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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l 17. 2023

스웨덴에서 자녀입학 기피 부모가 됐다

스웨덴 생활 '초짜'였던 2022년 8월 일이다.

출국 5개월 전부터 스웨덴 스톡홀름 한 공립 국제학교에 첫째와 둘째 입학 지원서를 냈지만 첫째만 입학 허가를 받았고 둘째는 대기 상태였다.

스웨덴 도착 전 두 아이 모두 국제학교 입학을 확정 짓고 싶었지만 둘째의 입학 여부는 확실하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아내와 난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한 사립 국제학교에 뒤늦게 입학 지원서를 보냈고 수월하게 두 아이 모두 입학 허가가 났다.

두 학교의 차이는 공립과 사립 외에도 학비 유무였다.

체재비가 부족한 해외연수자와 휴직수당으로 버티는 육아휴직자 조합인 우리 부부에게 두 아이를 합쳐 1년에 700만원이 넘는 학비는 큰 부담이었다.

학비가 무료인 공립 국제학교에 두 아이를 보내고 싶은 열망이 컸다.

스웨덴에 도착한 뒤 학교를 돌아봤는데 시설이 크고 좋아 아이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더욱 커졌다.

입학일은 다가오는데 둘째는 계속 '대기' 상태였고 학교 측에 수차례 메일을 보냈지만 답이 없거나 계속 기다려보라는 말뿐이었다.

학교가 정해져야 그에 맞게 남은 기간 살 집도 구하는데 마음이 급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니 스웨덴이 융통성 있는 사회인만큼 학교 측에 한번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권유했다.

학교에 직접 찾아갔지만 입학 사정관을 만나지 못했고 우연히 한 선생님을 만나 사정을 설명한 뒤 입학처 담당자에게 얘기를 잘 전달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5개월 희망고문 끝에 남은 건 좌절이었다.

첫째만 공립학교에, 둘째는 사립학교에 각각 보낼까도 고민했지만 결국 두 아이를 사립학교에 함께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미련 때문이었는지 가을 학기 입학 3일 전 마지막으로 공립학교 입학 사정관에게 두 아이가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메일을 보냈다.

혹시 우리 가족을 딱하게 여겨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이었다.

이번에도 답변은 오지 않았다.

심장 두근거린 첫 등교일 풍경

가을학기 시작일 첫째와 둘째는 사립학교에 입학했다. 공립학교에 비해 건물도 몇 동 되지 않았고 운동장도 작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당장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은 두 아이의 학교 적응이 시급했다.

열망했던 공립학교는 이제 머릿속에서 지우려 했다.

입학 다음 날 느닷없이 스톡홀름 시교육청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왔다.

교육청 의무교육 담당자는 공립학교 측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우리 아이들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웨덴에 있는 모든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할 권리가 있으며 너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학교에 자리가 없으면 일반 학교라도 보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하루 단위로 벌금을 물게 될 것이며 벌금액은 너희 부부의 연소득에 따라 책정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공립학교 입학사정관에게 두 아이 모두 함께 다니고 싶다는 열망을 마음을 다해 표현하긴 했다. 한 가닥 진심을 알아주지 않을까 해서였다.

둘째의 입학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입학 허가를 받아둔 다른 사립학교에 보낼 예정이었지만 간절함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메일에 적지는 않았다.

그걸 입학이 안 되면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 있다고 오해한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더 황당한 건 간단한 답장조차 하지 않고 상부기관인 교육청 담당자에게 고자질하듯 연락한 것이었다.

이 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낼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이었다.

한국 학부모의 자녀 교육열을 무시하는 처사는 제쳐두더라도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아내는 해당 공무원에게 두 아이가 사립학교에 입학해서 잘 다니고 있다고 답장했다.

스톡홀름 시교육청에 온 메일

다음 날 또 메일이 왔다.

그 공무원은 이번엔 첫째, 둘째가 다니는 사립학교 이름과 유사한 학교가 스톡홀름에 6곳이 있는데 어떤 학교에 다니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번엔 황당함이 아니라 스웨덴 사회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교육청은 이미 첫째, 둘째의 이름과 나이, 학교 이름까지 알고 있다. 그런데 사립학교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 6곳 중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 하나를 콕 집어 알려 달라고 한다?'

초등학교를 관할하는 교육청 공무원이 학생 신상정보만으로 다니는 학교를 알 수 없는 교육 시스템인 건가.

그러고 보니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엄포를 놓은 것도 입학일 다음 날 아닌가.

학생 이름만 검색하거나 재단에 전화 한 통만 해봐도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그걸 학생 부모한테 메일을 보내고 다시 학교명까지 물어본다는 건 학생과 학교를 아우르는 전산 시스템이 없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스웨덴 교육청은 학생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학생 입학 여부를 부모에게 물어볼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학사관리를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확한 학교 이름은 물론 두 아이의 학년과 반까지 적어 다시 짧은 메일을 보냈다.

