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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May 26. 2023

장어 15마리 잡았다고 사임…장관의 무게

PM 닐손 전 스웨덴 국무장관 (사진=Dagens Nyheter)

지난 1월 닐손(PM Nilsson) 스웨덴 국무장관이 사임했다는 보도를 뒤늦게 봤다.

지난해 11월 임명됐는데 두달여 만에 스스로 물러난 거다.

이유가 궁금했는데 1년여 전 불법으로 장어를 잡은 일 때문이라고 했다.

장관이 장어 밀렵을 했다고? 그게 사임 이유라고?


닐손은 2021년 9월 스웨덴 남부 칼스크로나 지역에서 러시아인들과 장어를 잡다가 해양수자원관리청 직원에게 단속됐다.

닐손은 러시아인들과 우연히 만났고 장어를 잡은 건 러시아인들이지 자신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해양수자원관리청 직원은 장어 15마리와 포획도구를 압수하고 닐손의 퍼스널넘버(주민등록번호)를 알아갔다.

스웨덴은 장어 개체수 보호를 위해 2007년 이후 특별 허가 없이 장어 잡는 행위를 전면 금지한 상태였다.

불법 포획된 스웨덴 장어 (사진=Dagens Nyheter)

사건은 그대로 잊혀지는 듯하다가 닐손이 지난해 11월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의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뒤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장어 밀렵 단속 후 1년여가 흐른 지난해 크리스마스 전에서야 칼스크로나 경찰이 닐손 장관에게 연락했는데 닐손은 단속 당시와 마찬가지로 장어 밀렵 행위를 전면 부인했다.

그런데 닐손은 크리스마스가 끝나자마자 돌연 경찰에게 연락해 자신이 러시아인과 함께 장어를 불법으로 잡아 법을 위반했다고 태도를 바꿨다.

이후 닐손은 벌금 3만8천800크로나(약 465만원)을 받고 관련 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중이다.

장어 낚시 모습 (사진=Dagens Nyheter)

지난 1월 중순께 스웨덴 언론이 이런 사실을 보도하면서 닐손의 거취가 도마에 올랐다.

장어 밀렵으로 법을 어긴 것도 문제지만 경찰 조사 과정에서 거짓말한 것을 두고 정치권의 비난이 쏟아졌다.

더군다나 닐손은 2007년부터 장어 포획이 금지됐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2007년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어를 잡은 사진까지 올려 이전에도 장어 밀렵을 저지른 사실도 드러났다.

닐손은 어린 시절부터 장어를 잡는 취미가 있었다고 했다.

사회민주당 막달레나 안데르손 대표는 닐손이 법 위반과 함께 국무장관 취임 후 버젓이 거짓말을 했다며 즉각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크리스테르손 총리는 경찰에게 즉시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스스로 혐의를 인정했고 벌금까지 문 만큼 해임은 합리적이지 않고 여전히 그를 신뢰한다고 감쌌다.

크리스테르손 총리는 국무장관 임명 과정에서 닐손의 장어 낚시 사실을 알았지만 이후 경찰에서 아무 연락도 없어 문제가 종결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에 자진 사임하겠다는 글을 남긴 PM 닐손(사진=페북 캡처)

하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1월 26일 닐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진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닐손은 첫 보도 이후 페북에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는 글을 몇 차례 올렸지만 거취 표명 없이 동향을 살피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사임을 밝혔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총선 후 우파 연립 정부 내각이 꾸려진 뒤 이런 불명예 낙마는 처음이다.

선거 직후 60%까지 치솟았던 보수당 출신 크리스테르손 총리의 지지율은 막달레나 안데르손 전 총리(사민당 대표)에게 1위를 내주고 닐손 장관 사임 문제 등까지 겹쳐 갈수록 악화 중이다.


닐손의 페이스북을 보니 댓글 상당수가 그의 사임을 아쉬워하거나 슬퍼하는 내용이어서 눈길이 갔다.

닐손의 사임이 관심을 끌었던 건 사임으로 내몰게 한 이유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비록 장어 밀렵은 잘못했지만 그의 능력이 아깝다는 반응들이었다.

장어 15마리 잡은 것보다 수력발전으로 인해 죽는 장어가 훨씬 많은데 사임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글도 있었다.

그럼에도 장어 밀렵 정도의 사안으로 사임까지 하는 건 너무했다는 내용은 소수였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안타깝지만 사임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앞서 2006년 라인펠트 정부에서 장관 2명이 라디오와 텔레비전 요금을 내지 않거나 흑인 노동력을 고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자진 사임한 일도 있었다.

