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나동 May 27. 2023

스톡홀름 60곳에 빙판…이거 안하면 100% 후회

스웨덴은 겨울이 길다.

언제부터 겨울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략 1년에 절반 정도인 것 같다.

4월 말까지 눈이 왔으니 정말 징그럽게 길긴 하다.

여름이 지나간 2022년 9월 그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 됐었다.

처음엔 날씨가 좀만 추워도 집안에 틀어박힌 날이 많았다.

이곳 사람들은 겨울이 날이 추워도 집밖으로 나갔다.

어른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꽁꽁 사맨 뒤 유모차에 태워 동행했다.

아기들을 추운 날씨에 빨리 적응시키려는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모차 비닐커버조차 없었다.

정말 추운 날이라도 햇볕이 나면 무조건 나가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든지 뭔가를 했다.

스웨덴의 국민 레포츠 '스케이트'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스톡홀름의 겨울은 길긴 하지만 영하 10도 이하의 매우 추운 날은 많지 않았다.

부산 촌놈이 서울 가서 느꼈던 칼바람 같은 추위는 이곳에서 많이 느껴보지 못했다.

스톡홀름 겨울은 추위 면에서는 서울보다 못하지만 가늘고 길게 추운 듯했다.

리딩외에 오래 산 집주인 할아버지는 서울에 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여기보다 훨씬 춥더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위도가 높다고 꼭 추운 것은 아니라는 걸 스톡홀름에 오고 나서 알았다.

아무튼 긴 겨울에 방에 콕 박혀 있으면 무조건 손해다.

가뜩이나 짧은 낮 허리를 뚝딱 베어내어 뭐라도 해야 한다.

추워도 나가고 해 떠도 나가야 이득이다. 날씨 좋은 여름만 누리기엔 스웨덴의 1년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스톡홀름 왕의정원 스케이트장

겨울이 오기 전 스톡홀름 스태드미션(Stockholm Stadmission), 아가페(Agape), 미료나(Myrorna) 등 중고물품점에서 스케이트화를 미리 사놨는데, 까먹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스톡홀름 티센트랄렌(T-centralen)역에 갔다가 우연히 '왕의 정원'(Kungsträdgården)에 마련된 스케이트장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12월부터 문을 열었다는데 2월이 되도록 뭐 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늦었지만 남은 식구들의 스케이트화도 마저 장만하고 스케이트장으로 출동했다.

왕의 정원보다 더 넓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

누구든 오세요...열린 스톡홀름 왕의정원 스케이장

겨울이 되면 왕의 정원이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하는 것이 재미있다.

이곳은 평소 중앙에 동상이 있는 팔각형 형태의 지름 40~50m 광장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이곳에 얼음을 열려 빙판을 만든다.

스케이트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입장 가능하고 장비가 없는 사람을 위해 지자체가 시간당 어른 8천400원 정도, 아이는 3천600원 정도에 스케이트화와 헬멧을 빌려준다.

스케이트화나 헬멧을 빌려주기도 한다

접근성 좋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스케이트장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겨울 스톡홀름에는 왕의 정원을 포함해 인공 스케이트장이 총 5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도심 공원이나 야구장이 겨울 몇 달간 시민의 동계 레포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축구 운동장 등 대형 경기장 10곳이 거대한 빙판으로 변하는 등 총 5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스케이트장이 스톡홀름 곳곳에 들어선다.

천연 얼음 호수 아이스링크 (사진 출처 스톡홀름시 홈페이지)

또 있다.

날씨가 추워져 얼음이 두꺼워지면 호수에서도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다.

스톡홀름 전역에 이런 천연 얼음 호수 아이스링크는 총 7곳이다.

제설차 같은 차량으로 얼음을 다지고 빙질을 좋게 만든다.

이런 환경에서 스케이트를 타지 않으면 간첩이다.

놀랍게도 이 모든 스케이트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모두 공짜다.

스톡홀름 지자체(stad)가 운영하기 때문이다.

스케이트장마다 장비도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 있다.

기후와 주변 자연환경을 잘 이용해 국민에게 건강 증진과 레포츠 기회를 제공하는 스웨덴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었다.

부산에 살면서 시민공원 정도 외에는 주말에 집 나가면 숨 쉬는 것 빼고 돈이 들었다.

스케이트장으로 변한 야구장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스케이트장이 많아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됐을 거 같은데 언뜻 스웨덴 출신 유명 빙상 선수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생활체육 위주라서 그런가 엘리트 선수 몇 명 키우는 거보다 시민의 건강, 행복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이해했다.

12월~3월 초에 스톡홀름을 방문한다면 도처에 널린 스케이트장에서 추억을 남겨도 좋겠다.

스케이트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스웨덴의 국민 레포츠라고 봐도 무방했다.

Östermalms Idrottsplats 아이스링크

첫째 둘째를 데리고 외스터말름에 있는 운동장(Östermalms Idrottsplats)으로 향했다.

여긴 둘째의 학교 친구 어머님의 추천으로 알게 됐다.

이곳은 원래 풀사이즈 축구장 1개, 1/2 사이즈 축구장 2개 면적인데 여길 통째로 얼려버렸다.

어마어마한 크기다.

처음 그 크기에 놀랐고 부대시설에 두 번 놀랐다.

Östermalms Idrottsplats 전경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한편에 스케이트를 신고 벗을 수 있도록 긴 의자가 있었고 간식 등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과 화로대도 있었다.

이 화로대는 누구든 사용할 수 있는데 누구든 몸을 녹이거나 소시지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핫도그 등 간단한 음식을 파는 작은 매점도 있었다.

스케이트장에는 신발을 갈아 신을 수 있는 의자가 있어 편했다

추운 날씨에 흐르는 콧물을 닦으며 겨우 스케이트화로 갈아 신고 두둥 빙판에 첫발을 올렸다.

소싯적에 '롤라장'에서 런던나이트 노래를 들으며 롤러스케이트를 탔던 가락이 있어 '뭐 크게 다르겠어' 하고 몇 발 내디뎠는데 웬걸 중심도 못 잡고 허우적거리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요란한 그 모습을 보고 벤치에 앉은 금발에 초록 눈의 아이가 피식 웃었다. 

'롤러장 죽돌이' 자존심이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추운 줄도 모르고 스케이트 탄다고 신난 첫째 둘째

첫째는 유치원 때 스케이트를 배워서 그런지 넘어지지 않고 잘 탔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탔던 둘째는 곧잘 타다가도 의욕이 앞서서인지 몇 번 넘어져 가슴이 아팠다.

뒤뚱뒤뚱 이 거대한 아이스링크를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옆에서는 조그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씽씽 얼음을 가르며 나아가는데 부러웠다.

자꾸만 발목이 휘청휘청 거리는 바람에 중심을 잡지 못해 타는 게 쉽지 않았다.

빙판 위의 평등... 못 타는 나만 넘어지는 건 아닌 듯

두 바퀴를 돌고 나서 약간 감이 오려는 찰나 클리닝 타임이라고 나가라고 했다.

제법 큰 정빙차량 2대가 한 시간 동안 아이스링크를 정비한다고 해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와서 멋들어지게 슝슝 얼음을 지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스케이트 기초 강습 유튜브도 좀 찾아봤다.

아... 이론은 빠삭한데 몸이 말을 안 들어.

내일 또 가볼 생각이다. 소시지 들고 말이다.

아이스링크 한번 넓다... 정빙 하는 데만 한 시간
이전 17화 '볼보의 나라' 유별난 미국 올드카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