메일 마지막엔 이렇게 한 문장을 덧붙였다.

"나는 단지 내 아이들을 같은 공립학교에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왜 내가 이런 메일을 계속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매우 불쾌하다"고.


하루 뒤 다시 메일이 왔다.

"빨리 답해줘서 고맙다. 너희 아이들이 우리 시스템에서 올바른 배치를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의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


나와 아내는 스웨덴까지 와서 자녀 입학을 기피하는 부모가 됐다가 가까스로 혐의를 벗었다. 이유 없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는 한국에서도 아동학대 수사 대상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궁금하다.

스웨덴엔 학생 학사관리 시스템이 없는 것인지, 있지만 사생활 문제 등으로 시스템 검색 대신 개인에게 물어보는 것인지 말이다.

민원인에겐 답변해주지 않지만 상부에 신속하게 보고하는 공무 체계는 기억에 남았다.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연립 정부가 정치적으로 협력하기로 한 티퇴협약서. 이 문서엔 이민 문제 등 8개 영역에 대한 정책 변화가 담겼다.(사진=다겐스 니히터)

물론 스웨덴의 모든 공무원이 그렇지 않은 듯했다.

2022년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연립 정부는 불법체류자 등이 학교나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 공무원이 이를 이민청과 경찰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정책 도입을 검토했다.

스웨덴 이민 정책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민자, 거주허가자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배제하겠다는 의도였다.

페이퍼리스(paperless)라고 불리는 서류미비자는 스웨덴에 거주 허가를 신청했지만 거부된 후 숨어 지내는, 합법적인 허가 없이 사는 사람들이었다. 스웨덴에 5만명에서 수십만명의 페이퍼리스가 있다고 했다.

특히 이런 서류미비자 다수가 자녀들이 있다.

놀랍게도 스웨덴은 2013년 7월부터 허가 없이 체류하는 아동도 교육을 받을 법적 권리를 부여했다. 불법체류자라도 다른 학생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수준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현 우파 연립 정부는 10여년 만에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많은 교사와 교육자는 이 정책 추진에 반발하고 있었다.

우파 연립정부가 이 정책 도입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이 알려진 뒤 스웨덴 한 교사 잡지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93%의 응답자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몇몇 교사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류가 미비한 학생들 명단을 이민청에 절대 알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예테보리의 한 학교장은 만약 경찰이 찾아오면 해당 학생이 학교에 없다며 꽁꽁 숨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책에 대한 반대는 교사뿐 아니라 도서관 사서 노조 등 공무원 전반으로 퍼졌다.


스웨덴에 온 지 얼마 안돼 국제학교 입학과 관련 너무 큰 실망과 함께 정나미 떨어지는 경험을 해서 교육사회의 신뢰도가 확 떨어졌지만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보고 스웨덴 교육에 대한 믿음이 점차 쌓였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두 아이 모두 처음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 다니는 걸 행복해했다.

첫째는 친구들이 인종이나 외모 등을 떠나 누구든 편견 없이 대하는 경향이 있고 학교 교육이 경쟁적이지 않아서 좋았다고 했다.

난 교과서 없이 공부하는 게 너무 신기했다.

하루는 첫째가 옆에서 종이에다 고래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빼곡히 적고 있었다.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과학 숙제란다.

이번 주 수업 주제가 적응(Adaptation)인데 동물이나 식물 중에 하나를 골라 자연에 적응하는 특징을 찾는 거라고 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거냐고 물었더니 "교과서 없는데?" 그랬다.

협동(Collaboration), 적응 등의 키워드로 공부하고 과제를 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교과서가 없는 과학 수업이란 어떤 느낌일까, 주입식 교육 세대인 나로선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협동, 적응이라는 단어로 공부해 볼 생각도, 누군가 그런 공부 주제를 던져준 적도 없었다.

첫째, 둘째의 학교 가는 길

지난해 부산교육청을 비롯한 몇몇 교육청에서 초등학교 3학년 이상에게 수업 교보재로 스마트기기를 무상 배포했다.

첫째 둘째가 다니는 국제학교엔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패드를 나눠주고 수업에 활용하고 있었다.

아이패드로 수업 참고자료를 찾고 과제를 하고 발표에 활용하기도 했다.

(국내 언론에서도 보도됐지만 스웨덴 교육 당국은 학교 현장에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교육으로 오히려 학생들의 문해력 등 학습 능력이 떨어져 종이책을 통한 수업, 손글씨 쓰기 등 아날로그 교육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결정을 내렸다.)

