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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Aug 01. 2023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의 출산파업

아기를 안 낳아서 큰 일이라고 한다.

지난해엔 17년 만에 역대 최저 출생아 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 이야기 같지만 스웨덴 이야기다.


스웨덴에서 와서 느끼는 건 아이 키우기 너무 좋은 사회라는 점이다.

자녀 1명당 최대 16개월(480일) 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건 물론 소득에 따라 최대 약 532만원(43,750크로나)까지 양육수당이 지급된다.

스웨덴 중부의 karlskoga는 지자체 고용 노동자에게 최대 6개월간 수당 상한선(43,750크로나)을 없애고 급여 100%를 지급하기로 했다.

3개월까지 통상임금 100%(상한 250만원), 나머지 9개월 통상임금 50%(상한 120만원)의 육아휴직 급여를 받는 내가 볼 땐 이건 정말 '혁명'적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법적 제도뿐 아니라 유모차로 어디든 다닐 수 있는 대중교통, 아이들이 집 주변에서 편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 무료인 공교육과 다양하고 저렴한 스포츠·음악·레저 활동 인프라 등 스웨덴은 아이를 위한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스웨덴에서 지난해 역대 최저 출생아 수를 기록했다니 이 무슨 일인가.

2021년 기준 스웨덴 출산율은 1.67명이다.

2010년 2명에 근접한 1.98명까지 상승한 이후 점차 하락 추세다.

참고로 한국의 2021년 출산율은 스웨덴의 절반 수준인 0.81명이다.

출산율만 보면 스웨덴보다 높은 국가들이 많지만 스웨덴 출산율이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게 있다.

바로 스웨덴 여성 취업률이다. 성인 여성의 80%에 육박하는 취업률 속에서 1.67명이라는 출산율은 믿기지 않는 수치다.

여성은 물론 남성도 회사 눈치 안 보고 출산하고 육아휴직까지 당당히 사용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스웨덴에서 지난해 출생자가 좀 감소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2021년 스웨덴 출산율 1.67명 역대 최저 (사진=Dagens Nyheter)

취업률이 높고 임신, 육아, 출산, 양육에 이르기까지 법적, 제도적, 사회적 제도가 뒷받침된 스웨덴에서 여성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스톡홀름 대학 인구학 교수인 군나르 안데르손(Gunnar Andersson)은 "출산율 감소가 경제의 구조적 악화나 가족 정책의 변화와 연결될 수 없고 오히려 전쟁, 기후변화, 인구 과잉, 테러 등 세계적인 불확실성에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러시아와 핀란드를 사이에 둔 스웨덴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남일이 아니었고 전쟁에 대한 위기감은 나토 가입 추진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전쟁이 출산율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미래의 불확실성만으로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했다.


스웨덴 여성이 첫 아이를 낳는 평균 나이는 30세라고 한다.

이 나이는 최근 몇 년간 계속 증가하고 있다.

30세 이전에 결혼하기까지 배우자를 만나고 집을 구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

아이 갖기를 자제하는 이유가 바로 고용시장의 불안정성 때문에 적당한 직업을 구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견해도 있다.

스톡홀름 대학의 인구학 도슨트인 리비아 올라(Livia Oláh)는 "고용이 점점 불안정해지는 사회는 가정을 꾸리는 데 영향을 줄 수 있고 육아휴직은 정규직이 아닌 사람에게 적합한 제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스웨덴 여성의 출산을 보면 한 가지 경향이 나타난다.

소득 상위 25% 이상 여성 출산율이 높았고 2020년에 비해 2021년 임신이 늘어난 것도 30~34세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엔 둘째, 셋째 아이 출산이 많았다.

이는 소득이 많으면 출산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소득이 적으면 출산을 포기하는 양극화 현상이다.

스톡홀름 대학의 인구통계학 연구원인 마틴 콜크(Martin Kolk)는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자녀를 갖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반면 부유한 남성이 자녀를 가장 많이 낳는 경향이 있다"며 "좋은 부모의 기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소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이나 출산 기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충분히 높은 소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자녀를 포기하는 잠재적인 부모가 점점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업이나 소득 등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에 도달한 사람이 결혼과 출산을 생각하는 건 한국이나 스웨덴이나 비슷하지 않나.

그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스웨덴에서 최근의 저출산 경향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갑자기 취업률이 하락한 것도 아니고 큰 경제위기나 침체가 닥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스웨덴 같은 임신, 육아, 출산 친화적인 국가에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면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저출산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일 것 같아 출산율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이 궁금했다.


그러던 중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기사는 데이트 앱에서 만나 결혼한 스웨덴 31세 남성과 28세 여성 부부가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한 내용을 다뤘다.

이 부부는 자녀를 낳는 대신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보드 게임을 하면서 저녁 식사를 하고, 주말에는 하이킹을 갈 것이라고 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데 들이는 비용과 시간을 온전히 자신에게 투자하겠다는 말이었다.

이른바 스웨덴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 이야기였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이 부부는 스웨덴으로의 이민 증가를 지지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자녀를 거부하는 스웨덴 부부가 많이 없었기에(혹은 관련 통계가 없어서) 이 부부의 이야기가 기사화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저 출산율 통계 발표 이후 나온 기사라서 흥미로웠다.

기사는 딩크족 증가가 2022년 스웨덴에서 17년 만에 가장 적은 수의 아이가 태어난 이유라고 적었다.


2019년 스웨덴 통계청이 발표한 보고서는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20~65세 인구에 대한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아이 없이 동거하는 이들이 가장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 중에서 특히 자녀 없이 동거하는 여성의 56%가 삶에 만족한다고 답해 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다.

아이 없는 동거인은 여가시간과 재정 상황에서 아이 있는 동거인보다 월등히 만족도가 높았다.

4년 전인 2015년 스웨덴 통계청 조사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동거인이 행복하다고 답변한 비율이 가장 높았던 결과와 상반됐다.

삶의 행복도를 묻는 조사에서 아이 없이 동거하는 이(왼쪽)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사진=스웨덴 통계청)

이런 점에서 볼 때 최근 스웨덴 출산율 하락은 사회여건과 정책 문제가 아니라 여성 태업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출산을 거부하는 것은 남성 등 동거인 합의나 의지도 작용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여성에게만 돌려서는 안 될 듯했다.

한국 출산율 2배 국가인 스웨덴에서 아이를 안 낳는 이유가 아이 없는 삶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딩크족의 출현 때문이었다니 놀라웠다.

진정 내 삶을 위한 라이프 스타일 변화가 출생자 하락의 원인이라면 아무리 기발한 저출산 대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해 스웨덴 출생자 최저 수치는 전체 인구 감소로 이어지진 않아 스웨덴 당국의 걱정이 크진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사망자보다 출생자가 많고 이민자가 많아서 인구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젊은 세대가 고령 세대보다 훨씬 줄어 은퇴자 연금 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아직 그런 사회적 문제로까지 도달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런 저출산 추세가 단기적으로 그칠지 계속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취업이 쉽지 않고 먹고살기도 힘들고 경쟁도 심하고 사교육도 해야 하는 최저 출산율의 한국.

65세 이상이 인구의 20%를 차지해 청년들의 고령자 부양 부담은 더욱 커진 초고령사회 한국은 과연 어떤 저출산 극복 대책을 만들어야 할까.


(## Dagens Nyheter, aftonbladet, 스웨덴 통계청 등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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