PM 닐손 전 스웨덴 국무장관, 왼쪽은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사진=Dagens Nyheter)

우리나라는 어떨까.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사퇴 이유를 보면 김인철 장관 후보자는 부인과 두 자녀의 미국 대학 '아빠 찬스' 의혹, 한국외대 총장 시절 법인카드 '쪼개기 결제와 성폭력 교수 옹호 논란 등이었다.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경북대병원 부원장, 원장 시기 두 자녀의 경북대 의대 편입학 등 '아빠 찬스' 논란 끝에 낙마했다.

이어 김승희 전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복지부장관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고,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5세 조기 초등입학' 추진 논란으로 사퇴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언론인 출신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상가 투기 의혹으로 사임하기도 했다.

인사청문회 제도로 각종 논란에 낙마 사례가 나오면서 웬만한(?) 허물은 좀 넘어가자는 일부 여론도 있고 장관할 사람이 깨끗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낙마 사유만 놓고 본다면 스웨덴이 좀 가볍긴 한 것 같지만, 스웨덴과 한국은 정치제도는 물론 시민의 정치적 인식이 달라 직접 비교는 힘들다.

다만 낙마 이유를 보면 두 나라의 시민이 어떤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사실 외에 국민 정서나 상식을 건드리면 사퇴의 칼날을 피하기 어려운 듯하다.

PM 닐손 전 스웨덴 국무장관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사진=Dagens Nyheter)

마지막으로 닐손 관련 기사를 보다가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21일 취임해 두달여 만에 사임한 닐손이 퇴직금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하는 거였다.

관련 규정에는 재임 기간이 12개월 미만이면 최대 12개월치 월급을 퇴직금으로 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본인의 요구에 따른 사임이면 퇴직금을 못 받고 요구가 없는 해임이면 받을 수 있다.

규정대로라면 갓 두달 일하고 본인의 요구로 사임한 닐손은 퇴직금 수령 자격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기사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자진 사임이 아닌 총리더러 '나를 해임해주시오'라고 했다면 닐손은 퇴직금 수령 문제로 또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을 듯 싶다.


닐손의 국무장관 월급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 달에 12만1천200크로나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 돈으로 치면 1천442만원 정도다.

연봉으로 치면 1억7천37만원가량이다.

우리나라 장관의 2023년 연봉은 1억3천941만원이다.

명목상 금액은 스웨덴이 더 많지만 스웨덴이 세금을 더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실수령액은 스웨덴 장관이 더 적을 수도 있겠다.

한 나라의 장관이 그 정도 받을 자격은 있어보이는데 국민을 위해 얼마나 밥값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겠다.


사임한 닐손의 근황도 보도됐다.

국무장관이 되기 전 다겐스 인더스트리(Dagens Industri)의 정치 편집자였던 그는 시장 자유주의 싱크탱크인 'Timbro'에서 기후, 환경, 도시 및 농촌문제를 담당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장관이나 후보자가 낙마하면 보통 한동안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자중하며 살지만, 스웨덴에서는 쿨하게 다른 일을 바로 찾고 그게 기사화됐다.


석달 뒤인 4월에는 싱크탱크 Timbro에서 일하던 닐손은 전 직장 스웨덴 경제신문 '다겐스 인더스트리'로 복귀한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일테면 한겨레신문 출신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임한 뒤 다시 한겨레신문으로 복귀하는 식이다.

한국적 상식으론 이런 행보가 잘 이해되지 않지만 스웨덴에선 별다른 비판이 없는 거 같다.

결국 다겐스 인더스트리에 바로 복귀하기엔 여론의 눈치가 보이니 잠시 다른 곳에 있다가 세간의 관심이 멀어진 뒤 자리를 옮긴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정부권력에 대한 감시가 사명 중 하나인 언론사에 현 정부 국무장관을 잠시나마 지낸 중견 기자가 복귀하면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언론사와 개별 기자의 입장은 다른 것인가.


스웨덴 언론 상당수는 자신이 지지하는 이데올로기를 서면으로 선언한다고 한다.

언론이 우린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 혹은 중립 성향이라고 밝힌다는 의미다.

그것이 때에 따라서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든 보도의 객관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특정 당파 성향의 언론이 비슷한 성향의 정부나 정당을 비판할 수 있다.

실제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다겐스 니히터는 이전 좌파 연립 정부나 사민당을 수차례 날카롭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얼마 전 경찰 간부의 자살 사건에서 보여준 선정적인 보도 행태로 스웨덴 언론도 비판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국민의 높은 신뢰를 얻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밑바탕이 있기 때문에 장관 출신 닐손이 언론사에 복귀해도 별 말이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우리나라 언론이 분명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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