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나동 Jun 16. 2023

난생처음 살아본 북향집의 선물

'띠링~.'

2023년 3월 15일 자정 무렵 자려고 창문 커튼을 치려는데 휴대폰 알림이 떴다.

이 시간에 뭐지 싶었는데 오로나 앱 알림이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 지금 날씨가 좋다면 1시간 이내에 오로라를 볼 수 있습니다.'

1월 키루나 여행 때 다운로드한 앱인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런 알림을 보냈다.

오로라 알림 앱. 다운로드 이후 오로라 지수 5.67은 처음 봤다. 스톡홀름 전역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안내하는 오로라앱.

알림이 왔을 때마다 밤하늘을 살펴봤지만 매번 실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로라는 보통 65도 이상 고위도나 북극권 지역에서 관측가능한데 스톡홀름은 그보다 위도가 한참 낮은 58도 정도라 오로라 관측 확률이 떨어질 거라 생각했다.

오로라 지수 높다 한들 구름이 끼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아도 볼 수가 없었다.

별생각 없이 창문을 내다보는데 뭔가 초록빛이 보였다.

'설마... 키루나에서도 간신히 봤는데 이곳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겠어?'

자세히 보니 오로라가 맞는 거 같았다.

키루나 여행 때 캠프 주인아저씨가 하던 대로 휴대전화로 찍은 하늘에 나타난 푸른빛은 오로라가 확실했다.

서둘러 휴대전화 삼각대와 나의 10년 지기 친구 캐논 550D를 찾아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키루나에서 비싼 돈 들여가며 손발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추위에 고생하면서 오로라를 봤는데 집에서 이렇게 편하게 오로라를 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스톡홀름 리딩외 집 테라스에서 본 오로라

우선 삼각대에 거치한 휴대전화로 타임랩스를 켜두고 단잠에 빠진 첫째를 깨웠다.

자면 누가 업고 가도 모르는 첫째인데 오로라 나왔다고 깨우니 이번에도 기적처럼 일어났다.

근데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아 오로라 맞네'하고 그냥 자러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오로라 본 거 기억 안 나' 그러니 허탈하게도 '모르겠는데' 그랬다.

아내가 둘째도 깨워 잠시 하늘을 보게 했는데 역시나 별 감흥 없이 들어가 버렸다.

키루나에서도 오로나 나왔다고 보라고 했더니 '다음에 또 오면 된다'고 자던 녀석인데 정말 한결같았다.

너무 곤히 자는 막내는 이번에도 깨울 생각조차 못했다.

집 테라스에서 본 환상적인 오로라

키루나 여행 때처럼 아내와 나만 흥분해 연신 '대박'을 외치며 사진을 찍어댔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키루나, 아비스코나 노르웨이 트롬쇠, 아이슬란드 정도는 가야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톡홀름에서 그것도 집 테라스에서 보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1월 초 키루나 3박 4일 여행을 갔을 때 오로라를 본 날은 딱 하루였다.

기대하지 않던 날에 행운처럼 다가왔던 오로라였다.

그저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고마웠고 감사했다.

그런데 집에서 녹색 커튼이 펄럭이는 듯한 빛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니 감개무량했다.

스톡홀름에서 직관한 오로라

스톡홀름 카운티에 속하는 리딩외에 이사 왔을 때 집이 대체로 만족스러웠는데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다.

바로 북향이었다.

아침에도 집에 햇볕이 들지 않았다.

난방 때문에 춥지는 않았지만 햇볕이 거실에 내리쬐는 그 따뜻한 느낌이 아쉬웠다.

하지만 리딩외 북향집은 우리에게 축복 같은 선물을 줬다.

뻥 뚫린 북쪽 하늘에서 펼쳐지는 오로라는 또 봐도 신비로운 시각 경험이었다.

돈 들여 키루나에서 본 오로라보다 더 오래 화려하게 지속됐다.

지난번 스포츠휴가 때 스톡홀름 일대에서 오로라가 관측됐는데도 못 봐서 무척 아쉬웠는데 소원 풀었다.

불현듯 찾아와 준 오로라에 감사했고 그걸 때마침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스톡홀름 리딩외 테라스에서 본 오로라

자정이 넘어 이웃들은 곤히 잠든 시간에 그렇게 1시간가량 아내와 나 둘이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오로라를 감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키루나 안 가는 건데 말이야.'

'그때 사파리 체험으로 무스 달랑 두 마리 보고 50만원 냈잖아.'

뭐 이런 대화를 하면서 말이다.

아내는 두 번째 오로라를 보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오로라는 사람이나 지구가 만든 풍광이 아니고 우주가 만든 거잖아. 뭔가 오묘하고 신비롭고 심연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그래서 오로라를 보는 건 특별한 거 같아. 그냥 단순히 색깔이 예뻐서 그런 건 아니고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선물 뭐 그런 거 말이야."

그 말에 상당히 동의하면서 난 요정들이 녹색의 일렁이는 커튼에서 뛰놀고 장난치는 상상을 해봤다.

분명 초자연적인 현상이지만 그 속엔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지 않을까.


오로라 보러 키루나까지 안 가도 될 뻔했다.

그래도 키루나의 경험으로 이날 훨씬 여유롭고 편안하게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오로라앱을 다운로드하고 행운이 따른다면 북극권이 아닌 스톡홀름 같은 위도 60도 이하 지역에서도 충분히 멋진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녹색 커튼이 흔들리는 듯 기묘한 오로라
이전 18화 스톡홀름 60곳에 빙판…이거 안하면 100% 후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