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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l 26. 2023

외국인 거주자의 당연한 권리

"전 세계에서 하층민들 불러들여 직업 주고, 의료보험으로 치료해 주고, 실업급여 주고, 자식들 무료교육 시켜주고? 한국인의 재산 소득 다 파악해 세금 왕창 뜯어가서 외노자, 불법체류자, 불법난민 먹여 살리냐?"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에서 본 외국인 노동자 관련 기사의 댓글이다.

괜스레 가슴이 뜨끔했다.

표현 하나하나가 비수가 돼 날아와 꽂혔다.


난 스웨덴에 오고 난 뒤 매달 아동수당을 받고 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금액이지만 나와 아내에겐 무척 소중한 돈이다.

아동수당은 별거나 이혼 등 가족 형태가 다양한 걸 고려해 부모 양측에 동일한 금액이 지급된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3명이라 보너스 수당까지 추가됐다.

사실 스웨덴 사회보험청에 아동수당을 신청하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두 달여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그래, 외국인에게 무슨 수당을 주겠느냐'는 생각에 그냥 잊기로 했다.

더군다나 이민자나 외국인에게 적대적인 우파 연립정부가 들어선 뒤 각종 이민정책이 강화되는 시점에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잊으려 했는데 불현듯 신청 세 달 만에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앞서 못 받은 기간까지 소급한 첫 달 아동수당이 들어왔다.

은행 계좌에 찍힌 숫자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아동수당을 신청하면서 사회보험청의 여러 수당 제도를 살펴봤는데 우리 가족이 신청할 만한 수당이 또 있는 듯했다.

주택수당이었다.

집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인 스톡홀름에서 구한 집 월세가 300만원을 훌쩍 넘어 집 기둥뿌리가 흔들리는 중이었다.

아동수당에 이어 주택수당도 신청했다.

다시 두 달 여가 지났다.

자연스럽게 포기하려는 찰나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회보험청 직원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지금 월세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캐물었다.

주택수당을 신청할 땐 생각지도 못한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연수 중인 아내의 체재비는 월세에 미치지 못했고 나 역시 육아휴직 급여가 전부라 그간 모아둔 돈과 마이너스 대출로 월세와 생활비를 꾸역꾸역 메꾸고 있었다.

근데 이걸 설명하기가 참 쉽지 않았지만 아내는 최선을 다해 충실히 답변했다.

사회보험청 직원은 전화를 끊으며 월세계약서 등 관련 서류를 다시 요구한 뒤 필요하면 다시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정말 진땀 빼는 수급자격 심사 전화였다.

아내와 난 주택수당은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모아둔 돈과 마이너스 대출로 월세를 충분히(?) 감당하고 있는데 왜 주겠느냐, 괜한 일을 벌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낱 외국인 거주자의 신청서를 무시해도 하등 이상할 것 없는데 친히 전화해서 물어봐준 것만 해도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이었다.

우릴 한 명의 시민으로 대우해 준 셈이었으니까.

일주일 정도 지났으려나 주택수당이 지급될 예정이라는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이 떴다.

많은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살인적인 월세를 내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아니 돈을 떠나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난 한국 회사, 연수재단, 정부로부터 월급이나 체재비, 육아휴직 급여를 받고 있어 스웨덴에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스웨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신분도 아니다.

물론 스웨덴 거주자로서 상품 등에 붙는 높은 부가가치세나 관세 등 다른 세금은 부담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나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합법적인 거주허가자이긴 하지만 외국인인 우리 부부에게 지원해 줄 아무런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스웨덴 정부는 외국인 거주자 역시 사회구성원으로 존중해줬다.

각종 수당 외에도 스웨덴에서 아이들이 무료로 진료 받은 적이 있고 거의 무료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다.


스웨덴에 1년 머무르면서 한국 포털 사이트처럼 외국인 거주자에 대한 분노의 댓글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스웨덴 언론 기사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본 기사 중에서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거주자 등이 받는 수당이 얼마인지 등에 관한 보도를 본 적도 없다.(스웨덴 언론은 지난해부터 기사 댓글 작성이 중단됐다.)

그런 기사는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에 대한 반감과 편견을 심어주기에 딱 좋다는 생각이다.

