에 끼어 셔터를 눌렀다.

'기후가 아닌 시스템을 바꾸라'는 플래카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시위에 나선 여성.
끝이 보이지는 않는 시위 행렬
한 시민이 시위행진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시위에는 소송 주체인 청소년, 어린이, 대학생(소송 참여자 중 가장 어린 이는 7세라고 했다)은 물론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가 참여해 인상적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 반려견과 함께 행진하는 이도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상당히 많은 시민이 스톡홀름 지방법원까지 4~5Km를 함께 걸었다.

시위대에 박수를 쳐 주거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고 사진을 찍는 시민도 있었다.

스톡홀름 기후위기 시위

시위는 법원 앞에서 오로라 주요 멤버들이 이번 소송의 목적과 당위성을 낭독하는 정리집회로 끝났다.

기억에 남는 건 받침대에 올라선 한 남성이 집회 발언을 수화로 계속 전달하는 거였다.

(스웨덴은 다양한 행사에서 수화해설이 많이 보였는데 장애인을 위한 진심이 느껴졌다)

아내 덕분에 그레타 툰베리도 보고 스웨덴 기후위기 시위를 몸소 느껴본 색다른 경험이었다.

기후위기에 '플랜 B는 없다'

생각해 보면 기후위기는 이론적, 이성적으로는 너무 절박한 지구 시민의 생존 문제인데 한편으론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피부에 와닿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다.

라면값이 100원이라도 오르면 '생필품인데 어찌 이럴 수가 있냐'며 난리 치는 것과 달리 지구 온도가 1도 올라간 것은 평소엔 쉽게 체감되는 게 아니기 때문인 듯하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해 땅에 서서히 물이 차오르는 섬나라 투발루의 사례는 그냥 TV를 볼 때만 잠시 심각성을 느낄 뿐 이내 일상으로 돌아오면 잊어버리기 일쑤다.

한국을 떠올려보면 온갖 집회와 시위가 많지만 기후위기 관련은 몇몇 환경단체가 주도하거나 유명인사가 하는 1인 시위가 대부분이고 아직 대중시위로 이어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은 서울이나 부산에서 강이나 바다와 인접한 아파트나 주택이 부동산 시장에서 대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기후변화로 혹은 해수면 상승 리스크로 기피 주거지역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스톡홀름 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정리집회
'기후와 지구를 위해 채식주의자가 돼라'는 플래카드

기후위기 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에 대한 냉소나 비아냥도 끊이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은 툰베리에게 '감정조절 문제나 애쓰고 친구랑 영화나 보러 가라'라고 조롱했다.

스티븐 므누신 전 미국 재무장관은 '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나 하고 와라'라고 비꼬았다.

전 재규어 랜드로버 CEO는 툰베리에게 '대안 없이 비판만 한다', 미국 폭스뉴스 패널은 툰베리를 '정신질환자'라고 저격했다고 퇴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폭행 혐의를 받는 앤드류 테이트라는 킥복서 출신 인플루언서가 SNS로 툰베리에게 유치한 시비를 건 뒤 한방 먹고 다시 조롱 영상을 올렸다가 영상 속 피자박스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노출돼 경찰에 체포된 일도 있었다.

기후위기 시위에 참여한 그레타 툰베리

그레타 툰베리는 이런 조롱을 유쾌하게 혹은 그대로 되받아치면서 6년째 매주 금요일 climate school strike를 하고 있으며, 뉴욕 기후회의에 연설하려고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가 아닌 무동력 요트를 타고 한 달간 대서양을 건너는가 하면 최근엔 독일 뤼체라트에서 석탄 채굴 광산 반대 집회에 참여하다 경찰에 사지가 붙들려 구금됐다.

또 스웨덴 북부 원주민인 사미족 거주 지역 중 하나인 키루나에서 유럽 최대 희토류 매장지 개발 반대 운동을 하는 등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자연계에 매우 드물게 존재하는 금속 원소로 21세기 최고의 전략 자원으로 불리는 희토류는 희귀 금속 중 하나다. 란타넘, 세륨, 디스프로슘 등인 희토류는 반도체, 전기차, 스마트폰 제조에 필수 광물로 21세기 최고의 전략 자원으로 불린다. EU는 유럽 90%의 희토류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상황에서 개발을 환영하는 상태다. 하지만 희토류 개발을 할 경우 순록을 키우며 사는 사미족에게 피해가 우려된다.)

2019년엔 그레타 툰베리 재단도 설립됐는데 2022년 10월까지 유니세프, 그린피스를 포함한 기후환경 단체 등에 1천350만 크로나(16억2천만원)를 기부했다.

2023년 1월 10대에서 스무 살이 된 그레타 툰베리는 스웨덴에서 유럽 곳곳에서 종횡무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또 이제는 그레타 툰베리에게 영향을 받은 전 세계 수많은 '툰베리' 키즈들이 “지구는 하나뿐”이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과 우리의 변화는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부터라고 강조한다.

"The time to act is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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