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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May 31. 2023

백주대낮에 죄수 탈취해 도주…영화야?

스웨덴 치안이 이 정도로 허술했어?


지난 2월 스웨덴 언론에서 다소 충격적인 사건 기사를 봤다.

이 사건은 3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자칫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치안이 비교적 좋다는 스웨덴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2월 8일 오후 1시 40분 스톡홀름 남서쪽 150km가량 떨어진 노르셰핑(Norrköping)의 한 병원에서 복면을 쓴 두 괴한이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온 죄수를 탈취해 달아났다.

이들은 총으로 교도관을 위협한 뒤 순식간에 죄수를 빨간색 스포츠카에 태워 유유히 달아났다.

해당 지역 경찰은 대규모 병력을 총동원해 도주한 스포츠카를 뒤쫓았지만 허탕이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매우 이례적이고 심각한 일이라며 달아난 3명을 추적 중이지만 벌써 4개월이 다 되도록 별다른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말뫼(Malmö) 암살단 범죄 조직의 전 멤버인 이 죄수는 살인미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죄수는 교도소에서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정황이 드러났다.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고집해 병원 예약을 잡았고 친척과 통화할 수 있는 권리를 이용해 총 18통의 외부 전화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죄수가 교도소 밖 병원에 진료를 받는다는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컸다.

경찰은 이들이 타고 달아난 차량을 발견해 복면 괴한과 죄수의 DNA 등 증거를 확보하는 작업을 벌였지만 유의미한 진전은 없었다.

경찰은 도주한 죄수가 현재 스웨덴에 있는지 해외로 달아났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호송 죄수 무장 탈취사건이 발생한 노르셰핑의 한 병원 (사진=Dagens Nyheter)

대낮에 총으로 교도관을 위협한 뒤 중범죄로 복역 중인 죄수를 가로채 도주하다니.

정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스웨덴에서 살면서 치안 면에서 큰 위험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이 뉴스는 꽤 충격적이었다.


한편으론 이걸 왜 못 잡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대통령이나 경찰청장이 총동원령을 지시하고 전 경찰 수사망이 가동되면 며칠 내에 붙잡았을 거라고 장담한다.

범죄 예방과 해결 능력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스웨덴 경찰이 사건 3개월이 지나도록 달아난 죄수와 복면 괴한의 도주 경로조차 찾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웨덴의 CCTV 설치 현황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국 경찰은 자체 설치 CCTV는 물론 공공기관, 사설, 개인 CCTV까지 동원해 범죄자 추적에 나선다.

한국에서는 CCTV가 전 국토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뒤덮고 있다.

사실상 이 CCTV에 걸리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기란 쉽지 않다.

CCTV 영상이 자동 삭제될 만큼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면 경찰은 범죄장소에서부터 범인 도주경로를 역추적해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호송 범죄자 무장 탈취사건이 발생한 노르셰핑의 병원 (사진=Dagens Nyheter)

2019년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를 보면 30~40대 직장인이 출근부터 퇴근까지 하루 총 98차례 CCTV에 노출됐다는 결과가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5만7천여대였던 공공기관 CCTV는 2014년 8배 이상인 145만8천여대로 늘었다.

2021년 말 민간, 공공기관 모두 포함한 CCTV는 약 1천600만대로 추정되고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이렇듯 CCTV 천국인 한국에 있다가 스웨덴에서 살면서 희한하게도 CCTV를 많이 보지 못했다.

백화점 등 상업시설, 대중교통, 공공기관 등을 제외하면 거리에서 CCTV를 잘 못 본 거 같다.

한국에서는 쓰레기 투기 감시 등을 목적으로 이면도로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360도 CCTV도 이 곳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보안용으로 CCTV를 설치한 집도 있었지만 없는 집이 더 많았다.

때론 범죄자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하는 차량 블랙박스도 거의 못 봤다.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서 블랙박스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차를 사면 블랙박스부터 설치하는 우리와는 너무 달랐다.

교통사고가 나면 어떻게 책임을 따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껏 차량 접촉사고 장면을 한 번도 보진 못 했지만 신뢰와 믿음의 스웨덴 사회라 과실 여부나 비율을 상호 합의로 정하는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스웨덴 경찰 헬기가 수색 중이다 (사진=Dagens Nyheter)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후 스톡홀름 지역에서 총 46건의 총기, 흉기 사건과 23건의 폭발사고, 2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강력사건이 연이어 터졌지만 체감은 잘 되지 않았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하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했지만 일반 시민사회와는 다른 세계에서 범죄가 발생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불특정 다수를 노린 테러나 묻지마 범죄가 아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스웨덴 정부는 최근 범죄가 갱단 관련이나 20대, 그 이하 청소년이 가담한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심각성이 느껴진다.

총격범죄로 인한 사망자는 2017년 43명, 2018년 45명, 2019년 42명, 2020년 47명, 2021년 45명에서 2022년 61명으로 늘었다.

스웨덴 정부 취임 100일 '범죄와의 전쟁' 자료 중 연간 총기 사망자 수(오른쪽)

이런 총격범죄에 노출된 지역 주민은 자신의 주거지역에서 밤늦게 다닐 때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비율이 절반인 49%로 조사돼 불안감이 높은 거 같다.

그렇지 않은 지역 주민의 야간 보행 체감 위험도는 27%였다.

상황이 이렇자 스톡홀름 경찰은 즉각 대응책 마련에 나섰고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의 우파 연립정부도 지난 1월 25일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갱단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범죄 예방을 위해 법 집행기관과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중대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 15세 미만 아동 범죄의 적극적인 개입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더 자주, 더 많은 장소에서 카메라 감시가 가능하도록 카메라 감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거였다.

신뢰와 믿음의 사회 스웨덴도 결국 CCTV 말고는 답을 찾지 못한 것인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후 스톡홀름과 그 주변에서 발생한 총기/흉기 사건 46건(빨간색 원), 폭발사건 23건(검은색 원), 화재 2건(회색 원) (사진=Dagens Nyheter)

범죄자를 잡는데 사실 CCTV 만큼 좋은 게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로 인한 사생활 침해 등 부정적인 요소도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은 국민 대부분이 모르는 사이 CCTV가 급격히 늘었다.

하루에 100차례 가까이 CCTV에 노출되면서도 평소엔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CCTV의 무분별한 확대에 별다른 문제제기가 없었다.

특히 강력범죄의 빠른 해결을 원하는 국민 정서상 CCTV 설치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큰 힘을 얻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범죄자를 빨리 잡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이 CCTV 카메라에 그대로 담기는 건 아무래도 뭔가 찜찜하다.


개인 사생활을 중시해 온 스웨덴에서 이제 정부가 나서 CCTV를 늘리려 하니 스웨덴도 머지않아 '감시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조짐은 이미 보인다.

스웨덴 우파 연립 정부는 범죄 예방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허가 없이' 공공장소 등 필요한 곳에 CCTV를 설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겠다고 밝힌 상태다.


뒤늦은 CCTV 설치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초유의 죄수 무장 탈취로 자존심에 금이 간 스웨덴 정부와 경찰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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