불법체류가 아닌 이상 스웨덴에 사는 이라면 누구든 아동수당, 주택수당, 의료혜택, 실업급여 등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제도화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웨덴에서 직업이 있든 없든 시민이면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 말이다.

여러 혜택을 받는다 해도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극우파인 스웨덴민주당을 비롯한 우파 연립정부는 취업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이민자의 월 노동 급여 조건을 현재의 2배인 26,560크로나(약 326만원)로 높이는 것을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되면 월 326만원을 벌지 못하는 이민자들은 취업허가 연장이 안 되거나 신규 허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

월급이 적은 이민자들 상당수가 기존 여러 혜택이 중단되는 건 물론 사실상 모국으로 추방당하게 생겼다.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인 스웨덴 이민정책에 분명 변화가 오고 있다.

스웨덴은 코로나 유행 이전까지 인구 100명당 이민자 수가 주변 북유럽 국가는 물론 망명자나 난민을 많이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한 독일보다 높았다.

이민자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저개발 국가나 스웨덴보다 경제적 수준이 떨어지는 국가 출신이었다.

스웨덴의 EU(유럽연합) 외부 이민자 비율은 2000년 6%에서 2021년 15%로 급격히 상승했고 이 수치는 EU에서 가장 높았다.


스웨덴은 왜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였을까.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낮은 출산율과 수명 연장에 따른 노인 비율의 증가로 노동력 부족과 노인 돌봄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타개할 목적이었다.

통계적으로 인구 증가에 필요한 출산율이 여성 1인당 2.1명이라고 하는데 스웨덴은 이보다 낮은 1.7명이다.

스웨덴은 이민에서 인구 감소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실제 이 해법은 2000년대 들어 스웨덴 인구를 증가시켰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해가 갈수록 인구 감소세가 뚜렷하지만 스웨덴은 거꾸로 인구가 늘고 있다.

스웨덴 통계청은 2030년까지 인구가 약 40만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증가분 40만명 중 30만명은 이민자이며 나머지 10만명은 사망자보다 많은 출생자로 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2020년 스웨덴 인구의 20%가 외국 태생이었지만 2030년에는 약 22%가 될 것으로 통계청은 추정했다.


스웨덴 인구가 늘긴 했지만 분명 이민 문제는 논란의 이슈다.  

스웨덴에 온 이민자와 그 자녀들이 모든 버스, 트램, 택시 운전사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으며 약사 2명 중 1명, 의사·치과의사·엑스레이 간호사 3명 중 1명, 대학 교수·연구원 4명 중 1명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일부 청년 이민자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갱단 등에 들어가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제3세계에서 온 이민자 중엔 구걸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분명 존재한다.

스웨덴에서 18세 미만 외국 이민자 약 58만명 중 0.2%인 1,200명이 갱단에 속해 있는 것으로 스웨덴 경찰은 추산한다.

이런 사회 부적응 이민자와 폭력조직 가담자를 어떻게 품을 것인지 스웨덴 사회의 고민이 깊다.


스웨덴의 다양한 인종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한국의 지리적 위치가 너무 아쉽다는 거였다.

러시아, 중국, 일본과 원거리 미국에 둘러싸인 것보다 분단으로 대륙으로 향한 육로가 막혀 있어 다양한 민족의 교류가 많이 없다는 점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역사적인 관계 때문에 가깝지 않고 유럽이나 아프리카 등과도 너무 멀리 떨어져 여러 인종과의 공존 기회가 많이 없었다.

어울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긴 것보다 인간 그 자체로 대하게 되지 않았을까.

유독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듯한 한국 사회의 습성이 단일민족 국가의 전통에서 나온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한국에서도 낮은 출산율과 초고령 사회 해결책으로 이민 활성화가 제시되는 것 같다.

하지만 좁은 땅덩이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살아 경쟁이 치열하고 취업도 쉽지 않은 한국의 특성상 이민자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고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한국에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를 썩 달갑지 않게 생각해왔다.

스웨덴에서 외국인 거주자로 많은 지원을 받은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그들을 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을까.


(# Dagens Nyheter, 스웨덴 통계청 사이트 등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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