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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14. 2023

코로나 첫 ‘졸업’ 국가에서 마스크 팔기

스웨덴에서 온 뒤 최대한 덜 사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생활필수품을 비롯해 중고의류 등 온오프라인으로 산 물품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이걸 다 들고 한국으로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답답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웬만한 물건들을 과감하게 처분해야 했다.

아니면 세컨드핸즈숍에 대거 기부하고 싶었다.

스웨덴의 활성화된 중고매장에서 좋은 아이템을 저렴한 가격에 골라내는 데 희열을 느껴온 아내가 기부하기 전에 한번 팔아보자고 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런 기회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좋은 행사가 열렸다.

스웨덴 첫 플리마켓

둘째가 농구교실을 하는 지역 YMCA 주최 플리마켓(Flea Market)이었다.

아내는 한나절 고민하더니 참가 신청을 해버렸다.

참가비만 300크로나(약 3만9천원)였는데 그만큼 못 팔 거 같아 걱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아내는 '못 말려' 삼 남매에게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 얼마나 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매일 뭐 사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들에게 미약하나마 경제관념이라는 싹을 틔울 수만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플리마켓 3일 전부터 아내는 계절이 지났거나 평소 잘 안 입던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마치 이미 플리마켓이 열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차곡차곡 물건을 끄집어내는 게 신기했다.

중고물품 매장에서 사서 잘 사용하고 다시 중고매물로 나오는 아이템도 많았다.

그렇게 모인 물건들이 28인치 캐리어 하나에 이민가방 한 개 분량이었다.

엄선한 중고물품으로 가득 찬 캐리어와 이민가방

아내는 가격을 표시할 태그 종이도 사고 옷걸이도 챙기고 열정적이었다.

난 도저히 못할 거 같은데 존경스러웠다.

한국에서도 매번 생각만 하다가 참여 못했던 플리마켓을 스웨덴에서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한편으론 지역 YMCA가 여는 '첫' 플리마켓이라는 게 조금 걸렸다.

역사와 전통의 행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조금 인지도가 있으면 방문객도 많을 것 같아 아쉬웠다.

'파는 사람이 손님보다 많은 그런 행사는 아니겠지?' 주최 측은 판매신청자에게도 소문을 많이 내달라고 부탁했다.

기대와 우려 속에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 같이 대망의 플리마켓 날이 밝았다.

'한번 팔아보자' 물건 진열 중인 모녀. 약간 긴장 모드

아내와 나 각각 캐리어와 이민가방 하나씩 들고 버스와 지하철을 한 번씩 갈아타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판매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우리가 가져온 물품은 적은 축에 속했다.

플리마켓이 열리는 곳은 실내 농구 코트였다.

참가팀마다 테이블 2개가 할당됐다.

넓은 테이블을 다 채울 수 있을까 했는데 가져온 물건을 놓다 보니 제법 구색을 갖췄다.

아 품질 우수한 KF94 마스크, 스웨덴에서 때를 잘못 만난 비운의 마스크들

오늘 우리가 꼭 팔고 싶었던 건 한국에서 들고 온 마스크였다.

2022년 7월 말 스웨덴에 올 때 스웨덴은 거리 두기가 완전히 해제된 상황이어서 마스크가 필요 없었다.

당시 현지 사정에 어두웠던 우리 가족은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 등 과도한 우려 속에 식구 수대로 어른용, 아이용 마스크를 많이 챙겨 들고 왔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마스크는 스웨덴에서 정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집 한편에 보관돼 있었다.

이대로 다시 들고 가기엔 부피도 많이 차지해 어떻게 해서든 처리(?)하고 싶었다.

아내는 마스크 바구니 앞에 실물 마스크도 걸어두고 KF94, made in korea라는 단어를 써두며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했다.

또 하나 아내가 스웨덴 오기 전 산 흰색 롱 파카가 있었는데 이번 겨울 잘 입었고 상태도 매우 깨끗해서 이날 주력 상품이었다.

나도 소소하지만 자전거 전조등, 휴대용 배터리, 164G짜리 마이크로메모리, 시거잭 USB 포트를 매물로 내놨다.

아, 잘 팔려야 될 텐데 초조했다.

테이블 가득 메운 세컨드핸즈 물품들

물건 진열하는 찰나 앞집 매대의 스웨덴 합계출산율 1.7명의 2배를 가뿐하게 넘긴 4남매 어머님이 친히 방문해 주셔서 막내가 즐겨 착용했던 가죽 털모자를 덥석 사갔다.

군고구마 장수들이 흔히 쓰는 귀가 덮이는 모자였다.

기분 좋은 개시, 마수걸이였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역시 아내가 내놓은 물품들이 인기가 좋았다.

100크로나 중반, 초반대의 롱코트, 다운점퍼도 연이어 팔려나갔다.

