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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l 13. 2023

올해 패스트패션 의류 몇 벌 버리셨나요

스웨덴 최대 의류업체이자 세계 2위 패스트 패션 체인 H&M.

누구나 옷 하나는 있을 법한 친숙한 의류 브랜드다

2023년 4월 스웨덴 언론에서 H&M 관련 기사가 나왔다.

주제는 '우리가 버린 옷은 어디로 갔을까'였다.


스웨덴 언론 아프톤블라뎃(aftonbladet)은 2023년 1월 말 중고매장에서 구입한 H&M 의류 10점을 H&M 매장 8곳의 의류 수거함에 넣었다.

의류 10점 중엔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 같은 헌 옷도 포함돼 있었다.

아프톤블라뎃은 이 옷에 위치 추적이 가능한 태그를 부착해 어디로 가는지 추적했다.

이 옷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위치 추적이 가능한 태그를 부착한 중고의류 (사진=아프톤블라뎃)

몇 달 후 재킷 3벌은 각각 아프리카 베냉의 코토누, 남아프리키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인도 파니파트에 도착했다.

블레이저 2벌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중고의류 도매상.

셔츠 1벌, 바지 2벌은 독일의 한 분류시설에서 이동 후 태그 신호가 끊겼다.

집업셔츠 1벌은 독일 그로나우시 섬유 재활용 업체.

집업후드 1벌은 폴란드의 의류로 청소포 만드는 업체.

H&M이 홈페이지에 밝혔듯이 다시 입을 수 있는 옷은 재판매한다는 약속이 지켜진 의류는 하나도 없었다.

H&M 의류수거함에 들어갔다가 전 세계로 보내진 중고의류 (사진=아프톤블라뎃)

10년 넘게 계속돼 온 H&M의 의류수거는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의 상징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2020년에만 수거한 옷과 직물은 18,800톤이었고 이는 티셔츠 9,400만장에 해당했다.


아프톤블라뎃 기자는 이 중에서 아프리카 베냉 코토누로 향했다.

의류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코토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중고 의류 시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자는 신호를 보내온 재킷을 찾으려 돌아다니며 코토누의 현실을 보여줬다.

코토누 상인들은 브로커로부터 수백 벌의 의류로 단단히 뭉쳐진 포장 더미 하나를 12만원 정도에 샀다. 그 속엔 어떤 옷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의류 더미가 마치 복권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상태가 좋은 옷이 나온다면 팔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의류가 대다수다.

중고의류 수백벌이 뭉쳐진 옷더미 (사진=아프톤블라뎃)

H&M 중고 재킷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베냉 코토누에 왔을 가능성이 컸지만 수없이 많은 상인과 그보다 더 많은 산더미 옷 속에서 결국 기자는 태그가 부착된 재킷을 찾지 못했다.

기자가 베냉에서 만난 의류 상인들은 "나는 쓰레기를 산다. 그들은 우리에게 쓰레기를 보낸다. 제발 이 모든 걸 보내지 마라"고 말했다.


H&M의 위선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프론블라뎃은 세관 데이터를 검토해 H&M으로부터 옷을 받은 독일 업체 3곳이 지난해 말부터 아프리카 가나에 최소 100만벌의 의류를 사실상 버렸다(명목은 수출)는 사실을 확인했다.

5,711개의 의류 더미, 무게는 약 314,000kg에 달했다.

의류 재활용 속도를 높인다며 독일의 한 회사와 중고 의류 수집, 분류, 판매를 위한 합작투자회사를 만든 H&M은 수집된 의류 상당수가 제3세계로 수출(혹은 투기)된다는 사실을 홈페이지 등에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프론블라뎃 주장이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운송 수단인 선박이나 트럭에 실려 수거된 의류가 이동된다는 말도 없었다.

10벌의 중고 의류가 이동한 거리는 5,792마일(9,321km)로 지구 주위를 거의 1.5바퀴 도는 거리였다.

중고의류가 버려지고 불타는 가나의 해변 (사진=아프톤블라뎃)

H&M이 옷을 버린 아프리카 가나 역시 세계 최대의 중고 의류 수입국 중 하나였다.

가나 칸타만토는 세계 최대의 중고 의류 시장으로 매주 1,500만벌의 중고 의류가 도착하며 그중 최소 3분의 2는 유럽에서 온다고 했다.

1년에 약 8억벌, 가나 주민 1인당 25벌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문제는 베냉처럼 가나로 오는 의류 중 거의 절반은 입지도 못할 수준의 옷이라는 점이었다. 상인들은 팔지도 못하는 옷을 강이나 바다에 버리거나 태웠다. 그 옷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재료인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졌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중고의류 (사진=아프톤블라뎃)

현재 전 세계 의류의 68%가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지고 이 값싼 원단으로 만든 패스트 패션이 활황을 구가하고 있다.

불붙은 플라스틱 합성 섬유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주민 상당수는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

폴리에스터 의류는 생분해되지 않고 수백 년에 걸쳐 파편화되며 토양과 지하수로 독성 화학물질을 침투시키고 대기 중에 메탄을 방출한다.

의류에서 분리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은 바닷물을 타고 지구 어디든 돌아다닌다.

중고의류로 뒤덮인 해변 (사진=아프톤블라뎃)

오늘날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하며 이는 지구상의 모든 항공과 운송 수단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보다 많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가속화된 기후 변화로 가나 북부지역을 포함한 아프리카 지역 상당 부분은 점점 더워져 많은 이들의 생계였던 옥수수 밭이 말라 버렸다.