첫째 둘째 모두 학년별로 기후위기를 주제로 조별 연구한 뒤 그 결과물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학부모들이 조를 돌아가며 학생들의 설명을 듣고 질문도 던지는 수업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첫째의 경우 생각보다 과제와 시험이 많았던 것도 기억에 남았다.

옆에서 지켜보니 과제는 주로 학생이 어떤 주제에 대해 스스로 찾고 생각한 결과물을 제출했고 시험은 서술형 문제 풀이나 토론식 발표로 대체하는 게 많았던 것 같다.

학기당 한 번씩 담임 선생님을 포함한 다른 과목 선생님을 만나 아이의 교육 성취도 등을 듣기도 했는데 선생님들이 아이에 대한 장단점이나 수준에 맞는 구체적인 교육 목표를 공유하고 있어 놀랐다.

두 학급으로 이뤄진 한 학년이 40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학기마다 꼭 한 번씩 파자마 입고 등교하는 파자마 데이, 나름 꾸미고 화장도 할 수 있는 파티 데이도 해서 학생들이 일탈(?)을 맛보기도 했다.

기말엔 학년별로 노래를 하나씩 정해 연습한 뒤 학부모 초청 공연을 했다.

일종의 학예회라고 할 수 있지만 학기의 마무리를 학생들의 하모니 공연으로 매듭짓는 게 특별했다.


초등 3학년인 둘째는 영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데다 특히 운동할 때 경쟁심이 강해 학기 초 친구들과 크고 작은 문제가 있어 걱정이 많았다. 한동안 학교에 보내놓고도 조마조마했다.

매일 나랑 손잡고 등교하던 둘째가 5개월 정도 지났을 때 처음으로 내 손을 뿌리치고 등교시간에 만난 친구와 대화하며 걸어가는 걸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치 영화 '원더'에서 안면기형이 있어 학교에 늦게 들어간 주인공(어기)이 친구(잭윌)와 함께 하교하는 모습을 보고 어기 엄마(줄리아 로버츠)가 감정이 북받치는 장면처럼 말이다.

'원더'에서 어기는 학교 졸업식 때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줬다는 이유로 학생 대표로 상을 받았다.

첫째는 어기처럼 2023년 6월 종업식 때 1년간 IMYC 개인 목표를 가장 잘 보여주고 구현했다고 생각하는 학생 1명을 뽑는 학년 투표에서 최다표를 받아 놀이공원 입장권을 받았다.

IMYC(International Middle Yeara Curriculum)는 11~14세 어린이를 위한 국제 커리큘럼으로 학생이 적응력 있고, 소통·협력·공감·생각하고 존중하며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는다.

첫째가 어떻게 친구들한테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는지 지금도 의문이긴 하다.

하지만 공부 잘해서 받은 상보다 정말 값진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MYC 개인 목표상 수상자들이 학교 소식지에 실려 있다. 오른쪽이 첫째 모습. 부상으로 놀이공원 그뢰나룬드 입장권을 받았다.

스웨덴 학교 교육은 이상적일까.

난 그걸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 고작 1년 학교 밖에서 느꼈을 뿐이라 일반화하기도 어렵다.

다만 아이들이 재미있게 학교를 다니고 행복해하니까 좋다고 생각할 뿐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스웨덴 교육에 부정적인 현상도 많다.

스웨덴 전체 학생의 약 30%가 많은 교육 지원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스웨덴 고등학교 3학년은 대학 준비 시험과 취업을 위한 직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낙제로 이 두 기회를 갖지 못하는 고등학생이 30%나 된다는 말이다.

이들은 고교 졸업장이 없는 사람에게 거의 폐쇄적인 스웨덴 노동 시장에서 낙오자가 될 우려가 커 스웨덴 교육 당국의 고민이 깊다.

이 때문에 시험을 통해서가 아닌 누구나 직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당수 고등학교의 성적 부풀리기도 심각하다.

스톡홀름 최상위 대학 중 하나인 스톡홀름 경제 대학(Stockholm School of Economics)은 2023년 5월 앞으로 대입 국가시험이 아닌 자체 시험으로 입학생을 뽑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혀 교육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많은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 성적을 임의로 조정하거나 입학 단계부터 성적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신입생을 유치한 것이 적발됐기 때문이었다.

또 대입 시험 성적과 고등학교 성적이 불일치하는 경향이 많아 더는 현행 대학 진학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입 시스템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 제기와 함께 별도 시험 검토는 철저한 능력주의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스웨덴 사회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회 제도의 신뢰가 추락하면 능력주의가 위태로워지고 이는 곧 민주주의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교육은 어렵다.

어느 나라든 쉽지 않다.


(# Dagens Nyheter, www.skolverket.se, www.expressen.se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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