플리마켓 옷걸이에 걸린 중고물품들

그 와중에 못 말려 삼 남매가 엄마아빠의 중고물품 고군분투 판매 과정을 보고 '돈 버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느껴주길 바랐지만, 한 녀석은 휴대전화 들여다보고 있고 또 한 녀석은 농구하고 있고 마지막 녀석은 농구장 한구석에 쌓여있는 매트리스에서 방방 뛰고 논다고 정신없었다.

그래 방해만 안 하는 것도 다행이다 싶었다.

실내 농구코트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은 아이들의 농구공 튀기는 소음과 노는 소리 등 산만함과 번잡함 속에 진행됐다.

가족이 함께 하는 중고물품 장터에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손님도 많지 않지만 꾸준히 들어왔다.

실내 농구코트에서 열리는 플리마켓

하지만 우리의 주력상품 마스크에 눈길 한번 안 주는 손님들이 대다수여서 너무 슬펐다.

마치 비 갠 뒤 우산장수가 된 느낌이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K-방역의 나라 한국에서 생산한 KF-94 마스크의 위엄을 잘 모르는 듯했다.

이러다가 다시 싸들고 가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했다.

현지인들은 아이들 옷의 경우 주로 메이커와 원단을 살피는 듯했고 양말 등 소품에 관심을 보였다.

아내의 적극적인 세일즈로 물건이 하나 팔릴 때마다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우리가 좋아하고 잘 이용했던 물건을 이 사람들도 알아보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거래는 스웨덴 간편결제의 일종인 스위시(Swish)로 대부분 이뤄졌다.

현금 거래를 원하는 손님도 있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이었다.

이날 플리마켓에 우크라이나인들이 제법 많이 왔다. 러시아 전쟁을 피해 스웨덴으로 온 우크라이나인은 5만명 정도 된다고 했다.

플리마켓 결제는 Swish로. 구매자가 앱 카메라로 큐알코드를 찍고 금액을 기입하면 계좌이체처럼 돈이 판매자의 계좌로 전송된다

한 우크라이나 여성은 롯데월드에서 4년간 댄서로 일했다면서 한국 사람을 만나 무척 반갑다며 한동안 아내와 이야기꽃을 피웠다.

또 한 우크라이나 부부는 차 에어컨 송풍기에 거는 휴대폰 거치대에 관심을 가지다가 제품설명을 해주니 아직 차가 없어 거치대는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곤 최근 산 자전거에 부착할 전조등을 사갔다.

이 부부는 휴대용 배터리까지 구입했는데 내가 내놓은 물건 2개를 사간 은인이었다.

아내와 나는 이 우크라이나 부부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스웨덴 정부는 전쟁 직후부터 우크라이나인을 받아들였는데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게 했지만 지원 규모가 작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스웨덴 정부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스웨덴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생활비를 벌기 위한 필수수단인 스웨덴어를 배우는 SFI 수업에 1억크로나(125억원)를 지원하기로 한 상태다.


플리마켓에 우크라이나인들이 많이 온 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몇 천원 정도지만 돈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갑분 만남의 광장이 되기도 하는 플리마켓

아내의 A급 흰색 롱 파카는 비교적 높은 가격이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 입어보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팔릴 듯 팔리지 않아 애간장을 태웠다.

급기야 한 손님이 파카를 입다가 지퍼 부분의 실밥이 뜯어지는 일도 있었다.

파카 판매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그래도 다른 손님이 와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마침내 질러주셨다.

난 이날 아내의 장사수완에 약간 놀랐다.

어디서 이런 숨은 재주가 있었는지 손님 입장에서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밀당을 했고 할인 전략도 결정적인 순간에 내밀었다.

비록 마스크는 하나도 팔지 못했지만 스웨덴 첫 플리마켓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총 10만원 조금 넘는 매출을 올렸고 참가비를 빼면 6~7만원 정도 남은 거 같다.

그중 절반 정도는 오다가 마트에서 장을 봤다.

돈보다도 물건을 정리하고 내 물건이 누군가에게 다시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하루였다.

어린이 장난감 인형 무상 배포 소식에 모여든 아해들(오른쪽). 막내가 득템한 물건들(왼쪽)

아, 그리고 마켓 막판.

한 참가자 분이 팔고 남은 장난감, 인형 등 중고 어린이 아이템을 무상으로 가져가라고 소리치자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매대로 몰려가 저마다 하나씩 득템 했다.

정말 멋있었다. 아이들에게 그런 아량을 베풀 수 있는 그릇과 여유가 부러웠다.

물건 팔고 약간은 홀쭉해진 가방

한번 경험했으니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겠지.

오전 플리마켓 갈 때 물건이 가득 든 이민가방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아 행사장까지 이동하는 게 고역이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플리마켓이 될 것이라고 아내한테 콧김을 마구 뿜어댔는데 그 말 취소다.

힘들어도 보람찼다.

좋은 물건들 잘 보관했다가 다음 플리마켓 때 내놔야겠다.

미니멀리즘을 위하여.

보람찬 플리마켓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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