패스트 패션 의류가 무차별 수입되면서 가나, 베냉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돈이 외부로 빠져나갔고 자체 섬유 산업이 폐업해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나이지리아는 이런 부작용을 막으려 중고 의류 수입을 금지했지만 이웃 국가들로부터 의류가 밀반입되는 것까지 막을 수 없었다.

버려진 중고의류로 뒤덮인 가나의 강 (사진=아프톤블라뎃)

가나에서 의류 투기에 맞서고 있는 비영리 단체 'The Or Foundation'의 활동가 Liz Ricketts는 "서구 국가가 팔 수 없는 쓰레기 옷을 제3세계 국가에 떠넘기는 '폐기물 식민주의'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의류 브랜드 경영진이 이곳에 와서 현실을 보고 책임져야 한다"며 "세상에는 너무 많은 옷이 생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H&M 측은 이번 보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인터뷰 요청에 처음엔 서면 답변만 하겠다고 했으나 파장이 커지자 CEO가 직접 인터뷰에 나섰다.

하지만 "(아프리카 베냉을 포함해) 버려진 옷이 하나도 없다"고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그리고 중고 의류가 버려지는 아프리카에 가볼 의향이 있느냐는 말에 "No"라고 답했다.

버려진 중고의류 산더미 속에서 뛰노는 아이 (사진=아프톤블라뎃)

전 세계에서 매년 1,000억개의 의류가 생산되고 평균 7번 입은 뒤 버려진다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은 두 배로 증가했다.

사람과 환경에 해로운 싸구려 폴리에스터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 연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H&M, 자라, 아디다스, 나이키, GAP, 리바이스, 유니클로 등 초거대 의류회사는 생산한 옷을 팔기만 할 뿐 책임지지 않는다.

엄청난 양의 의류 폐기물을 처리할 능력이 없는 일부 가난한 국가에 떠넘기고 있다.

베냉, 가나를 비롯해 케냐, 남아공, 칠레, 인도,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쓰레기 옷이 쌓이는 국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케냐 역시 2021년 한 해에만 9억벌이 유입된 세계 최대 중고의류 수입국이며 한국은 케냐에 열 번째로 많은 중고 의류를 수출했다. 한국은 2019년 기준 중고 의류 수출액이 3억1,200만 달러로 미국, 영국, 독일, 중국에 이어 5위였다.)

의류 폐기물은 전자 폐기물이나 다른 플라스틱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교역을 막는 바젤 협약 같은 규제가 전혀 없는 상태다.

세계 5위 중고 의류 수출국 '한국', 2021년 케냐 중고 의류 수출국 10위 한국 (사진=KBS환경스페셜, changingmarkets.org)

지속 가능한 직물과 섬유 전략을 고민해 온 유럽연합(EU)은 이번 보도가 나온 뒤 패션기업이 의류 폐기물 관리 비용을 부담하고 폐기물을 줄일 수 있도록 처음부터 재사용이 가능하거나 재활용될 수 있는 의류를 생산하도록 하는 등의 규제 법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가나의 비영리 단체 'The Or Foundation'은 "유럽연합의 의류 폐기물 규제 법안이 구체적인 생산량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았고 피해 국가 도시에 대한 해결책 제시가 없다"며 법안 내용이 수정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스웨덴 린네 대학의 마틸다 탐(Mathilda Tham) 교수는 "의류 패션 체인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한 의류 수거는 그린워싱(Green Washing, 가짜 친환경)의 한 형태"라며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이 되려면 지금보다 최소 75% 적게 의류를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쓰레기 옷 먹는 소 (사진=KBS환경스페셜)

2021년 KBS 환경스페셜에서 패스트 패션 의류의 투기 문제를 다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때 아프리카 가나의 강과 바다를 뒤덮은 옷보다 충격적인 장면은 그 쓰레기 옷을 질겅질겅 씹어먹는 소의 모습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22년 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아프톤블라뎃의 기사를 보자 환경스페셜 다큐가 생각났고 2년 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웠다.

사실 환경스페셜에서 보듯 중고의류 특히 패스트패션 의류의 투기 문제는 많이 알려진 문제였다.

이번 기사가 돋보였던 건 옷에 태그를 부착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이동 경로와 종착지를 파악함으로써 초국적 패스트패션 기업의 위선과 그린워싱을 폭로했다는 데 있었다.

그동안 중고 의류의 제3세계 투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패스트패션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묻거나 규제를 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측면도 있었다.

아프톤블라뎃 보도는 패스트패션 기업 이면의 숨은 거래와 추악한 민낯을 낱낱이 보여줬고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EU의 의류 규제 법안까지 서둘러 이끌어냈다.

나 혼자 뽑은 스웨덴 올해의 기사로 손색이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이 정도의 심층 기사는 쉽게 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기사였다.


이미 멈추지 못하는 폭주기관차가 된 대량 생산 사회에서 과연 적게 생산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옷 한 벌 사기 전 몇 번은 고민해야 하는 건 분명한 의무가 됐다.

우린 지금 상품 하나를 사는 데도 죄책감을 느껴야 할 대량 소비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스웨덴 린네 대학 마틸다 탐 교수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꼭 의류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터다.


(## 스웨덴 언론 아프톤블라뎃, 다겐스 니히터, TV4, changingmarkets.org, theor.org,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IMPACT ON '유럽연합, 의류 폐기물 규제 법안 준비 중' 등을 참고했다.)


https://www.aftonbladet.se/nyheter/a/O8PAyb/har-dumpas-h-m-kladerna-du-atervinner

https://www.aftonbladet.se/nyheter/a/bgW3ld/har-ar-snabbmodets-ground-zero

https://www.youtube.com/watch?v=gw5PdqOiodU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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